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인공지능 기업 Open AI가 2022년 11월 30일 출시한 서비스로, 쉽게 풀어보면 인간과 쉽게 대화할 수 있는 지능형 챗 로봇이다. 챗GPT는 일반 챗봇과 매우 다른 인공지능이며, 특히 일반 챗봇은 학습 기능이 없고 정해진 질문에만 답할 수 있는 반면, 챗GPT는 억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사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찾고 요약할 수 있다.

가령 목사님이 갑작스런 병상 예배를 드리거나 장례예배를 드려야할 때 별도로 설교문을 작성하지 않아도 챗GPT에 환자나 망인의 상황을 알리고 설교문을 부탁하면 10초도 걸리지 않아 가장 알맞은 수려한 설교문을 만들어 목사님 손에 쥐어 준다. 여기에는 가장 적합한 성경구절은 말할 것도 없고 상황에 맞는 예화도 곁들여 원하는 설교시간에 꼭 맞게 작성된다.

나는 챗GPT에게 의사 직업 중 어느 전공과목 전문의가 먼저 사라질 것인지 물어보았더니, 3초만에 답이 올라오는데 영상의학과, 병리과를 비롯하여 소아과, 일반내과 등을 열거하였다. 결혼 40주년에 아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1박2일 여행과 하룻밤 깜짝 이벤트부터 꽃바구니와 사랑의 편지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인공지능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인간보다 못하여 인간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약 인공지능이 있으며, 둘째는 인간과 비슷한 강 인공지능이 있고, 마지막 세 번째는 인간보다 뛰어나 인간이 조절 불가능한 초 인공지능이 있다. 특히 초 인공지능은 오히려 인간보다 뛰어나기에 인간을 지배하고 조절할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현재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군사 분야에서는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여 직접 살상할 수 있는 킬러로봇이 전투에 실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초 인공지능 로봇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능력이 있어서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수억 권의 책과 논문을 읽으며, 아울러 자가 복제가 가능해 임신과 양육의 긴 기간을 가지지 않고서도 자기보다 훨씬 더 진보된 인공지능 로봇을 마음껏 생산해낼 수 있으니 인간과의 격차는 갈수록 늘어나기 마련이며 결코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아실로마에서는 스티븐 호킹 박사와 일론 머스크 등 인공지능 및 로봇 전문가 2,000여 명이 모여 아실로마 인공지능 원칙을 발표하였는데, 장기적 이슈로 능력의 상한선에 주의해야 하며, 지구생명의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자각하고, 위험에 대비하고, 반복적 자기개선과 복제가 가능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엄격하게 통제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마지막으로 한 국가가 아니라 인류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함을 역설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 인격적인 지, 정, 의가 여기에 해당하며, 아울러 관계성과 자율성을 지닌 존재인데, 만일 인공지능 로봇이 이러한 지적 능력과 정서적 함양, 의지를 갖추고, 나아가 관계를 형성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성까지 갖춘다면 이러한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은 새로운 인류인 로보-사피엔스의 출현이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인간보다 더 탁월한 지능을 가지고, 인간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력도 좋으며, 순간적인 판단력도 뛰어난 초 인공지능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신인류라고 보아야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문화인류학적, 사회적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생산하고 활용해야하는지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머신러닝과 자기복제를 통해 인간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초 인공지능이 출현하여 자신들이 새로운 인류라고 선언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시간이 어쩌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본주의, 과학주의, 물질주의가 함께 어우러져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가속력으로 달리기만 한다면 머지않아 로봇의 지배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할 수 있다고 다 해서는 안 되며, 하고 있다고 다 옳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말씀에 입각한 생명윤리가 든든한 수레바퀴가 되어 함께 굴러갈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과학과 생명윤리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