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나는 해외에서 사역하시는 한국인 목사님들을 모시고 이란의 지방도시에 흩어져 있는 성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고레스 대왕, 다리오 왕, 다니엘, 에스더 등 이란에 유적을 남긴 성경 인물들의 흔적을 설명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히 호텔로 돌아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데 거대한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비행기가 돌진해서 충돌하더니 검은 연기를 뿜으며 빌딩이 흉물스럽게 무너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 사건 때문에 공항이 폐쇄되어 귀국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슬람의 테러분자들이라는 것이 곧 밝혀졌다. 중동에서는 사건이 보도되자 이슬람의 원수 미국에 치명타를 가하는데 성공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가 거리를 메웠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3천여 명이 넘는 세계 경제의 핵심인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특별한 죄가 있어서 죽인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이유 없이 죽일 수 있었던 테러범들의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슬람을 잘 모르는 일부 광신자들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몰아붙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피해를 입은 아랍 사람들의 억울한 입장을 강조하며 이를 정치적 보복사건이라고 설득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요인들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원인은 이런 행위들을 정당화시키는 이슬람의 교리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진지하고 경건한 것 같고 신비스런 면도 있어서 모스크에 몇 번 찾아갔다가 무슬림이 된 경우가 있다. 이들은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뜻도 모르는 아랍어 코란 구절들을 외우면서 신앙이 성장해 간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이슬람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서방의 인권탄압에 대해서 계속 듣는다.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무슬림 형제들을 생각하면 속에서 울분이 치밀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이기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신앙심이 점점 깊어지면 코란의 지하드를 명령하는 구절들에 대해 교육을 받게 된다. 억울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 가장 숭고한 것이며 이 길이야말로 천국 입성이 보장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폭탄을 몸에 두르고 적진으로 들어가 죽고 그는 이슬람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하드란 대지하드와 소지하드로 나뉜다고 말한다. 대지하드는 범죄, 마약, 음란, 부패 등과 싸우는 영적인 싸움이며 소지하드는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들 수밖에 없는 방어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7세기 초에 이슬람이 생기고 12세기까지는 지하드를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코란 구절도 그렇게 해석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니 이슬람에서 4대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쓴 교리서에도 지하드는 이교도들과 배신자들을 죽이는 전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양심적인 이슬람 학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신앙이 깊어질수록, 코란을 더 잘 이해할수록, 무함마드의 행동 모범인 하디스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될수록, 이슬람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무슬림이 아닌 이교도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라는 코란 9장 5절이 진정한 지하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지하드는 지구상에 무슬림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는 코란 8장 39절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알라가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해서 자신에게 준 지상명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기회만 되면 기꺼이 이런 지하드를 실천에 옮기겠다고 다짐하는 진짜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지하드 운동을 하는 진짜 무슬림들, 즉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헤즈볼라, 함마스, 이슬람형제단 등에 소속된 사람들은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의 전쟁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무슬림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무함마드와 코란의 지침인 지하드 운동을 통해서 이슬람이 통치하는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코란에는 무슬림은 절대로 무슬림을 죽여서는 안 된다(코란4장92절)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면 철저히 코란을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무슬림을 죽이지 말라는 코란의 명령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을 죽이는 것일까? 실제로 무슬림 형제단은 1948년에 이집트의 국무총리 마흐무드 N. 파샤를 암살했으며 1981년에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으며 파키스탄에서는 2007년 12월에 지하드 운동을 하는 무슬림들에 의해서 비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되었다. 왜 무슬림들이 코란의 명령을 불순종하면서까지 무슬림들을 죽이는 것일까? 혹자는 이런 일들을 정치적인 문제로 돌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문제가 아니고 신앙문제이다.
