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우리 교회 모든 공적 사적 모임의 한 가지 지침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먼저 큐티를 나누고 모든 모임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개인적인 상담이나 기도를 원하는 분들도 일단 자기의 큐티를 나눈 후, 다음 순서를 갖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당회가 지난 주간에 있었습니다. 바쁘신 장로님들이 여러가지 사안들을 가지고 모이셨으나, 교회 방침에 순종하시어 진지하게 큐티를 나누는 모습들이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요. 그 날은 우리 교회 큐티 책자인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가이드에 따라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의 죽었던 아들이 엘리야의 기도를 통하여 살아나는 장면을 묵상하는 순서였는데 어떤 장로님이 이런 묵상을 나누셨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평소에 엘리야를 잘 공경했기에, 그 여인의 아들이 죽는 불행을 당해, 엘리야는 그렇게 간절히 그 아들의 소생을 위해 기도하였고, 결국 그가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평소에 주의 종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개인의 위기를 당해 강력한 중보기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며 주의 종들과의 관계에 더욱 최선을 다하시겠다고 나누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지만, 대개 많은 교회들이 장로들과 담임목사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데 당회가 이렇게 먼저 큐티나눔을 하면서 회의를 진행한다면 아름다운 모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 날의 당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는 모임으로 잘 성료되었습니다.

이어서 수요 제자훈련반에서도 큐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성도님이 울먹이며 이런 묵상을 나누셨습니다. 역시 죽었던 과부의 아들이 살아나는 장면을 묵상하면서, 아들이 죽었음을 안 과부의 고백을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왜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시나이까?” 여인은 아들의 죽음이 자기의 죄와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고 애통하며 간절히 회개하였고, 이후 엘리야가 그 죽은 자를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 기도하였을 때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가까이에 심령이 죽은 듯 보이는 버려진 영혼들을 위해 진심으로 회개하며 기도한다면 천사들은 그 죽은 심령들을 하나님의 보좌위로 데리고 가 살려주시며 구원하신다는 것이지요. 이 묵상을 듣는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즉시 이 묵상처럼 우리 주변에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회개하며 기도하자고 제안하며 함께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그 자리에 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을 위한 뜨거운 회개가 제 심령에서 쏟아졌습니다. 미국을 위해 중보하라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많은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을 세우셨는데, 교회가 온전히 빛과 소금의 구실을 못하였고 미국을 위하여 온전히 중보하며 기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미국은 부패해가며 수많은 인생들이 구원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요. 우리 교회역시 온전히 빛과 소금의 구실을 감당하지 못하였음을 인정하고, 이는 담임 목사인 저의 책임인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주님 앞에 죄송하며 간절한 회개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한 평신도의 순수한 큐티 나눔으로 지난 주 제자훈련 성경공부 시간은 돌연 뜨거운 부흥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크고 작은 모든 모임에서 이렇게 진지한 말씀 묵상이 나누어질 수 있다면 진정 예기치 못한 부흥의 불길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큐티는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인 로고스(Logos)가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레마(Rhema)의 말씀으로 들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레마의 말씀이 심령가운데 임할 때 우리는 대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위대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눅 1:37) 하나님을 새로운 수준으로 만나게 됩니다. 부디 큐티를 통해 하나님을 새로운 차원으로 만나시는 개인적이며 교회적인 부흥을 경험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