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
알리스터 맥그라스 | LINN | 310쪽 | 16,000원


과학자 출신의 영국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는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Science & Religion, A New Introduction)> 첫머리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인간이 탐구하는 학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분야”라면서도 “둘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를 이해하려면, 두 분야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 책은
과학과 종교(특히 기독교)의 소통에 관한 ‘입문서’이다.

현재 과학과 종교의 사이에는 네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먼저 ‘갈등(Conflict)’ 혹은 ‘전쟁’ 모델은 학문적 영역에서는 힘을 잃었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으며, 다윈주의 논쟁에서 이같은 모델을 불신하게 된 과학자와 신학자들은 둘을 상호 존중하고 인정하자는 ‘독립(Independence)’ 모델을 주장하게 된다. ‘과학은 종교에서 오류와 미신을 걷어내고, 종교는 과학에서 맹신과 그릇된 절대 원칙을 벗어낼 수 있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처럼 둘 사이는 상대방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낸다는 ‘대화(Dialogue)’ 모델과 함께, 우주를 영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로 나눠서는 안 되며 하나로 다뤄야 한다는 ‘통합(Integration)’ 모델도 있다.

‘전쟁 중’인 종교와 과학?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같은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오늘날 종교와 과학은 사실상 ‘전쟁’ 중이다. 종교인들은 과학에서 허점을 찾아내고, 과학자들은 과학적 잣대로 성경을 재단하고 있다. 현대 ‘창조론’처럼 종교가 과학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종교운동가들이 있는가 하면, 최근의 ‘과학적 무신론’에서 보듯 과학이 종교를 대체했다고 단언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 과학적 무신론자들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어떠한 대화에도 참여하기를 거부한다.

맥그라스는 둘 사이의 기념비적인 3대 논쟁,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와 태양계, 뉴턴과 기계적 우주·이신론, 다윈과 인류의 생물학적 기원 등을 먼저 따라가면서 “대중매체에 의해 고착되는, 과학과 종교에 대한 극히 부정적 관점을 타파함으로써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선다.

그에 따르면 우리 생각과 달리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늘 복잡했고, 둘의 관계를 묘사하는 ‘지배적 담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가 필사적인 싸움을 벌여왔다’는 이론조차 지배적 담론이 아니었다는 것. 그는 로널드 L. 넘버스가 엮었던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뜨인돌)>에서처럼, 과학과 종교에 관한 ‘고정관념’ 또는 ‘근거 없는 신화’를 몰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맥그라스에 따르면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은 최초 교황 측근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다윈을 대신해 영국학술협회 회의에 나온 헉슬리와 설전을 벌이다 ‘무식하고 오만한 성직자’로 알려진 옥스퍼드 주교 윌버포스는 <종의 기원>에 대한 해박한 논평을 통해 몇 가지 중대한 약점들을 지적하자 다윈이 이를 수용할 정도의 사이였다.

맥그라스는 “과학의 진보가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한다. 서양과학은 1940년대까지 우주를 영원불변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지난 50년간 부상한 소위 ‘표준우주모델’은 우주가 영원하지 않으며 어떤 한 시점에 생겨났다는 개념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서 우주가 무(無)로부터 생겨났다는 전통 기독교의 창조관은 현대 우주론과 공명하고 있다.

맥그라스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주장하는 ‘보편적 다윈주의’처럼 우주의 본질과 생명의 의미를 묻는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이들이 양쪽에 모두 존재하지만, 과학과 종교, 그 어느 쪽도 현실을 완전히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양측이 함께한다면 사물을 바라보는 어느 한 영역의 시각만 고집하는 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입체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과 종교, 경쟁 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
과학과 종교 모두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과학이 ‘어떻게’에 집중한다면, 종교는 ‘왜’에 주목한다는 차이가 있다. 맥그라스는 “과학은 메커니즘을 밝히려 하지만 종교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서도 “이들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용할 뿐이므로, 이러한 접근법들이 경쟁 관계에 있거나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초도덕적’이라 생각했던 과학이 답을 찾지 못한 부분들에서 종교가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논리적인 신 존재 증명과 검증 및 반증, 실재론과 그 대안 등을 소개하고, 자연 속 질서 등을 근거로 한 ‘창조과학’에 대해서도 살핀다. 그러면서 “창조 교의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또다른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며 “창조 관념은 신이 만물을 만들었다는 보편적 믿음 뿐 아니라 신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는데, 그렇다면 신이 세상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생겨난다”고 전한다. 이 물음은 자연과학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자연과학과 자연신학을 비롯해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대한 일반적 주제들을 다루고, 우주론과 양자론, 진화생물학과 종교심리학 등 현대의 주요 이슈들까지 짚어본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포함해 과학과 종교간 대화에 공헌한 10명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이 입문서를 토대로 더 깊은 학습에 나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쓴 듯 객관적으로 나열한 자신의 사례에 대해 그는 3권으로 구성된 <과학적 신학(A Scientific Theology)>에서 자연철학이 어떻게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주목했고, 자연의 상태와 외부 세계의 실재, 이 세계를 신학적으로 표현할 필요성 등 세 가지 영역을 다뤘다고 설명한다. 그는 ‘기독교 신학과 자연과학의 잠재적 접점으로 새롭게 부활하는 자연신학’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