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흥행 요인, PC 강박에서 자유로운 콘텐츠
각 캐릭터 문제점 시청자 관점에서 자유롭게 해석 가능
일부 캐릭터, PC 영향 탓 '교과서적' 선량함 내비친 약점
데스게임 특유의 극한 타락, 비참가자 목회자에게 적용
두 가지 무리수 때문에 서사 자체보다 게임으로 어필해
서사의 개연성과 충실함에서 간과할 수 없는 약점 남겨
◈데스게임의 강점: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인격 타락의 최저치
<오징어 게임>의 범세계적인 인기가 언론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작품은 일본 데스게임의 핵심 요소들을 차용한 가운데, 전 세계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능숙한 연출과 대중성 있는 서사를 무기삼아 예상치 못한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런 흥행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그동안 영미권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및 디즈니 콘텐츠에 대한 심리적 피로감을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넷플릭스와 디즈니 콘텐츠 서사에 거의 강박적으로 반영되고 있던 정치적 올바름(PC) 성향에서 자유로운 콘텐츠에 대한 열망은 <오징어 게임>에 쏠리는 인기를 견인하는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오징어 게임> 안에도 곳곳에 정치적 올바름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영미권 영화나 TV쇼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다.
정치적 올바름 이념에 좌우되는 작품들의 특징은 서사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일관되게 권선징악형 어조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선(善)'이라고 말할 때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함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지극히 방만하고 환상적인 자유 및 평등 이념을 말한다. 그래서 다소 일방적으로 교훈적이고 교육적이다. 특정 사상을 반강제적으로 주입시키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이런 고고한 태도가 지나치면 시청자들은 피로감과 반감을 느낀다. 반면 <오징어 게임>은 극히 일부 장면들을 제외하면 특별히 교조적인 태도로 서사를 풀어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타락하고 무너져 내리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심판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저 캐릭터는 뭐가 잘못이고, 이 캐릭터는 뭐가 문제인지 시청자 각각의 관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각 캐릭터가 작품 내에서 갖는 역할과 그 평가 방향이 미리 확고하고 '올바르게' 정해져 있는 최근의 영미권 넷플릭스, 디즈니 콘텐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청 포인트이다.
이는 데스게임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자 강점이다.
▲데스게임 장르의 약한 대중성 문제를 영리하게 극복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 |
데스게임의 최고 흥미요소는 인간이 생존과 자기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로 밑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데스게임 참가자들이 시시각각 보여주는 타락의 향연은 다른 장르의 작품에서는 커다란 불쾌감이지만, 데스게임 장르 작품에서는 악의적 카타르시스의 원천이다.
다만 일본 데스게임 작품들이 특유의 극단적이고 변태적인 잔혹함을 내세워 대중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달리, <오징어 게임>은 잔혹함의 표현 수위를 어느 정도 낮추고 캐릭터의 심리상태 묘사에 집중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했다.
결론적으로 <오징어 게임>은 최근 대세가 된 정치적 올바름 성향 콘텐츠의 약점과 데스게임 장르의 약점을 영리하게 회피하여 원래 대중성이 약했던 데스게임 콘텐츠를 세계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약점: 비현실적 선량함과 편향적 기독교 비하
하지만 <오징어 게임>이 이런 영리함과 강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큰 약점을 갖고 있고, 그런 점이 작품의 흥미와 몰입도를 감쇄시키는 주 원인으로 작용한다.
첫 번째 약점은 주요 캐릭터들이 가끔 말도 안될 만큼 과도하게 내비치는 선량함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순간뿐만 아니라 잠자는 시간까지도 서로 칼부림을 하고 죽여대는 상황에서, 그리고 자기 목숨이 즉각적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일부 등장인물이 교과서적인 선량함을 내비치는 기묘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특히 외국인 노동자, 여성 등 소위 소수자, 약자들의 편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정이 많고 남을 잘 믿는 다소 어리숙한 성격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 분)는 자신을 친근하게 잘 챙겨줬던 상우(박해수)의 애달픈 속임수에 넘어가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한다.
