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Photo : 기독일보)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지구상의 모든 민족의 축제인 2024 하계 올림픽이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어 축제의 서막이 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막식에서 펼쳐진 한 퍼포먼스를 사진으로 보며 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림 속에 나타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구성하여 연주하는 장면입니다. 그 안에는 예수님의 자리에 왕관을 쓴 여성이 두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서 있고 주위에는 드레그 퀸(Dreg Queen), 즉 여장을 한 남자들이 제자들의 자리에 앉고 서 있는 장면을 연출시켰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슬로건을 주제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데 초점을 두고 퍼포먼스를 한 모양새 입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슬로건을 하필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비유하여 잘못된 모습으로 비추는것 같아 우리에게 큰 아쉬움을 자아내게 합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이 공연의 주인공인 공연예술가 필립 케서린(Philip Catherin) 이 한 말입니다. “솔직히 논란이 없었다면 재미가 없었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을 갖고 이 땅에 있다면 그건 또한 다른 파시즘입니다” 이 말은 이것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오늘날 시대정신의 한 면을 대변해 주고 있는 씁쓸한 모습입니다.

일찍부터 그 시대의 사조를 선도해 간다고 자부하고 있는 프랑스 민족은 중세 시대 이후 강하게 부각된 주 종 관계의 불평등한 봉건주의(Feudalism) 사상을 탈피하기 위해 18 세기 후반 평민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이 토론의 장으로 이끌며 살롱(Salon) 문화를 형성시키고 드디어 계몽주의(Enlightenment) 의 서막을 이끌었던 민족입니다.

계몽사상의 주 슬로건 즉,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해야 하고 그 어느 것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가져야 할 권리 그리고 그것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이 아름다운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이제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으로 빗나가고 만 것 같습니다. 이 정신을 이제는 성분별에 빗대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려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표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인생은 순례의 길이요 그 순례의 길을 걸어가다 반드시 끝을 맞이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과같이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사40:6-8) 우리 인간의 육체는 그냥 들의 풀처럼 피어 있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인생에 있어 영화 즉 부귀영화는 들에 잠시 피어 있다 죽어버리는 들꽃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모든조건이 부하여 자랑할 것도, 그렇다고 부귀영화가 없다고 자괴감에 빠질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삶의 여정에서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것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양 가운데 순례의 여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본향을 향하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찬양은 작시자 김희보(1918-2002)가 쓴 글을 가지고 한국 교회음악의 선구자 김두완 작곡가(1926-2008)가 쓴 칸타타 "순교자"의 첫 번째 나오는 곡 입니다. 이 칸타타 첫 페이지에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순교한 북한 교회의 성직자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그의 아버지 되시는 김치근 목사 이십니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북한에서 목회하시다가 북한군으로부터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결국 김두완 작곡가는 아버지를 추모하며 인생의 순례 여정을 마치고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쓴 곡입니다. 아버지에게 이 곡을 바치기 위해 혼신을 다 해 작곡하였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곡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찬양은 순례의 여정을 밟고 있는 우리 인생이 천국을 바라보며 영원한 소망을 확인하는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곡은 한국인들의 감정을 쉽게, 하지만 깊게 자극하는 찬양입니다. 그렇기에 한국 교회의 크고 작은 교회의 성가대가 찬양하며 목이 메다 울먹이게 하는 찬양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변화되는 현상들이 너무나 큰 도전과 혼란함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순례의 길을 걸으며 본향을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이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말씀의 영원성을 찬양하는 삶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것을 통해 주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신 이사야의 예언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한다고 고백하지만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박스에 담아놓은 내 사상 내 생각을 기준으로 감히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를 판단하려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매 순간 고백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내가 아닙니다. 주님 당신이십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라는 사실 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만나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큰 축복의 비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D. L 무디(Dwight Lyman Moody, q837-1899) 선생님이 그의 인생 말년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머잖아 어느날 내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요. 믿지마십시오. 그 때 나는 그 이전에 어느때보다 생생히 살아있게 될 것이오.” 1945년 4월 어느날 두 명의 호송병이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를 교수대에 데려가려고 오자 감방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말을 이어갑니다. “이제 나는 끝이네 하지만 내게는 이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네”

우리도 이 순례자의 길을 찬양으로 고백하며 지내다 인생의 끝자락에 이 두 믿음의 거장들이 고백한 말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다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