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샘의료복지재단에서 탈북자 대상 의료사역을 펼치고 있는 박세록 장로가 지난달 21일 뉴욕장로교회에서 간증집회를 가졌다.
박장로는 이 날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이란 제목의 간증을 통해 "동족인 북한선교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사역"임을 강조하고는, "물질에만 의지하는 사역은 헛된 것이며 그들의 육과 영을 함께 치료하는 사역을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단동에서 벌이고 있는 의료사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샘 의료복지재단에서 펼치고 있는 북한에 1만개 왕진가방 보내기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뉴욕장로교회에서 매달 발행하는 교회내 소식지 '다락방소식 12월호'에 실린 이 날 박장로의 간증 요약문을 조금 수정, 여기 옮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간증요약문
제가 단동에서 나온지 20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서울,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집회 등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여기로 왔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온 까닭은 중국, 북한, 특히 동족 선교에 대한 하나의 싱글포커스를 말씀드리기 위한것입니다. 사실 북한선교를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안다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가나안 정탐꾼들에 대한 말씀은 영의 눈으로 보는 것과 세상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과 여호수아 갈렙의 보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가서 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탈북자 상황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북한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두산 밑에서 본 그들은 머리가 철사줄처럼 뻣뻣했고 머리에는이가 붙어서 하얗게 되어있었습니다. 그걸 본 저는 그때부터 그들에게 하이타이를 보내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스위스 제네바에 보고했습니다. 제가 보고를 마치자 인권위원회 의장은 저에게 3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조국, 조국에 있는 교회들은 그 탈북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그앞에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북한지역에 십수년간 물품을 들여보내는 사역을 했는데, 그 사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물질에만 의지하는 사역은 헛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단동에 1백여개의 병상을 가진 병원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육체와 영혼을 함께 치료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북한선교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사역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이 오늘의 제목인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봅시다. 먼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을 불러주셨다는 확신입니다. 장로,집사,목사 등 직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개인적인 우리의 부르심에 감사를 드리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간증을 잠깐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대학에 가기 위해 애를 썼는데 오히려 밥 한 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 19살이었는데, 저는 그 나이에 죽음만이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내리고 죽을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 날도 너무나 배가 고파 굶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성탄절 새벽송을 도는 사람들이 제 창가 옆에 와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는 그 때 벌떡 일어잤습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축복의 찬송을 부르는데 내가 이렇게 앉아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제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때 제 창가에 와서 찬송을 불러준 사람이 누구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들의 찬송이 천사들의 찬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북한선교를 위해 50년이란 세월을 참고 기다리게 해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누가 50년의 세월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신 창조주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평양에 들어갈 때 우리는 무거운 의료기구를 짊어지고 가야하기 때문에 도착해서는 온 몸이 온통 아프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우리가 힘들여 가져간 의료기구를 받고 나서는 고맙다고 하기보다는 불평을 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화를 내기보다는 그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당장 이 짓을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먼저 살아야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제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북한에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때 우리가 들어가면 이미 늦습니다. 북한에는 2만 7천 6백개의 당 건물이 있는데, 김일성 혁명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건물들은 교회라는 이름만 붙이면 바로 교회건물이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하고 나팔을 불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제가 사역을 하고 있는 단동은 신의주 맞은편에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압록강이 신의주에서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한쪽 중국은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에 반해 반대편 신의주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북한의 여인들이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이쪽으로 넘어와서 몸을 팔고는 그 돈으로 강냉이와 옥수수를 사갑니다. 어쩌면 압록강의 강물은 그들의 눈물일찌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붙잡아서 매춘행위를 일삼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로 서울에 살고 있는 한 동족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올해 북한으로 왕진 가방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1만개의 왕진가방을 만들고 있는데 1개 만드는데 60,70불이 드는그 가방을 6불 원가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을 신의주로 가져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교회에서도 많은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5천개의 왕진가방이 모인 상태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북한 선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마음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날 그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2005년에는 단동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북한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박장로는 이 날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이란 제목의 간증을 통해 "동족인 북한선교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사역"임을 강조하고는, "물질에만 의지하는 사역은 헛된 것이며 그들의 육과 영을 함께 치료하는 사역을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단동에서 벌이고 있는 의료사역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샘 의료복지재단에서 펼치고 있는 북한에 1만개 왕진가방 보내기 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뉴욕장로교회에서 매달 발행하는 교회내 소식지 '다락방소식 12월호'에 실린 이 날 박장로의 간증 요약문을 조금 수정, 여기 옮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간증요약문
