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딸, 리사는 출생할 때부터 오빠와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 때가 12월 4일이었으니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음악예배 준비로 매우 바빴습니다. 저는 교회 성가대 연습 때문에 산통이 시작하는 아내를 병원에 남겨 둔 채 가족같이 지내던 문 집사님께 맡기고 교회로 갔습니다. 제가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불과 2시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출산을 하고 회복실로 옮겨 있었습니다. 첫 아이를 낳을 때는 제가 수술실까지 함께 들어가 곁에서 기도하면서 아내와 아들을 지켜 주었었는데, 둘째 아이는 아내가 아기를 너무 빨리 낳는 바람에 그 중요한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내와 딸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딸 리사를 제가 만나는 처음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제법 길고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굴 모양도 윤곽이 뚜렷하고 코도 오뚝하여 마치 몇 달 된 아기처럼 보였습니다. 첫 아기는 조산을 하긴 했지만 머리카락도 거의 없었고 눈도 뜨지 않고 힘이 없어 정말 가엽게 보였었는데, 둘째는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기도 하고 머리 모양을 만들어 주려고 엎어 놓으면 머리를 들어 올리고 혼자 자기 몸을 뒤집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딸 리사는 태어날 때부터 참 건강하고 에너지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는 과정도 마찬가지였으며 다 장성한 지금도 에너지가 많고 매사에 의욕이 많은 아이입니다.

어쩌면 같은 부모, 한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아이들이 그렇게 서로 다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외형적인 모습이 저를 닮았지만 성격이나 기질은 엄마를 닮았고, 반면에 딸은 모습은 엄마를 닮았지만 성격이나 기질 그리고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일에 대한 열정은 저를 많이 닮았습니다. 아들 유진이도 남자답게 잘 생겼지만 우리 딸 리사는 정말 예쁘게 잘 자랐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딸 리사에게 아빠 닮지 않고 엄마 닮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리사는 제 딸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딸이 없었다면 가정 안에 무슨 낙이 있었을까? 저를 닮은 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어릴 적에 여동생이 오빠에게 거의 지는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오빠가 많이 양보하고 잘 참아 주었지만 때로 둘이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대체로 에너지가 많은 여동생이 살아 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었지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첫 아이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고 모든 관심이 첫 아이에게 집중되다가, 아빠 엄마 그리고 아들 사이에 갑자기 새 가족으로 들어온 딸이 자기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식구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문제를 만들고 식구들의 관심을 끌고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두 아이가 다 상처를 받지 않고 서로 화목케 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무슨 이유이든 싸울 때는 어떤 이유도 묻지 않고 두 아이에게 똑같이 책임을 물었습니다. 싸웠다는 자체만으로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 협력하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꼭 둘씩 사서 똑같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없던 물건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어떤 집사님 댁에서 쓰던 응접실용 탁자를 저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혹시나 어린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까봐 일부러 탁자를 구하지 않았던 것인데, 며칠이 되지 않아 사건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아니라 에너지가 많은 우리 딸 리사가 탁자 모서리에 얼굴 미간이 찢겨진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내와 두 아이와 살면서 처음으로 화를 냈던 것도 그때였습니다. “당신은 집에서 뭘 하는 거야. 아이들도 못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황급히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후에 흉이 생기지 않도록 스팃치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린 딸 리사는 저보다 침착하게 상황을 잘 적응하였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흥분하고 화를 냈던 내 자신이 어린 딸에게도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참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잘못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정말 아이들을 염려했다면 그 물건을 받지 말든지 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좀 더 침착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화부터 내는 바람에 아내와 아이들이 더 놀래고 상처 받은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동안 아내와 어린 아들과 딸에게 쏟아온 정과 사랑이 한 순간에 폭발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결코 사랑은 감정표현이 아닌 것을....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