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당위(當爲)를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답을 찾는 것이 우리 신앙과 삶과 공부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공부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역사 공부란 컨텍스트(context)에 대한 고민입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밖에 없음을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고민은 '이러한 변화하는 시대 속에 여전히 정합성을 유지하며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최종원 박사(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VIEW)의 저서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초월한 공동체(홍성사)> 출판기념회가 5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강연에 나선 최 박사는 먼저 출판의 변(辯)에 대해 "기본적으로 오늘 한국 신학계나 한국교회가 '텍스트'라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그 텍스트에는 성경부터 교부들의 서적, 신학자들의 담론 등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제 고민의 출발 지점은 수없이 제기되고 있는 새 관점이나 새로운 신학적 사유들과, 오늘 21세기 한국교회라는 제도 교회의 상황과 어떠한 연결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교회사에 접근할 때도, 경전 텍스트를 연구하듯 교리에 대한 정합성을 찾고 오늘 우리가 따를 신조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것으로 제한돼 버렸다"며 "이것이 제가 초대교회사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 지점"이라고 전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이만열·양승훈·박흥식 박사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대웅 기자 |
최종원 박사는 "개신교인들이 아주 즐겨 쓰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역시 너무 고민 없이 사유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이 말을 썼을 때, 그들은 누구 못지 않게 '제도 교회'라는 치열한 현장, 즉 컨텍스트에 기반하고 있었다"며 "면죄부 판매나 교회의 타락이 성경을 떠난 것이므로 다시 성경의 가르침을 붙들자고 했다는 단순한 도식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은 당시 규범이었고, 교회는 성경 해석의 권한을 쥐고 있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속에서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생성됐다는 것은, 기존 교황청 중심 가톨릭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라며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성서 시대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수용하고 지키자는 의미를 넘어, 중세의 질서와 결별하고 새로운 종교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새 종교, 새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최 박사는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 은총으로, 성경으로'라는 명제는, 당시 면죄부로 대표되는 갖은 세속적 욕망을 종교의 외피로 포장하는 혼탁함을 거둬내기 위해, 담백하게 나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절대적인 신의 은총을 갈구하고 성경 속 예수님의 가르침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우리가 붙들고 있는 '믿음·은총·성경'의 절대성 강조도 왜곡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오늘의 교회 현실은 '오직 성경, 오직 은총'이 이 땅의 이웃과 주변의 고통과 아픔을 효과적으로, 또는 정당하게 비껴가기 위한 도구로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성경을 붙들어야 한다든지,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하니 하나님 앞에 더 나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든지 등의 표현들은, 우리 내면에 자리한 타자를 외면하는 불편함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기제로 종종 활용된다"며 "즉 성경이 우리가 주변의 타자(他者)를 배제하고 혐오할 근거로 오용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고민 없이 사용되는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조금 다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이 표현들은 자칫 우리에게 돌아갈, 회복할 가시적 원형이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최 박사는 "오늘날 기독교는 '당위의 전쟁'에 빠져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당위를 지지할 근거를 성경 텍스트에서 찾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성경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면, 당위와 교조적인 시각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당위와 규범적 주장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 시대 교회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천착한다고 하면서,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토대가 되는 컨텍스트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해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텍스트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며 "그래서 오직 성경만을 붙들고 정통 신학만을 탐구한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오히려 반사회적 행태를 여과 없이 노출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이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종원 박사는 "성경이 무오하며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려면, 우리의 믿음에 반하는 사회 변화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갖고 문자적으로 붙들기보다, 시대 변화와 과학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성경의 가르침이 충족성을 지니고 있음을 믿고 적극적으로 그 변화를 담보해 낼 가치를 성경 속에서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며 "그런데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이 선언적 표현이 많다 보니 그것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신앙고백서들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17세기 잉글랜드에서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신조는 단순히 종교의 신조가 아니라, 청교도 혁명으로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왕이 없던 시기에 만들고자 시도했던 헌법이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한 번도 잉글랜드 내에서 고백된 적이 없는 불운한 신조"라며 "17세기라는 잉글랜드 컨텍스트에서 생성된 시대의 산물을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붙들고자 하는 시도는, 그 신앙적 태도를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쉬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이러한 불균형은 신학과 목회가 텍스트에 몰두하는 만큼, 그 텍스트가 구현되는 제도 교회의 현실에 밀접하게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텍스트답게 되려면, 컨텍스트 속에 정합성이 증명돼야 한다"며 "쉽게 말해, 우리의 교회 현실을 우리의 시각과 방식으로 풀어가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종원 박사는 "제 고민의 일단은 넘쳐나는 신학 담론이 제도 교회의 문제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칼 바르트, 판넨베르크, 팀 켈러, 제임스 스미스, 톰 라이트가 우리 제도 교회의 컨텍스트에 어떤 유의미한 성찰을 줄까 하는 것"이라며 "이 간극은 쉽사리 메워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예전의 거칠고 투박하지만 민중신학이나 토착화 신학과 같은, 우리네 컨텍스트 속에서 사회를 읽어가고자 하는 시도가 외면될까"라고 반문했다.
