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아내와 함께 일어나 비아 돌로로사, 즉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그 ‘슬픔의 길’을 조용히 걸었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며, 여기 저기에서 깃발 든 단체관광 손님들로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웠던 그 때와는 달리 아직 기념품 가게들도 문을 열지 않은 인적 드문 길을 성경을 찾아 읽으며 걸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내어준 바 된 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시며 넘어지시고, 또한 여러 사건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14군데의 표시를 따라가 보았다.
이미 죽도록 채찍에 맞아 한걸음 걷기도 힘드셨을 주님은 머리에 억지로 씌운 가시로 만든 면류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들로 시야가 가려졌을 것이다. 건강한 남자가 열심히 걷는다면 재판 받은 자리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15-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예수님은 그 길을 오래오래 채찍 맞으며, 넘어지시며 걸어 가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조용한 비아 돌로로사! 성경 읽는 소리 외에는 말도 건네지 않고, 주님이 걸으셨던 마지막 고난의 길을 묵묵히 묵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로마 숫자로 5번(V)을 기록한 곳에 멈추었다. 예수님이 다섯 번째 멈추신 그곳은 구레네 시몬이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어서 넘어지셨던 예수님을 대신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진 바로 그 장소였다(마 27:32). 아마 나라면 억지로가 아니라, 얼른 예수님 대신 그 십자가를 메고 갔을 것 같았던 5번 장소였다. 그러나, 6번 장소에서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그냥 벽에 로마 숫자 6번(VI)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화려한 기념교회도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울린 것은 초라한 벽에 새겨진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5번과 6번 사이는 걸어서 3-40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구레네 시몬이 3-40보도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했고, 그 사이에 다시 예수님이 지시고 가다가 6번에서 멈추셨다는 사실이다. 방금 전 “나라면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십자가를 질텐데”라 생각했던 나의 의지가 몇 보도 못가서 깨어질 연약한 것임이 깨달아지면서 울컥 울음이 올라오고 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뚝 선 골고다에 올랐다. 그곳에는 성묘교회(Holy Sepulchre)가 세워져 있고,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카톨릭에 의해 새벽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파이프올겐 소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조용히 기도하고자 하는 크리스천 순례자들 사이에 끼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그 곳에 조용히 앉아 비록 주님의 십자가를 30보도 지고 가지 못할 죄인이나, 생명 다해 십자가만 전하는 종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예루살렘에서 맞는 고난주간에 십자가의 복음이 더욱 뜨겁게 내 맘을 적시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