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모임에서 존경하는 장로님과 대화를 나눴다. 장로님께서는 최근 섬기는 단체 상황과 자기 선택 이유를 설명하셨다. 요약하면 진로를 수정하게 되었고 신뢰하기 어렵고 신앙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과는 단절을 선택했다며 양해를 부탁하셨다. 신뢰할 수 없고 함께 어려운 사람과 단절을 결단하며 적잖는 아픔이 있었음을 나누셨다.

대화 중에 우리는 좁은 이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중한 처신의 필요성을 나눴다. 맘에 안 드는 사람은 모두 단절하기도 어렵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기준과 경계를 허물기도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 한동안 장로님과의 대화가 머리에 맴돌아 그리스도인 처신에 관해 숙고할 기회가 되었다.

그리스도인 처신에 관해 생각하다 C.S. 루이스를 생각했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요 탁월한 작가였다. 그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숙고가 묻어나는 깊이 있는 글을 많이 남겼다. 1963년 11월에 사망한 그의 글이 현대인의 삶에도 적확(的確)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C.S. 루이스는 <시편 사색>에서 그리스도인의 처신에 대한 글을 남겼다. <시편 사색>에서 C.S. 루이스가 전하는 그리스도인 관계 설정의 기준을 정리해 본다.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포악하거나 음란하거나 잔인하거나 부정직하거나 심보 사나운 사람들과는 무례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만남을 피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무례를 범하지 않는 선(線)’을 지키는 소극적인 단절을 추천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이 된다. 그는 우리가 그런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없을 만큼 “너무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오리혀 우리가 그런 사람과 함께 지내도 될 만큼 충분하게 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들이 주는 유혹과 영향력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가 말하는 소극적 단절의 이유들을 거칠게 정리하면...,

우선, 악한 사람들과 함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연약함이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그들이 품은 악의 영향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루이스는 주장한다. 음란, 포악, 그리고 잔인함 등이 주는 파괴적이고 부정적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약함은 이런 악한 영향력을 견디기 어렵다.

둘째 루이스는 함께함으로 받는 압력과 영향력을 강조한다. 악인과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그들로부터 그들과 그들의 삶을 묵과하고 묵인하라는 유혹과 압력을 받는단다. 루이스에 의하면 ‘말과 표정과 웃음’이 유혹이요 압력이다. 그러므로 선하고 바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선한 사람, 선한 동기와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을 만나 교제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이 악인과 함께하는 모습이 악인들에게 크레딧을 줄 수 있다. 초신자나 분별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에게 악한 사람에 대한 무장해제를 돕는 행위가 될 수 있어 악인을 신뢰하게 할 수 있고, 악한 자들이 품은 악에 대한 경계와 기준을 허물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성숙하고 깨끗한 삶을 사모해야 한다. 유대인 사상가 죠수아 헤셀은 “더 큰 삶을 품지 않으면 진부하고 천박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악하고 약하기에 선하고 거룩하고 신실한 친구가 필요하다. 구약 잠언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잠13:20)”라고 가르친다.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
(Photo : )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