최 박사는 "중세 1천년의 가톨릭은 '대중 종교'라 불린다. 가톨릭은 얼핏 성직자들 중심의 엘리트 종교가 지배한 것 같으나, 교회는 끊임없이 대중의 필요와 종교적 열망에 반응해 변천을 거듭했다"며 "물론 그것이 '성경적이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으나, 제 관심은 시대와 사회 속에서 제도 교회가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고 대중의 건전한 종교적 욕구를 소화해 내고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을 했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 기독교가 어떻게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자. 타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당연시되던 '인종주의' 시대 정서 속에서, 기독교는 출신 배경이나 혈통을 넘어선 보편의 인간애를 추구했다"며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특수해 보이는 그들의 인간에 대한 가치가 보편적인 신적 가치의 반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초월성이 사회 속에 내재화됐다. 그것이 규범과 당위로 확장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성의 정의를 뒤집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그 자신감의 근원은 복음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믿음이라기보다, 복음에서 제기하는 인간관이 하나님의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가치를 반영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여러가지 복잡한 면이 있지만, 기독교가 공인됐다는 것은 특수해 보이는 기독교의 가치가 사회 보편의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종원 박사는 "뒤집어 보면, 교회가 쇠퇴한 이유나 결과는 대부분 이 '인종주의'로 귀결된다. 로마 제국 말기 교회는 대내외적 도전에 맞서 신조와 직제를 마련했지만, 동시에 차별을 제도화했다. 가장 높게 드리워진 벽은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 확산된 여성에 대한 '배타'"라며 "오늘 기독교가 직면한 도전 역시 포스트모더니즘과 이슬람, 동성애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리고 기독교의 외피를 입은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질문했다.
▲출판기념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
최 박사는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 찾아야 할 것은 돌아갈 가시적인 원형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교회가 오늘 몸담고 있는 사회와의 상호 작용을 하느냐, 사회가 교회를 수용하느냐에 있다"며 "사회와 별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나간다면, 교회는 희망이 있다. 이를 위한 과제는, 거친 표현일지 모르나 세상에 흘러 들어가야 한다. 이는 타협이기보다, 교회의 특수성이 사회의 보편성에 부합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를 위한 '다시 읽기'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주체적으로 책을 읽기보다 설교자의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듣고, '전적 순종'이라는 그럴듯한 종교용어로 하나님을 주체성 있게 찾아 나가는 구도의 길에서 벗어나 버렸다"며 "진정한 종교개혁의 후예라면, 주체적 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듣는 것을 넘어 성찰적으로 읽어 나가는 법을 터득할 때, 하나님과 우리 자신, 성경과 교회와 사회를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적'이라는 말을 '주체사상'만큼 조심스러워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 속에는 제도 교회나 사제를 통하지 않고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주체적 인간, 근대적 개인'을 만들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며 "이제 우리는 한 걸음 용기 내어 '듣는 종교'에서 '읽는 종교'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읽기는 주체성을 갖고 읽는 것, '거기, 그 때,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 오늘, 나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읽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 경험을 통한 성찰"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