무슬림이란 어떤 이들인가? 흔히 말하기를 알라(Allah)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선지자라는 신앙고백을 하면 무슬림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거기에 이슬람의 다섯 기둥 즉 하루 다섯 번씩 하는 기도와 구제와 일 년에 한 달씩 라마단 금식을 하고 평생에 한 번은 메카에 성지순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정의한다. 보편적인 상식으로 보면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하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믿는 자(무슬림)란 알라와 그 사도를 믿어 결코 의심을 품지 않으며 재산과 생명을 걸고 알라의 길에서 성전(聖戰:Jihad)하는 자이리라. 이런 자야 말로 진실한 자이니라.”(코란 49장 15절)
그러므로 이 구절에 의하면 지하드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무슬림들이 아니며 이런 자들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죽인 것은 알라의 심판을 대신 한 것이라는 것이다.(코란8장17절)
오늘날 자칭 이슬람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조차도 지하드 운동을 하는 자들의 활동을 무슬림 경찰들이 막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알라의 뜻대로 제대로 통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알라의 뜻대로 다스리지 않는 지금의 국법에는 순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소위 온건한 무슬림들과 코란대로 지하드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하여 통치하고자 하는 진짜 무슬림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슬람 지하드를 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쥐고 통치를 한다면 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그렇다면 이란(Iran)처럼 알라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란은 9월 9일 이슬람을 배신한 자는 코란에 기록된 대로 사형에 처하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슬람을 떠나도록 선동하거나 다른 종교를 권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며 도둑질하면 손을 자르고 간음하면 돌로 쳐 죽이고 무함마드를 모독하면 사형시킨다는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다른 이슬람국가들도 이런 법이 전통법 혹은 불문법으로 있기는 해도 실제로 형법에 성문법으로 삽입하고 이것을 아무도 바꾸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놓은 나라는 이란이 처음일 것이다.(FCNN방송 9월9일)
한편 이슬람 전사들이 지하드를 하는 것에 반대는 하지 않지만 자신이 지하드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어떨까? 코란에 의하면 이런 자들은 불신자들이라는 것이다.(코란 9장 38~45)
“알라와 내세를 믿는 이들(무슬림들)은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지하드)하는데 제외시켜 달라고 그대에게 요구하지 않나니 알라는 의로운 자들을 아시고 계시니라. 그러나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한 자들은 그대에게 허락하여 줄 것을 요구하매 그들의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어 그들은 의심 속에서 방황하고 있노라.”(코란9장44-45)
그러므로 9.11 이슬람 테러는 일부 잘못된 광신자들이 저지른 역사적 실수나 정치적 보복행위가 아니라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코란의 계시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는 순수한 무슬림들의 전형적인 지하드 실천의 모델인 것이다.
무슬림들은 속고 있을 뿐 원래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것만 깨닫게 된다면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순교자 사도 바울이 되었듯이 진짜 무슬림들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위대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영웅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급히 호텔로 돌아가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데 거대한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비행기가 돌진해서 충돌하더니 검은 연기를 뿜으며 빌딩이 흉물스럽게 무너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 사건 때문에 공항이 폐쇄되어 귀국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슬람의 테러분자들이라는 것이 곧 밝혀졌다. 중동에서는 사건이 보도되자 이슬람의 원수 미국에 치명타를 가하는데 성공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가 거리를 메웠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3천여 명이 넘는 세계 경제의 핵심인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특별한 죄가 있어서 죽인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이유 없이 죽일 수 있었던 테러범들의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슬람을 잘 모르는 일부 광신자들이 저지른 소행이라고 몰아붙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피해를 입은 아랍 사람들의 억울한 입장을 강조하며 이를 정치적 보복사건이라고 설득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요인들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원인은 이런 행위들을 정당화시키는 이슬람의 교리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진지하고 경건한 것 같고 신비스런 면도 있어서 모스크에 몇 번 찾아갔다가 무슬림이 된 경우가 있다. 이들은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뜻도 모르는 아랍어 코란 구절들을 외우면서 신앙이 성장해 간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이슬람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서방의 인권탄압에 대해서 계속 듣는다.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무슬림 형제들을 생각하면 속에서 울분이 치밀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이기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신앙심이 점점 깊어지면 코란의 지하드를 명령하는 구절들에 대해 교육을 받게 된다. 억울한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 가장 숭고한 것이며 이 길이야말로 천국 입성이 보장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폭탄을 몸에 두르고 적진으로 들어가 죽고 그는 이슬람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하드란 대지하드와 소지하드로 나뉜다고 말한다. 