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적 시금석
본문: 사도행전 5:17-3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감정을 따라 신앙을 하며,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고난과 어려움보다 편안함만을 좇는 실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볼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초대교회 사도들이 얼마나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을 받았으며, 인간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히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했던 감동적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 감정인가 성령인가
우리는 의외로 감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좋으면 열심히, 자기가 싫고 기분 나쁘면 이제까지 열심히 하던 일도 집어 던집니다. 더 나아가 시기와 질투 때문에 열심히 하기도 하고, 사울처럼 살기가 등등해서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더 나아가 옳지않은 동기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은혜의 원리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사용하심이 감사해서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할 수 없이 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할 수 없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닌 기뻐서 감사해서 신나서 행복해서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본문은 '다시 성전에 가서 전하라'고 말합니다.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옥에 갇힌 것인데 꺼내줬으면, '도망가라'고 말하던지 '다른 데서 전하라'라고 해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는 '성전에 또 가서' 전하라고 말합니다. 이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움츠리길 원치 않으시는 그 분께서는 사도들이 의식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세상에 똑똑히 그리고 당당히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인간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인간에 의해 옥에 갇히고,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가운데서도 기탄없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똑같은 믿음의 사람도 이렇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신경써서 두려워 떠는 이가 있는 반면, 인간의 어떤 말과 협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모든 것을 다수결로 하자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여론이 생깁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다수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무엇이라고 쓰여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우리는 쉽게 사람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 눈치보고 하나님 두려워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 고난인가 평안인가
신앙생활 가운데 편안한 것만 좋아하면 영적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난, 불편함, 댓가 지불함을 감사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는 지나치리만큼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큰 교회만 해도 별 다섯개 짜리 호텔 같은 인상을 주며, 아이들을 위해 모든 오락기를 교회 안에 들여놓아 최대한 교인의 편의를 제공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안함의 추구는 인간의 죄의 성향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손해보는 것, 참는 것, 힘든 것이 신앙의 핵심가치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성경은 고난과 역경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좁은 길이며, 힘든 것, 손해 보는 것, 오래 참아야 하는 것,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만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발끈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쉽게 하나님 앞에 따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고난도 함께 받기 위함입니다. 믿는 자라면 힘듦과 어려움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죄악적이게 살지 않으면 바보 취급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 사람을 죽이면 내가 사는 데 내가 먼저 죽겠다고 손들면 바보 소리 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고난 받는 것, 오해받는 것, 예수 때문에 아파하는 것 그것이 정말 행복한 것이고 감사한 것입니다. 이번 주는 좋은 일 생겨서 감사한 것 말고, 예수 때문에 오해 받아서 억울해서 잠을 못자서 감사합니다. 있지도 않은 일을 누가 했다고 해서 속이 뒤집어 져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깊은 자리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더니 '이런 일만 생겼어'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 생겨서 더욱 기뻐하며, 더 열심내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손해보고 억울한데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 그들이 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원리를 따라 살길 원합니다. 감정적이 아니라 은혜와 성령 안에서, 사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편안한 것 자꾸 좋아하지 말고, 예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그런 신앙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본문: 사도행전 5:17-3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감정을 따라 신앙을 하며,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고난과 어려움보다 편안함만을 좇는 실수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볼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초대교회 사도들이 얼마나 성령의 강한 인도하심을 받았으며, 인간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히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했던 감동적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 감정인가 성령인가
우리는 의외로 감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좋으면 열심히, 자기가 싫고 기분 나쁘면 이제까지 열심히 하던 일도 집어 던집니다. 더 나아가 시기와 질투 때문에 열심히 하기도 하고, 사울처럼 살기가 등등해서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더 나아가 옳지않은 동기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은혜의 원리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사용하심이 감사해서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할 수 없이 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할 수 없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닌 기뻐서 감사해서 신나서 행복해서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본문은 '다시 성전에 가서 전하라'고 말합니다.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옥에 갇힌 것인데 꺼내줬으면, '도망가라'고 말하던지 '다른 데서 전하라'라고 해야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자는 '성전에 또 가서' 전하라고 말합니다. 이 속에는 깊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움츠리길 원치 않으시는 그 분께서는 사도들이 의식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세상에 똑똑히 그리고 당당히 선포하라'는 뜻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인간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인간에 의해 옥에 갇히고,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가운데서도 기탄없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똑같은 믿음의 사람도 이렇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신경써서 두려워 떠는 이가 있는 반면, 인간의 어떤 말과 협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모든 것을 다수결로 하자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여론이 생깁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다수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에 무엇이라고 쓰여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우리는 쉽게 사람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 눈치보고 하나님 두려워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 고난인가 평안인가
신앙생활 가운데 편안한 것만 좋아하면 영적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난, 불편함, 댓가 지불함을 감사와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현대는 지나치리만큼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큰 교회만 해도 별 다섯개 짜리 호텔 같은 인상을 주며, 아이들을 위해 모든 오락기를 교회 안에 들여놓아 최대한 교인의 편의를 제공하려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안함의 추구는 인간의 죄의 성향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손해보는 것, 참는 것, 힘든 것이 신앙의 핵심가치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성경은 고난과 역경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좁은 길이며, 힘든 것, 손해 보는 것, 오래 참아야 하는 것,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만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발끈하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쉽게 하나님 앞에 따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구원을 받을 뿐 아니라 구원을 받은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고난도 함께 받기 위함입니다. 믿는 자라면 힘듦과 어려움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이고 죄악적이게 살지 않으면 바보 취급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 사람을 죽이면 내가 사는 데 내가 먼저 죽겠다고 손들면 바보 소리 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고난 받는 것, 오해받는 것, 예수 때문에 아파하는 것 그것이 정말 행복한 것이고 감사한 것입니다. 이번 주는 좋은 일 생겨서 감사한 것 말고, 예수 때문에 오해 받아서 억울해서 잠을 못자서 감사합니다. 있지도 않은 일을 누가 했다고 해서 속이 뒤집어 져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시는 여러분들 다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깊은 자리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었더니 '이런 일만 생겼어'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 생겨서 더욱 기뻐하며, 더 열심내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손해보고 억울한데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 그들이 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원리를 따라 살길 원합니다. 감정적이 아니라 은혜와 성령 안에서, 사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편안한 것 자꾸 좋아하지 말고, 예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그런 신앙인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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