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개월 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러중 3국의 외교 전략과 정세 변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3일 러시아 대통령궁 소식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방러 계획이 외교 채널을 통해 조율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이르면 다음달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이 주목된다. 이 행사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함께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 정상이 열병식 연단에 함께 서게 된다면, 북러중 3국의 최고 지도자가 국제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첫 사례가 된다. 

그러나 시 주석의 참석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며, 김 위원장 역시 평양을 장기간 비우는 데 부담이 큰 만큼, 세 정상이 나란히 등장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동이 성사된다면 미국의 대중·대러 견제에 맞선 강력한 전략적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러 밀착과 중북 간 미묘한 거리감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외교 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과는 관계가 예전만큼 긴밀하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인민대학교 스인훙 교수는 북한의 잇단 핵 도발과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한국을 '주적'으로 지목하는 발언 등이 북중 관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김정은과 나란히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또한 스 교수는 "북한이 중국에 높은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통념은 재고되어야 한다"며,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을 지정학적 완충지대로 간주하지 않으며, 오히려 시장과 첨단기술 접근성에 더 관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의 초청과 러시아의 계산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은 러시아 측의 다양한 움직임에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부 차관이 3월 초 방북해 김 위원장의 방문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달 21일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평양에서 푸틴 대통령의 초청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후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김 위원장이 유효한 초청을 받았으며, 방문 일정은 외교 채널을 통해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아무르주 등을 방문했지만, 모스크바를 공식적으로 찾은 적은 없다. 극동연방대 아르티옴 루킨 교수는 김 위원장이 이번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경우 "북한 최고 지도자가 다수의 외국 정상과 함께하는 국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평가하며, 행사 자체가 푸틴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외교적 승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윌슨센터의 글로벌 펠로우 마크 카츠 교수도 "김정은이 푸틴, 시진핑과 함께 열병식에 선다면 이는 러-중-북 연합전선의 강력한 상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모스크바 방문에 따른 실질적 과제들 

다만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은 여전히 복잡한 실무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경희대 주재우 교수는 김 위원장이 물류, 안보, 외교 부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장기간 평양을 비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은 모스크바까지 직항 가능한 전용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에도 중국 항공기를 빌려 이동한 전례가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전승절 행사 대신 연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 예정인 동방경제포럼 등 다른 행사에서 푸틴과 양자회담을 갖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어떤 형식과 시점으로 북러 정상회담이 열릴지, 그리고 그것이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