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고, 상관이 부하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순리(順理)라고 말합니다.

옛 속담에도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올리 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달 전에 치매에 걸린 칠순의 어머니를 라스베가스에 버린 비정한 아들 이야기가 매스컴에 보도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어떤 마음씨 좋은 한국 사람의 도움으로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한인 경찰서까지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자초지정을 알게 된 경찰관들이 나쁜 아들 놈이 어디에 사는지 불쌍한 어머니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자식을 보호하려고 “자신이 길을 잃어 버린 것이지, 아들이 버린 것이 아니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고 합니다.

자식을 끝까지 변호하려는 어머니의 “내리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자기 새끼는 예뻐서 물고 빨면서,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게는 눈 길하나 주지 않는 것이 오늘 날의 세태입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을 위해서 자식을 낳은 것도 아닌데, 자기 자식들을 돌보면서 부모에게 공치사를 떨고, 유세를 부리는 철없는 자식들도 있고, 심지어는 자녀 부양의 무거운 짐을 송두리째 연로한 부모에게 다 떠 넘기는 못난 자녀들도 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자신의 가족마저도 내팽개치는 나쁜 인간들이 많이 있어서 가족을 유난히 챙기는 사람들을 “훌륭한 인간의 표본”으로 떠 받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 아름답고, 고귀한 이유는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내리 사랑” 때문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올리 사랑”(치사랑) 때문입니다. 내리 사랑은 대부분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동물들도 자기 새끼는 목숨을 걸고 사랑하고 지킵니다.

하지만, “올리 사랑”은 의식적인 노력과 수고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본능과 충동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희생까지 내포한 순수한 열정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 12)고 가르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고난을 받는 민족을 보면 같이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는 원수도 품을 수 있는 “올리 사랑”이 이 세상을 따듯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자연적으로 흘러내리는 “내리사랑”도 아름답지만, 정말 소중하고 고귀한 사랑은 위로 올라가는 “올리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기에 우리를 “인간”(Human being)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역행(逆行)하는 사랑은 사람의 깊이를 가늠하는 계측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