지영(이유미 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새벽(정호연 분)이 마음에 든다며 자기의 괴로운 과거를 이유로 아주 손쉽게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을 한다.
▲외국인 노동자 알리의 죽음은 <오징어 게임>에 약하게나마 반영된 정치적 올바름 성향을 확인시켜 준다. |
이는 <오징어 게임>이 영미권 작품들보다는 덜하지만, 그 역시 정치적 올바름의 이념을 약하게나마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국인 노동자와 여성 등 소수자와 약자들이 다른 이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캐릭터가 갖는 현실적 면모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특정한 윤리적 교훈을 던져주려는 의도는, 서사의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그 재미까지 감퇴시킨다.
두 번째 약점은 데스게임 장르 콘텐츠 특유의 강점, 즉 인간 타락의 최저치 보여주기를 데스게임 참가자들을 넘어 비참가자, 특히 기독교 목회자에게 편파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다.
데스게임 장르 작품의 묘미는 원래 사회에서 비록 무능력하고 어수룩하지만 선량한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삶과 죽음이 갈리는 극한 상황에서 심하게 이기적이고 악독한 성격으로 돌변하려는 유혹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있다.
거의 대부분 참가자는 이런 유혹에 무너져 내린다. 주인공을 비롯한 극소수의 참가자만 그 유혹을 힘겹게 이겨내지만, 이런 위대한 선택과 상관없이 주위는 이미 죽고 죽이는 처참한 죄악의 현장으로 돌변해 있다.
생존과 이익을 두고 인간 개개인과 집단이 공히 보여주는 이 인간성의 저열함은 그것이 지닌 현실성 때문에 시청자에게 특별한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은 이런 데스게임 고유의 서사 기법을 게임 바깥의 목회자에게 적용한다. 이는 특정 종교를 표적삼아 악의적으로 비하하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의도가 데스게임 자체에 집중되어야 할 서사를 샛길로 빠지게 함으로써, 지영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크게 반감시키고 있다.
지영 역시 생존게임 참가자로서 생존을 향한 극단적 욕구를 앞에 두고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런데 이런 처지를 자살이라는 방편으로 아주 손쉽게 벗어난다. 그리고 그 근거를 게임 외부에 타락한 목회자, 친딸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파렴치한 거짓 기독교인으로부터 얻은 불행과 상처에 둔다.
기독교 비하를 위해 서사의 강점을 포기하고, 매력적일 수 있었던 하나의 캐릭터를 별로 납득되지 않게, 허무하게 소비해 버린다.
▲지영의 죽음은 <오징어 게임>의 편향적인 기독교 비하 의도를 보여준다. 이는 결국 서사의 개연성과 설득력,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악수로 작용한다. |
1번 참가자 일남(오영수 분)의 경우는 기훈(이정재 분)을 위해 게임에서 져주는 데 어느 정도 납득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가 게임 설계자이자 모든 음모의 흑막인 만큼, 구슬치기 게임에서의 어이없는 패배를 남들을 속이며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퇴장할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영을 둘러싼 서사는 그만한 설득력이 없고, 서사를 풀어가는 기법 측면에서도 서투르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면, <오징어 게임>은 지금보다 더 대단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현재 해외에서 <오징어 게임>이 큰 호응을 얻는 데는 서사 자체의 힘보다 이 작품의 설정이 갖는 매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을 홍보하는 방식, 그리고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만일 <오징어 게임>의 서사의 매력이 압도적이었다면 감독과 배우들의 해외 활동이 드라마 홍보의 주된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나 해외 시청자들 모두 <오징어 게임>의 서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작품에 등장하는 게임, 도구, 복장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이는 서사의 치밀함이 설정이 주는 흥미의 크기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오징어 게임>의 서사에 보이는 약점은 데스게임 장르의 콘텐츠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을 정치적 올바름 이념 변호와 기독교 목회자에 대한 편향적 비하를 위해 감퇴시켜버린 처사로 인해 유발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오징어 게임>은 서사의 개연성과 충실함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약점을 남긴 아쉬운 작품이 되고 말았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