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우리끼리 즐기고 만족하는 신앙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주님의 일꾼을 사회와 국가로 배출하는 사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본지는 설 명절을 앞두고 최근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두란노)>를 펴낸 김형석 교수를 만났다. 자신의 신앙생활과 체험을 주로 담아 2004년 펴낸 <나의 인생, 나의 신앙>을 토대로 한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우리 사회와 역사를 위해 기독교가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를 보충했다고 한다.
김형석 교수는 머리말에서 자신의 신앙적 과정을 3단계로 요약한다. 먼저 20세가 될 때까지는 교회가 '신앙의 모체'이자 '신앙생활의 가정'이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교회라는 가정적 울타리를 벗어나 국민과 지성인으로서 신앙을 탐구했고, 예수의 가르침이 인생의 진리일 수 있는가 질문했다. 기독교 사상가와 저명한 신학자들의 정신을 통해 신앙을 굳혀갔고, 이는 교회가 요청하는 교리적 신앙과 더불어 진리로서의 복음을 터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세대학을 떠나 30여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교회와 현실 사회의 장벽과 거리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기독교는 기독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음을 망각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그는 "교회는 물론 대표적인 기독교 공동체이지만, 민족과 국가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는 소금과 빛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 주님의 권고이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와 더불어 선하고 아름다운 삶과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며 "그런 마음밭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건설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됐다. 하늘나라는 노력 없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김형석 교수와의 인터뷰.
-어떻게 보면 이 사회와 교회가 교수님을 다시 불러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수'에 대한 책이야 서양에는 더 많고 우리나라도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보는 예수와, 사회와 역사가들이 보는 예수는 거리가 멉니다. 저도 이쪽 저쪽 책을 다 읽어봤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인가 할 때, 성경에는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 예수를 완전히 객관적 인물로 보는 사람들은 시각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생이라 생각하고, 예수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복음서만을 기준으로 살펴봤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쓴 <예수>에는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가는 부분부터 나옵니다. 그 전 이야기는 일반 역사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고, 천주교에서는 너무 심하게 교리화하는 부분이라 뺐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으니, 현대인의 시각에서 '정말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라는 안목으로 써 봤습니다.
<예수>에 대한 반응을 저도 생각해 봤는데,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 가졌던 마음과 문제의식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공감대가 목사님들의 설교보다 이 책에서 더 와 닿으니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교리를 넘어 진리로'를 강조하고 계신데, 교리란 무엇이고 진리란 무엇인지요.
"쉽게 보면 왜 스님들이 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많은데 목사님이 쓴 베스트셀러는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님은 인생을 이야기하니 우리와 공통점이 있지만, 신부나 목사님들은 교리를 말하니까 그 사람들만의 것이지 우리와는 공통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벽이 있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십니까. 진리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지, 교리에 대해 이야기하신 분이 아닙니다. 교리주의자가 아니거든요. 제일 뚜렷한 것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계명도 모든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율법과 계명에 구속받는 게 아니지요. 율법과 계명이 신약에서 교리로 변했지요.
이 말은 교리란 인간 생활을 돕기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교리에 따라가기 위해 구속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천주교에서 모든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진리를 교리화시켰었지요. 종교개혁으로 그걸 바꿨습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에서 교리는 축소됐지만, 신학이 나와서 진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다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또 어떤 목사님들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이지요.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 세 사람이 있습니다. 칼 바르트, 라인홀드 니버, 폴 틸리히입니다. 저는 1962년 미국에서 이 세 분을 모두 봤습니다. 니버는 '성경을 읽는 사람은 역사에 참여하게 돼 있다'고 했습니다. 틸리히는 성경을 읽은 사람인데 인간 사상의 근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니 저 같은 철학자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바르트는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봐요. 성경을 읽음으로써 교리는 극복되기 때문입니다.
