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경칩ㆍ춘분이 벌써 지났으니, 등산로에 동물의 출현이 당연합니다. 오전 강의에서 돌아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힘겹게 산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즐겨 다니는 등산로에 큰 방울뱀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녀석은 나의 발자국을 느꼈는지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큰 방울뱀의 완벽한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본 것은 처음입니다. 뱀이 흥분하지 않도록 가만히 전화기를 꺼내서 사진을 찍습니다. “저 정도의 성체로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을 이겼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의 겨울잠도 능히 잘 견딘 것 같습니다. “치이익” “치이익” 끔찍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나를 생명의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30여 년간 캘리포니아의 야산을 하이킹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을 보았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맹독을 가진 방울뱀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본 녀석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방울뱀을 죽이진 않았습니다. “순리에 맡기자”(Let it be!)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때, 교회 근처의 야산을 하이킹하다가 방울뱀을 만났습니다. 방울뱀의 끔찍한 소리 때문에, 아들은 내가, 딸은 아내가 등에 업고, 한참 방울뱀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들은 울었습니다. 근처 집 주인에게 “방울뱀이 있다” 하니, 그는 “나의 이웃”이라 했습니다. 얼마 후, 그 집 근처에서 “방울뱀 조심”이라는 팻말을 보았습니다.

방울뱀에 대한 저의 내면을 살펴봅니다. 솔직히 감정은 좋지 않습니다. 사망의 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성경의 뱀에 대한 가르침은 매우 부정적이고, 뱀에 물린 사람들의 고통스런 이야기는 더욱 그러한 감정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은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뱀이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뱀도 자신이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 공격합니다. 방울뱀의 끔찍한 소리도 “오지 말라” “나를 피하라”는 경고입니다. 군 생활 중 전방 부대 근처에서 하숙하던 때에, 그 하숙집이 뱀탕 집이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우리 청년 장교들에게 뱀 항아리를 열어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뱀은 약한 사람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일종의 탕약 재료였기 때문에, 그 하숙집에서 보신하고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뱀에 대한 공격적 행동이나 배려의 행동은 이성적인 사고나 감성적 기분으로만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성과 감성을 경유, 행동의 열매를 맺는 우리의 의지에서 발생합니다. 의지는 우리의 몸을 움직이는 결단을 낳습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의 혁신』(Renovation of the Heart)이라는 책 속에서 의지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기능이라고 합니다. 폴 리쾨르도 그의 박사학위 논문 『의지적인 것과 비의지적인 것』(The Voluntary and the Involuntary)에서 의지의 기능은 일정한 계획에 대한 동의를 거쳐 행동으로 이끄는 “의사결정”(decision-making)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체는 의지적 결단에 따라 움직이므로 환경에 영향을 줍니다.

뱀을 죽이거나, 피하거나, 살린 것은 의지적 결단으로 몸을 움직인 결과입니다. 이브가 옛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은 것은 선악을 결정짓는 의지적 행동입니다. 윤리적 반역이라는 죄는 무지, 실수나 주저와 같은 소극적 심리상태의 소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사가 걸린 전인적 의지 행위의 소산입니다. 마음의 중심인 의지는 주의 계시와 이에 대한 믿음 아래 있어야 합니다. 계시로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설득함이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지성, 감성과 의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의지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사랑으로 불붙은 의지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