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왜 흉부외과는 지원하는 의사가 많이 없을까요?”
질문을 받은 흉부외과 의사가 이렇게 답을 합니다. “흉부외과 의사는 사망률이 95%가 넘는 수술도 해야하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생각할 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말이죠… 흉부외과 의사는 매순간 선택에 놓이죠. 수술을 해야할지 말지, 일단 수술을 하면 더 많은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에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흉부외과에 지원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예상하고 준비를 해도 열기 전엔 예상 할 수 없는 것이 심장입니다. 어떤 징후들은 꼭꼭 숨어 있습니다. 지뢰 처럼요. CT나 MRI가 놓치기도 하고, 때론 환자 본인이 그런 증상들을 숨길 때도 있죠. 그래서 흉부외과 수술실은 마치 전쟁터 같아요. 흉부외과 의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를 살려내야 합니다. 우리가 포기한다면 환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거든요.”
저는 이 대사에서 의사는 목사 같고, 흉부외과는 교회 같고, 그리고 아픈 심장은 아픈 성도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다루는 자들이 목사입니다.
영적으로 사망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부터,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는 확률이 95%가 되어도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 목사입니다. 목사의 말 한마디가 한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합니다. 열어 보기 전에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심장이듯이, 아파하는 성도들의 마음도 열어 보기 전에는 겉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상담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닌데, 목사는 기본적으로 아픈 성도를 돌보는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픈 성도를 보면, 새벽이라도 자동적으로 뛰어 나가는 착한 마음이 있는 자라야 합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생각만큼 안전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에, 잘못 밟으면 터지는 지뢰가 여기 저기 예상치 않은 곳에서 터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사는 어떤 경우든지, 지뢰를 밟아 터진 성도들을 치료하고 영적으로 다시 살려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포기하면, 더이상 이 세상에서는 아픔을 치료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를 부르신 주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맡겨주신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말씀의 꼴이 성도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