제가 단동에서 나온지 20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서울, 로스앤젤레스, 워싱턴 집회 등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여기로 왔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온 까닭은 중국, 북한, 특히 동족 선교에 대한 하나의 싱글포커스를 말씀드리기 위한것입니다. 사실 북한선교를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안다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가나안 정탐꾼들에 대한 말씀은 영의 눈으로 보는 것과 세상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과 여호수아 갈렙의 보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가서 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년 전에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탈북자 상황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북한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두산 밑에서 본 그들은 머리가 철사줄처럼 뻣뻣했고 머리에는이가 붙어서 하얗게 되어있었습니다. 그걸 본 저는 그때부터 그들에게 하이타이를 보내는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스위스 제네바에 보고했습니다. 제가 보고를 마치자 인권위원회 의장은 저에게 3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조국, 조국에 있는 교회들은 그 탈북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그앞에서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북한지역에 십수년간 물품을 들여보내는 사역을 했는데, 그 사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물질에만 의지하는 사역은 헛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단동에 1백여개의 병상을 가진 병원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육체와 영혼을 함께 치료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북한선교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사역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이 오늘의 제목인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봅시다. 먼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을 불러주셨다는 확신입니다. 장로,집사,목사 등 직분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개인적인 우리의 부르심에 감사를 드리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간증을 잠깐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대학에 가기 위해 애를 썼는데 오히려 밥 한 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 19살이었는데, 저는 그 나이에 죽음만이 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내리고 죽을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 날도 너무나 배가 고파 굶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성탄절 새벽송을 도는 사람들이 제 창가 옆에 와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저는 그 때 벌떡 일어잤습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축복의 찬송을 부르는데 내가 이렇게 앉아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제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때 제 창가에 와서 찬송을 불러준 사람이 누구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람들의 찬송이 천사들의 찬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북한선교를 위해 50년이란 세월을 참고 기다리게 해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누가 50년의 세월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신 창조주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평양에 들어갈 때 우리는 무거운 의료기구를 짊어지고 가야하기 때문에 도착해서는 온 몸이 온통 아프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우리가 힘들여 가져간 의료기구를 받고 나서는 고맙다고 하기보다는 불평을 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화를 내기보다는 그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당장 이 짓을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먼저 살아야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제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신 주님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북한에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때 우리가 들어가면 이미 늦습니다. 북한에는 2만 7천 6백개의 당 건물이 있는데, 김일성 혁명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건물들은 교회라는 이름만 붙이면 바로 교회건물이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하고 나팔을 불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제가 사역을 하고 있는 단동은 신의주 맞은편에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압록강이 신의주에서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한쪽 중국은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에 반해 반대편 신의주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북한의 여인들이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이쪽으로 넘어와서 몸을 팔고는 그 돈으로 강냉이와 옥수수를 사갑니다. 어쩌면 압록강의 강물은 그들의 눈물일찌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붙잡아서 매춘행위를 일삼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로 서울에 살고 있는 한 동족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올해 북한으로 왕진 가방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1만개의 왕진가방을 만들고 있는데 1개 만드는데 60,70불이 드는그 가방을 6불 원가로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을 신의주로 가져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국교회에서도 많은 동참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5천개의 왕진가방이 모인 상태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북한 선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마음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날 그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2005년에는 단동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북한선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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