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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내 대학 동기들은 이혼한 친구들이 많다. 여학생이 두 배 이상 많았다는 것도 이유가 되지 않는 것 같고, 다른 공통분모도 없다. 30-40대 나이에는 대개 일반적으로 10쌍 중 두세 쌍 정도 이혼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동기들은 거꾸로 3쌍 정도만 이혼하지 않았다.
그들 중 학교에 늦게 입학해 나이가 좀 있는 동기 형님 한 사람은 이혼 후 방황 끝에 고등학교 때 헤어진 첫사랑을 만나, 나이 오십에 결혼을 했다. 여자도 같은 조건이었다. 그가 전부터 자기 첫사랑 같은 여자는 없다고 늘 아쉬워하던 모습을 보아왔지만, 엇갈린 인연을 이제 와서 다시 이어붙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가 의미가 있었다. 지금 아내는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그저 있는 것만으로 좋아해 준다는 것이다. 자신은 성격을 개조하거나 새 사람이 된 게 아닌데, 전에는 같은 행동을 해도 죽어 마땅한 역적이었던 것이 지금은 아무 잘못도 아닌 게 되었다고 한다.
꽤 괴팍한 여자와 초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형님 역시 남을 그다지 배려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가 훨씬 많이 양보하면서 큰 사랑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결국 사람이 문제지 이혼남이나 이혼녀가 무슨 큰 죄를 짓거나 성격 파탄이라서 그리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와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 실패했다는 친구들은 말한다. 역시 사람이고, 역시 인품이 중요하다고.... 이는 물론 맞는 말이다. 운동부 학생을 대입 준비 종일반에 넣으면 아무리 천부적인 선수라도 낙제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어떤 환경이 주어지는가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누구의 편에 서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독립군은 반란군이 되고, 독립투사도 테러리스트가 된다. 결혼생활에서도 좋은 신랑이 천하에 몹쓸 놈이 되기도 한다(다만 이런 것을 상대주의로 해석하면 안 되며, 때에 따라 선악이 뒤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의 행동을 해석하는 관점과 포용력이 각기 다르다는 의미다).
그래서 배우자를 찾는 많은 방법과 기준이 있지만, 문제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위기 상황에서는 인격, 천성, 성품, 사고방식 등이 결국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꼬인 매듭을 풀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가 이혼을 하려고 한다든지 도저히 이 사람과는 살 수 없다고 하면, 인내심이 부족하다든지 좀 더 깊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그런데 노력해도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 보인다. 폭력이나 의심증, 정신병적인 오해와 강박 등 사람으로서 풀기 어려운 배우자가 있다.
처음에 언급한 형님의 경우가 그랬다. 그런데 사람을 바꾸자 이렇게 간단히 해결된다니,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답이라고 할 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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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사람만 좋고 사람끼리 맞으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까? 위 커플의 결합은 사실 정식 결혼과는 다른 변칙적 요소가 있다. 둘 다 장성한 아이들이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으며, 서로의 과거나 지금껏 다져온 삶과 그것을 각자 계속 챙기는 것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 등 일종의 필요를 채우는 상생관계라고 할까.
두 사람이 첫 연애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듯이, 어쩌면 그 어린 나이에 초혼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편안한 커플이 되지 못했거나 이혼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은 '잘 맞는 사람'이라는 좋은 여건과 함께 '적합한 조건'이 주어졌기 때문에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많은 부부들이 금전적 문제와 생활고 등으로 헤어진다. 돈만 풍족해도 갈라서지 않을 부부는 상당수이다. 그렇게 볼 때, 외적 이혼율의 꽤 많은 수치는 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는 괜찮던 인격도 바닥을 드러낸다. 어차피 인간의 속성이나 인품은 기대할 것이 없다. 또한 조건이 인격을 만들기도 한다.
그 이혼한 친구들이 개떡 같은(?) 사람을 만나 실패했다는 넋두리도 하지만,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은 그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친구들이 다 성격이 괴팍하고 인품이 부족한가? 그렇지도 않다. 대개 보면 이혼의 위기는 거의 모든 부부에게 오지만, 그래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풍족함이 일단 중요하다. SNS에 늘 호텔에서 밥 먹고 해외여행 사진 올리는 사람들이 지지고 볶으며 그리 박터지게 싸울 일이 무엇인가? 있던 스트레스도 날아갈 판인데 말이다.
한국에서 돈 있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남편이 아내의 친정 식구들까지 챙기고 하다 보면 일등 아빠에 일등 사윗감이 되어 인정받는데, 바가지 긁힐 일이 무엇이고 이혼할 일이 무엇이랴. 사이는 안 좋아도, 각자 삶을 누릴지언정 이혼은 잘 안 한다.
또 양쪽 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이혼을 금기시해 어떻게든 자제하는 노력을 하며 인내하는 편이다. 주변에 좋은 멘토가 있거나 돕는 이가 있어도 가정이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된다. 조건이 그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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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사람인가 조건인가? 둘 다 중요하다는 맥 빠진 결론이 틀림없이 맞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내 생각엔, 조건보다 7:3, 아니 8:2 정도로 사람이 중요하다고 본다. 왜 그런가?
조건이란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지만, 결국 사람이 만들고 개선하는 것이다. 인품이 있고 의지가 있으면 서로 맞출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지금의 결혼문화, 이혼 실태 같은 것도 사실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다.
어느 정도의 조건이 있어야 이혼하지 않을 정도의 삶을 함께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좋은 신랑, 좋은 배필일까? 그 판단도 모두 사람들이 만든 기준이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아무리 어려도 엄마나 아빠가 되면 서툴지만 자기 것을 포기하고 부모의 역할을 다하고,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없던 능력이나 처신도 나오기 마련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조건이 남편과 아내를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조건이 안정적이면 서로 안 맞아도 극단의 대립으로 흐르지 않고 잘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또한 조건을 중시하는 이들은 그것을 위해 감정이나 애정을 많이 포기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큰 기대가 없어 어느 정도 만족하는 경향도 적지 않다. 사람에게 목숨을 걸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부부생활에서 인격은 결국 바닥을 드러내고 조건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아주 극단적인 생존과 연결돼 있음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다산하고 번성하라고 아담과 이브에게 말씀하셨는데, 열심히 일하고 아이를 낳는 고통 안에서 축복을 주셨다.
남자가 일하지 않으면 둘은 굶어 죽는다. 그리고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노동력 확대나 노후를 보장받을 길이 없고, 더욱이 죄 문제를 해결할 여자의 씨, 즉 메시아를 탄생시킬 수 없어서 그들은 둘째 사망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하다.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는 지상낙원의 왕이 된다 해도, 그곳이 무인도라면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조금 버티다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조건이 열악해도 함께 헤쳐 나갈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외롭지 않고 자손을 얻어 생명도 이어갈 수 있다.
결혼 생활은 아무도 관여하거나 해결해 줄 수 없는 무인도에서의 극단적 생활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지금 따지고 있는 조건의 중요성은 현대사회가 만든 부분이 많다. 결국 사랑이고,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헤어질 이유도, 위기를 넘기고 다시 사랑할 이유도 없었을 것 같으니까.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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