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부터 세계 속에 전쟁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러ㆍ우전쟁에서 시작하여, 하마스,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에 대한 분쟁, 그리고 이스라엘ㆍ이란 전쟁과 미국의 이란 핵기지 폭격 등이 이어집니다. 전쟁의 바람을 붙들고 있던 천사가 이제는 그 제어하는 손을 놓은 것 같습니다.
전쟁은 여기에 참여하는 군인이나 테러리스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문제입니다. 막대한 인명과 자본, 심지어는 국운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는 군인만 아니라 민간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전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전쟁 전에 고려할 정의”(jus ad bellum)와 “전쟁 중에 고려할 정의”(jus in bello)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정의가 지켜질 때,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이 된다고 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항목으로는 정당한 권위, 정당한 명분, 정당한 의도, 마지막 수단이자 성공에 대한 기회로 전쟁이 고려되었으며, 후자로는 전투원ㆍ비전투원의 구별과 비례적 수단이 고려되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전쟁에 대한 기록은 적지 않습니다. 창세기에는 대홍수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니므롯은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여 최초의 제국 바벨론의 건설자가 됩니다. 그는 바벨탑을 건설하며 ‘세상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창세기의 바벨탑에서 신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의 바벨론에 이르기까지, 지리적으로는 당시 역사의 중원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온 세상까지, 전쟁은 반복되는 주요한 인간 활동의 하나임을 성경과 역사가 보여줍니다.
성경 속에서 선지서는 전쟁에 대한 묵상할 자료를 풍성하게 제공합니다. “힘의 정치”가 횡행하는 국제정치 현장에서, 선지자들은 마치 “정의로운 전쟁론”(just war theory)에서 거론하는 것 같은 중요한 예언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전쟁 위기 상황 속에서 왕의 바른 처신을 가르치고, 하박국은 제국주의 국가의 잘못을 질타합니다. 아모스는 전쟁 중에 일어난 그릇된 처사와 관련하여 유다와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이 저지른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아모스 1:3-2:3에 나오는 여섯 나라, 다메섹(아람), 가사(블레셋), 두로(페니키아), 에돔, 암몬, 모압은 한결같이 전쟁 상황에서 저질러지는 죄악을 거론합니다. 이것은 ‘전쟁 중에 고려할 정의’(jus in bello)에 대한 고대의 가르침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 전쟁 범죄에 대한 고발은 첫째로 다메섹의 죄(암 1:3), 곧 “철 타작기로 길르앗 사람을 압살”하는 포로에 대한 무자비한 살해입니다. 둘째로 가사의 죄(1:6)는 “사람을 사로잡아 타국에 포로로 거래하는 인신매매”입니다. 셋째로 두로(1:9)의 죄는 우호국과의 형제 언약을 무시하고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배신, 조약을 위반한 일입니다. 넷째, 에돔(1:11)은 그의 형제 된 민족을 칼로 죽이고 진노를 끝없이 품은 것, 곧 민족에 대한 증오와 보복적 전쟁입니다. 다섯째로 암몬(1:13)은 임산부의 배를 갈라서 인권을 말살하고 극단적 폭력으로 나라를 넓히려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압(2:1)의 죄는 에돔 왕의 무덤에 안장된 뼈를 꺼내어 불태우는 문화적 모독을 자행한 것입니다.
전쟁은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 가운데에서도 지킬 것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정복 때에도 “과일나무를 자르지 말라” 하십니다. 전쟁 중에도 외교적 신의와 인권을 유지해야 합니다. 인신매매, 문화재 파괴, 포로 살해는 척결되어야 합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은 전쟁을 사용하여 죄악을 심판하고 문명을 청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잃지 말고, 배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국제정치 상황에서도 “국가 간의 정의”(justice among nations)를 세우라고 명하십니다. 전쟁에도 윤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