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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를 겪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는 단순한 심리적 동요를 넘어 일상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깊은 상흔으로 남는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조차 망설이게 만들 정도로 보복과 2차 가해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가해자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집 안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트라우마의 불길은 단번에 진화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들이 겪는 고통은 일시적 대응이나 단편적인 위로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며, 트라우마의 발생부터 회복과 치유에 이르는 전 과정을 조명한 책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배승민, 백명재, 심리학자 유성은이 공동 집필한 것으로, 세 저자는 모두 범죄 피해자 지원을 전문으로 하는 공공기관인 스마일센터에서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개념과 증상, 과학적인 치료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피해자가 어떻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지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특히 저자들은 회복의 시작점으로 '치료를 결심하는 용기'를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다. 고통을 외면하거나 감추는 것이 오히려 회복을 지연시키고 상처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들은 트라우마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누가 트라우마를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일수록 그것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사회적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 전체가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책에서는 트라우마 치료 초기 단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법으로 복식호흡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을 진료실에서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복식호흡부터 가르친다"며, "전문 치료를 기대하며 온 피해자나 가족들이 의아해할 수 있지만, 몸과 마음의 안정을 위한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복식호흡"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신체와 감정 조절 능력을 되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는 범죄 피해자 본인은 물론, 피해자를 돕고자 하는 가족, 지인, 상담사,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평가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회복 여정에 동참하기 위한 실질적 지침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오늘날 더욱 절실한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