다윗의 생애 강해(80)




성경본문: 사무엘하 18장 19절 - 33절




전쟁이 끝났습니다. 반란군은 크게 패하고 압살롬을 따르던 많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도망쳤습니다. 여기에 반란군을 이끌었던 압살롬마저 살해당합니다. 다윗 왕에 대한 아들 압살롬의 반란은 완전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한때는 왕궁을 내주고 도망을 쳐야 할 정도로 급박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용사들을 거느린 다윗 군은 2만 명의 반란군을 죽이는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제 이 기쁨의 소식, 승전에 관한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압 장군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기뻐 날 뛰어도 부족할 텐데 요압 장군 표정에는 그런 기쁨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압살롬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전쟁에 나서는 모든 군사들에게 제발 아들 압살롬만은 죽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다윗 왕가를 지켜야 하는 요압 장군으로서는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반란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비록 왕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음에도 요압은 자신이 스스로 압살롬의 심장에 칼을 꽂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비록 전쟁에서는 승리했어도 다윗 왕에게는 이 승전 소식이 좋은 소식은 못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요압 장군의 속 깊은 생각을 모르는 철부지 젊은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독 제사장의 아들 아히마아스라는 젊은이였습니다. 이미 예루살렘 왕궁의 정보를 다윗 군에게 전달해주는 스파이 역할을 해서 다윗 왕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젊은이였습니다. 지난번에도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다윗 왕에게 전해주어서 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이번에도 자기가 이 승전소식을 전해주면 다윗 왕에게 크게 칭찬을 듣고 앞으로 출세도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압 장군에게 은밀하게 부탁을 합니다. 자기를 왕에게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왕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자기를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압 장군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늘 소식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 왕의 아들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 소식을 왕에게 전하도록 내가 너를 보낼 수 있겠느냐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스 출신의 젊은 군사를 대신 보냅니다. 실제로 오래 전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던 한 젊은이가 다윗 왕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요압 장군은 아히마아스가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도록 만류했던 것입니다. 결국 구스 출신의 젊은 군사가 소식을 갖고 다윗 왕이 있는 성문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아히마아스가 안절부절입니다. 또 다시 요압 장군을 찾아가서 부탁을 합니다. 나를 보내달라고, 비록 구스인이 먼저 떠나긴 했지만 나도 보내달라고... 또 다시 부탁을 합니다. 출세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아히마아스는 어떻게 해서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요압 장군이 또 다시 만류합니다. 이 소식으로는 상을 받지 못한다. 왕에게서 상을 받고 싶은 것 같은데 아니다. 이 소식으로는 절대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포기해라. 하지만 자기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요압 장군이 손을 듭니다. 네가 꼭 그리 하겠다면 할 수 없지... 허락을 받은 아히마아스는 단숨에 구스인을 따라 잡습니다. 빠른 길을 택해 달려 오히려 구스인보다 앞서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다윗 왕이 머물고 있던 성에 구스인보다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반갑게 맞는 다윗 왕에게 아히마아스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히마아스의 소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다윗 왕은 오히려 다급하게 묻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은 잘 있느냐? 그랬습니다. 요압 장군이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윗 왕에게는 승리가 문제가 아니라 아들 압살롬의 생명이 문제였습니다. 순간 덜컥 겁이 난 아히마아스는 알면서도 압살롬에 대한 대답을 얼버무립니다. 제가 올 때 큰 소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결국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자 화가 난 다윗 왕이 물러나 있거라 하며 호통을 칩니다. 아히마아스의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상을 받으려고, 출세해 보려고 뛰어왔는데 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중에 온 구스인을 통해 압살롬의 죽음을 듣게 된 다윗 왕은 성문 꼭대기로 올라가 통곡을 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아히마아스의 행동을 통해 얻게 되는 교훈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히마아스는 빨리 달리는 것, 먼저 도착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지름길을 찾아 구스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승전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먼저 도착해서 먼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성공이요 출세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빨리 돈을 벌고, 먼저 집을 사고... 이런 것이 성공이요 출세라고 믿으며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늘 아히마아스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둘째는 아히마아스는 승전소식을 전하는 그 기쁨보다는 그것을 통해 누릴 상과 명예, 출세만을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승전의 기쁨을 다윗 왕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그 기쁨이나 감사보다, 이것을 먼저 전함으로써 누리게 될 상과 명예, 출세의 길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소식을 전하는 자는 소식을 전하는 사명이 우선입니다. 그 사명을 제대로 해야 명예로운 것이요, 상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아히마아스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명을 다하는 것이 명예요, 출세입니다. 거기에 상이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히마아스는 싫은 일, 고통스러운 일은 회피했습니다. 그저 좋은 일, 체면서는 일, 칭찬받는 일만 하려 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을 알리는 일은 실상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제대로 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스인은 분명하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비록 전하기 싫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일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사는 데에도 싫은 일, 고통스러운 일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그 일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데 삶의 의미가 있고, 축복이 있고, 진정한 감사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