대지하드는 범죄, 마약, 음란, 부패 등과 싸우는 영적인 싸움이며 소지하드는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들 수밖에 없는 방어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7세기 초에 이슬람이 생기고 12세기까지는 지하드를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코란 구절도 그렇게 해석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니 이슬람에서 4대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쓴 교리서에도 지하드는 이교도들과 배신자들을 죽이는 전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양심적인 이슬람 학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신앙이 깊어질수록, 코란을 더 잘 이해할수록, 무함마드의 행동 모범인 하디스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될수록, 이슬람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무슬림이 아닌 이교도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죽이라는 코란 9장 5절이 진정한 지하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지하드는 지구상에 무슬림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는 코란 8장 39절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알라가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해서 자신에게 준 지상명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기회만 되면 기꺼이 이런 지하드를 실천에 옮기겠다고 다짐하는 진짜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지하드 운동을 하는 진짜 무슬림들, 즉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헤즈볼라, 함마스, 이슬람형제단 등에 소속된 사람들은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과의 전쟁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무슬림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무함마드와 코란의 지침인 지하드 운동을 통해서 이슬람이 통치하는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코란에는 무슬림은 절대로 무슬림을 죽여서는 안 된다(코란4장92절)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면 철저히 코란을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무슬림을 죽이지 말라는 코란의 명령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을 죽이는 것일까? 실제로 무슬림 형제단은 1948년에 이집트의 국무총리 마흐무드 N. 파샤를 암살했으며 1981년에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했으며 파키스탄에서는 2007년 12월에 지하드 운동을 하는 무슬림들에 의해서 비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암살되었다. 왜 무슬림들이 코란의 명령을 불순종하면서까지 무슬림들을 죽이는 것일까? 혹자는 이런 일들을 정치적인 문제로 돌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정치문제가 아니고 신앙문제이다.
무슬림이란 어떤 이들인가? 흔히 말하기를 알라(Allah)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선지자라는 신앙고백을 하면 무슬림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거기에 이슬람의 다섯 기둥 즉 하루 다섯 번씩 하는 기도와 구제와 일 년에 한 달씩 라마단 금식을 하고 평생에 한 번은 메카에 성지순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정의한다. 보편적인 상식으로 보면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하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믿는 자(무슬림)란 알라와 그 사도를 믿어 결코 의심을 품지 않으며 재산과 생명을 걸고 알라의 길에서 성전(聖戰:Jihad)하는 자이리라. 이런 자야 말로 진실한 자이니라.”(코란 49장 15절)
그러므로 이 구절에 의하면 지하드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무슬림들이 아니며 이런 자들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죽인 것은 알라의 심판을 대신 한 것이라는 것이다.(코란8장17절)
오늘날 자칭 이슬람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조차도 지하드 운동을 하는 자들의 활동을 무슬림 경찰들이 막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알라의 뜻대로 제대로 통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알라의 뜻대로 다스리지 않는 지금의 국법에는 순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굳게 믿고 있는 소위 온건한 무슬림들과 코란대로 지하드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하여 통치하고자 하는 진짜 무슬림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슬람 지하드를 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쥐고 통치를 한다면 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그렇다면 이란(Iran)처럼 알라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이란은 9월 9일 이슬람을 배신한 자는 코란에 기록된 대로 사형에 처하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슬람을 떠나도록 선동하거나 다른 종교를 권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며 도둑질하면 손을 자르고 간음하면 돌로 쳐 죽이고 무함마드를 모독하면 사형시킨다는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다른 이슬람국가들도 이런 법이 전통법 혹은 불문법으로 있기는 해도 실제로 형법에 성문법으로 삽입하고 이것을 아무도 바꾸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놓은 나라는 이란이 처음일 것이다.(FCNN방송 9월9일)
한편 이슬람 전사들이 지하드를 하는 것에 반대는 하지 않지만 자신이 지하드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어떨까? 코란에 의하면 이런 자들은 불신자들이라는 것이다.(코란 9장 38~45)
“알라와 내세를 믿는 이들(무슬림들)은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지하드)하는데 제외시켜 달라고 그대에게 요구하지 않나니 알라는 의로운 자들을 아시고 계시니라. 그러나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한 자들은 그대에게 허락하여 줄 것을 요구하매 그들의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어 그들은 의심 속에서 방황하고 있노라.”(코란9장44-45)
그러므로 9.11 이슬람 테러는 일부 잘못된 광신자들이 저지른 역사적 실수나 정치적 보복행위가 아니라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코란의 계시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는 순수한 무슬림들의 전형적인 지하드 실천의 모델인 것이다.
무슬림들은 속고 있을 뿐 원래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것만 깨닫게 된다면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순교자 사도 바울이 되었듯이 진짜 무슬림들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위대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영웅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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