진리란 무엇일까요.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무신론자이든 다른 종교를 믿든, 예수님 주신 말씀을 내 인생관으로,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진리입니다. 하지만 교리로 받아들이면 교인이 되어 교회를 따라갑니다. 진리는 인간 전체를 위해 있고, 교리는 기독교를 위해 있습니다. 더 좁아지면 율법으로 가겠지요.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는 거의 못 들었을 것입니다(웃음). 불교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석가님의 교훈을 내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 최고의 인생인 사람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이 인생관이자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데, 교리로 자꾸 묶어 놓으니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군요.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위일체가 근본 교리입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자꾸 따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등일 수 있는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으니 상하(上下)가 있을텐데.' 칼빈도 이걸 갖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고 신앙을 가진 사람은, 삼위일체 이야기 자체가 좀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신앙을 가지고 살다 보면, 그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슈바이처 박사에게 '삼위일체를 믿느냐'고 물으니 '성경에서 그런 말씀 한 마디도 못 봤다'고 답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믿긴 믿지요. 그런 문제입니다.
또 하나, 연세대 재직 시절 매년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한 번은 감리교 한 감독님이 와서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도 어떻게 못 한다. 그러니 예수님도 가룟 유다는 어떻게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장로교 목사님이 와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다.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장로교와 감리교 이야기이지, 성경에는 그런 게 없거든요(웃음).
그러니 학생들이 제게 와서 어떤 게 옳으냐고 물어요. 뭐랬는고 하니, '나는 그런 문제 갖고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했지요. 왜냐하면 제가 신앙을 갖고 보니, 예정과 자유의 문제가 아니고, '은총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낀 건 그렇습니다. 거기에 자유도 예정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리와 진리 사이의 문제들도 그렇습니다.
하나 추가한다면, 제 신앙의 은인이 목사님 두 분인데, 그 두 분 모두 우리 지성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성공하질 못했습니다. 한 분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 정권 밑에서 일했으니 완전히 교회를 등진 것이었고, 다른 한 분은 기독교 대학 총장으로 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배척당했습니다. 다 실패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두 분,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고당 조만식 장로님은 20대에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존경받는 크리스천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두 목사님은 신앙을 교리로 받아들인 사람이고, 뒤의 두 분은 그 신앙이 신앙관, 가치관, 인생관이 된 분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인 평신도들이, 교리에만 평생을 바친 성직자들보다 앞선 것이지요. 목사님들은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이지만, 그런 걸 어떡하겠습니까?"
김 교수는 책에서도 "윤리의 상황성은 교리의 본질성과는 괴리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교리가 인도주의를 병들게 하거나 거부할 때는 기독교가 진리가 되지 못하며, 지성인들의 부정적 비판을 받게 된다"며 '바리새인적 신앙'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하셨는데, 그렇다면 평신도들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김형석 교수는 30여년간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했고, 지난 24년간 그 내용을 녹음해서 원하는 이들에게 우송하고 있다. 그는 만 100세가 되는 2020년까지 이러한 봉사를 계속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 교인들 가운데 '김형석 선생님이 다른 교회에 가면 많이 설교하시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왜 안 하시느냐'고 하십니다. 그런데 설교하면 교인들이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목사님이랑 자꾸 비교해요. 그걸 미리 알아서, 우리 교회에선 설교 안 합니다. 그래도 우리 모임에 나왔던 분들은 다들 열심히 교회 잘 섬깁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느 교회가 세습했다고 하면, 제게 물어봅니다. 세습이 옳다 그르다는 건 누구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내 교회인데 아들에게 줘야지', 아들이 '우리 아버지가 키운 교회인데 내가 해야지' 한다면 그것은 세습입니다. 소유욕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 같으면 싸우고 그러지 않고 그저 떠나겠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몇백 명쯤 떠나면, 목사가 '아, 옳지 않았구나' 알지 않겠습니까.
광우병 파동 때부터 저는 MBC를 보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면 보겠는데, 그것을 안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MBC가 방향을 바꿀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세습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잘 알고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로 가는 세습을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세습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왜 합니까? 인생을 살아갈 교훈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교육자는 교육할 때, 정치가는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고, 사회사업을 돈벌이로 삼아선 안 되고 하는.... 가장 인간다운 도리와 예수님 말씀을 일치시켜 주고 싶습니다. 인간답지 못한 사람은 신앙을 못 가지더라고요." <계속>
▲김형석 교수의 책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이대웅 기자 |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올해 한국 나이로 99세가 된다.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서 철학 연구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끊임없는 학문 연구와 집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60-1970년대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외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일상 속에서 작은 진리와 사색거리를 발견해낸 '철학 에세이'들은 당시 큰 사랑을 받았고, 최근 재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재출간 붐은 그의 책 <예수>가 다시 출간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시작됐으며, 이 외에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 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