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차이나머니(China Money)가 한국을 사들이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은 우리나라에서 주식, 채권, 부동산, 기업 등 전방위 `사자'에 나서고 있다. 그 규모가 5조원에 육박한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미국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라섰다.
건국기념일 연휴를 맞은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 도심을 점령한 가운데 급증하는 외환보유고를 무기로 중국의 `바이 코리아(Buy Korea)'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나치게 커질 영향력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유럽계 떠난 자리, 중국이 메웠다
9일 금융감독원, 국토해양부,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중국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사들인 주식, 채권, 부동산, 기업 등 국내 자산 규모는 총 4조7천426억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을 제외하면 단일국가 중 최대 규모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미국을 제치고 최대 `큰손'으로 떠올랐다. 중국 본토에서만 3조1천285억원 어치의 한국 채권을 사들였다.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인 홍콩을 더하면 3조3천609억원에 달한다. 미국의 매입액은 3조2천220억원으로 이에 다소 못미친다.
반면 올해 영국은 2조1천818억원, 프랑스는 2조507억원 어치의 국내 채권을 팔아치웠다.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이 떠나간 빈자리를 중국이 대신 메운 셈이다.
보유 비중에서도 중국계는 이미 14.1%에 달해 미국(21.7%)을 위협할 정도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9천799억원 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던 중국은 올해는 3분기까지 벌써 1조2천501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일본과 유럽계 국가들이 일제히 순매도에 나서 10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운 것과는 극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중국은 한국 땅도 사들이고 있다. 지금껏 중국이 사들인 국내 부동산 면적은 336만㎡로 여의도 면적(290만㎡)을 이미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만 반년새 953억원 어치를 새로 사들여 일본의 투자액(790억원)을 앞질렀다. 투자가 가장 활발한 제주도에서는 종합휴양단지, 신혼테마파크, 차이나타운 등 중국기업의 각종 개발계획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제조업, 서비스업 등에서 중국의 직접투자는 상반기에만 2억2천800만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천687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251% 급증한 수치다.
◇ `한국 사들이기' 더 세질 듯‥경계론도 대두
중국의 한국 투자는 3대 축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중국 내 금융기관 중 국외투자를 할 수 있는 적격국내기관투자자(QDII), 중국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ODI)가 그 3대 축이다.
급증하는 외환보유고를 배경으로 이들의 `바이 코리아'는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2조8천억달러였던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6개월 새 4천억달러가 늘어 올해 상반기 말 3조2천억달러에 달한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외자 유입으로 외환보유고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CIC는 이에 따라 자본금 규모를 기존의 2천억달러에서 3천500억달러로 늘릴 방침이다. 이중 2.5%(글로벌 펀드의 한국 투자비중)만 우리나라에 투자한다고 가정해도 그 돈은 무려 88억달러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또한 QDII와 ODI의 해외투자 허용 규모를 더 늘릴 방침이어서 중국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한국 투자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질수록 더욱 부각되는 위안화의 강세도 해외 투자의 강력한 원군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재진 연구위원은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적정 수준의 2배 이상이어서 앞으로 이를 활용한 해외 투자가 더욱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국채 등에 지나치게 치우친 해외자산 투자의 다변화 차원에서 한국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미국이나 유럽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선진신흥시장(Advanced Emerging Market)' 국가로서 중국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계론'도 나오고 있다. 미 국채의 4분의 1을 보유한 중국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걸핏하면 "미 국채를 팔아치우겠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중국이 한국 경제에서 갈수록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아래로 떨어진 반면 중국의 비중은 20%를 넘어섰다. 10년 전 그 비중은 미국이 20%, 중국이 9.2%였다. 2009년 말 3.3%에 불과했던 중국의 우리나라 국채 보유 비중은 올해 들어 10%를 훌쩍 넘어섰다.
국제금융센터 이치훈 연구원은 "유럽계가 떠난 자리를 메웠다는 점에서 차이나머니는 올해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하지만 그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경각심을 가지고 산업ㆍ금융 고도화 등 우리의 경쟁력 강화에 힘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