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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은밀하고 파괴적인 죄로 꼽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교만'일 것이다. 특히 믿음과 신앙이 확고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일수록, 오히려 교만의 그림자에 가려 있는 경우가 많다. 새로 출간된 도서 <교만>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며, 참된 신앙의 본질이 '자기 부인'임을 깊이 있게 통찰한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 위험한 '교만의 기점' 

이 책은 그리스도인 안에 도사린 교만의 '기점'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자 김일환 목사(우리가본교회 담임)는 묻는다. "신앙과 믿음이 있기에, 오히려 교만이 시작되는 것이라면?" 저자의 질문은 날카롭고도 거침없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봉사하는 그 모든 신앙 행위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되지는 않았는지 반추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신앙의 열심이 교만의 연료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결국 하나님과 공동체를 아프게 하는 '확신'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교만의 정점: 하나님마저 판단하려 드는 자기 확신 

책의 중심축은 교만의 진행 경로를 "기점(起點)-정점(頂點)-종점(終點)"으로 구분하는 데 있다. 교만은 단순한 마음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까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신격화된 자아'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 과정을 단호하게 표현한다.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도 무모한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결국 하나님과 나 사이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조차도 나의 해석과 기준에 따라 뒤틀리게 된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이 아니다 

놀랍게도 저자는, 교만의 반대말로 흔히 떠올리는 '겸손'이 아니라, '자기 부인'을 강조한다. 자기를 강화하기 위해 예수를 따르는 것,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신앙을 활용하는 모든 행위는 십자가 신앙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가 아니라, 자신을 숨기고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통찰이다. 

여기서 저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로 들며, "그들이 하나님의 길을 거부했듯, 우리도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명"이란 무엇인가? 억지로의 순종이 아닌, 사랑에서 나오는 기꺼운 선택 

이 책은 기독교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사명'에 대해서도 재정의한다. 사명은 단순히 주어진 과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라는 것이다. 억지로 따르는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따르게 되는 자발적인 순종. 그리고 그 순종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로 수용되는 길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십자가를 '하나님의 문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이성, 논리, 지성, 감정, 의지를 아무리 총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이 바로 십자가의 차원이다. 따라서 교만의 정점은 결국 십자가마저 거절하게 만드는 지점이며, 이는 모든 신앙의 방향을 왜곡시킬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구간임을 경고한다. 

결국, 신앙의 출발은 '가루가 되는' 인정에서부터 

책의 마지막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진한 울림을 남긴다. 참된 신앙은 완벽함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교만을 인정하고 깨어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이 교만했음을 괴로워했고, 선지자의 지적 앞에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이 참된 신앙인의 태도였고, 신앙하는 모두에게 요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