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지구촌(地球村)’이란 용어를 피부로 느끼는 때입니다. 이럴 때 너와 나 우리가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지구촌의 빈곤과 풍부함’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의 구석구석의 여러 나라 가운데서 뼈저리게 느끼는 극한의 삶, 인간 이하의 삶들을 사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그들은 삶 자체가 고통입니다. 인도 땅 한 켠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성냥공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던 소녀가 성냥갑을 붙이는 풀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기사를 읽으며 아리던 가슴을 느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기사화된 그 소녀뿐만 아니라 이 땅 곳곳에서는 소망을 잃고 죽어가고 있는 어두운 나라들과 그 나라에 사는 약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사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땅끝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바로 행할 수 있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중에 제자라면 누구나 그 명령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중요한 다른 명령이 하나 있다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웃의 개념을 나와 상관있는 사람들의 범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뿌리로 가서 볼 때 그 이웃의 개념을 나와 손익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그 명령은 우리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행동으로는 제대로 옮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웃이 내 피붙이를 떠나서 더 넓게 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때 우리는 성경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그분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시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내가 언제 그들에게 그런 일을 했습니까?” 반문합니다.

그 때 주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그분에겐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옥에 갇힌 사람들이 바로 ‘당신 자신의 형제들’입니다. 이 말씀은 문명화와 편리함 속에서 누리며 사는 우리들에게 그분이 당신의 목숨으로 나타내 보여주신 사랑을 우리더러 지구촌에 가운데서 몸으로 나타내 보이라고 하신 말씀이 분명합니다. 즉, 내 손을 빌어서 그 일을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랑과 생명은 통합니다. 진짜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살아나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많은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더 많이 늘어나지 않는 듯이 느껴질 때 참 서글픕니다. 그래도 말없이 내가 가진 것들을 부지런히 나누어 줄 곳을 찾아가는 보이지 않는 손들을 볼 수 있음은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랑을 나타낼 곳이 지구촌 구석구석에 너무너무 많은데 그것을 나누어주는 손은 너무 적습니다.

나 너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생색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랑과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원래 내 것이 아니었고,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잘 쓰라고 그 분이 주신 것임을 제대로 알고 말없이 행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 생색내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그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 모두가 이 기도하는 대로 일용할 양식에 만족할 수 있다면 지구촌 반대편에 사는 굶주리는 이웃들, 아니 바로 몇 시간만 차를 타고 내려가면 볼 수 있는 극한의 삶을 사는 그분의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먹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요즘 북한 식량공급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북한을 돕자”고 외치는 소리들은 그들의 정부를 돕자는 소리도 아니요, 바로 그 땅에서 체제 때문에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그분의 형제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들의 죽은 땅에서 그들 스스로 환한 얼굴로 먹거리를 생산해낼 수 있는 그 날을 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새해가 다가왔습니다. 무엇인가가 가장 풍성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굶주리는 이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너무나 을씨년스런 계절입니다. 우리 지구촌의 문제는 음식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라 생명을 담은 사랑이 없어서 기근입니다. 이때만큼이라도 우리는 적어도 그분의 명령 “가서, 사랑하라”는 명령을 깊이 묵상하고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을 느끼고 이때만이 아니라 내년 한 해도 변함없이 늘 사랑을 생명에다 담아 행할 것을 결단하는 때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그분은 지구촌 어느 곳에선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 극한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이들을 이 계절에도 찾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