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지금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사순절(四旬節)은 부활절 전 40일로 영어로는 렌트(Lent)라 한다. 사순절이라는 말은 한 순(旬)이 10일이므로, 40일이 4순이므로 그렇게 명명됐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은 사순절에 주일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주일을 뺀 40일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포함하면 사순절 기간은 실제로 45일에서 46일이 된다.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에 시작되는데, 이 날을 “재(灰:ash)의 수요일," 혹은 “성회(聖灰)수요일”이라 한다. “재”자가 들어 있는 것은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벌을 받을 때, 참회하는 방식에 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재에 앉아 참회기도를 드린 데 연유한다. 사순절은 참회의 기간이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과 절제와 금욕의 기간이다. 이런 정신에 따라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절에 두 가지를 금해 오고 있다.

육식 금식

첫째는 육식을 금한다. 서방교회(로마 천주교회)와 동방교회(희랍정교회) 공히 사순절 기간에 육식을 금한다. 육식은 입을 즐겁게 하고 몸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 각종 육식은 맛있고, 좋은 음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평소 즐기던 육식을 금하고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 경건한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일 터이다. 동방교회 즉 희랍정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은 심지어 우유, 버터, 치즈, 달걀도 금한다. 이것들도 동물에서 나왔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서방교회 즉 로마 가톨릭에서는 고기는 물론 먹어서는 안 되지만, 이것들은 먹어도 된다고 하여 약간 융통성을 보인다. 1054년 동, 서방 교회가 분열할 때, 이 육식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도 한 요인이었다.

결혼식 금지

다른 한 가지는 결혼식을 금한다. 개신교회는 성례가 세례와 성찬 두 가지지만, 로마 가톨릭이나 희랍정교회는 7가지(영세, 견진, 고백, 성찬, 종부, 혼배, 서품) 성례가 있다. 이 성례 중 혼배 즉 결혼식이 있다. 결혼식은 성례이기에 반드시 신부가 성당에서 집행해야 한다. 결혼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생대사”라 하여 당사자는 물론 가족, 친족, 친구, 교우 등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즐거워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고, 즐기는 큰 행사이다. 그러므로 결혼식을 사순절 기간에 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으므로, 교회에서는 이 기간에 혼배성사를 하지 않는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유럽 어느 곳에도 결혼식장이 없다. 그 이유는 결혼식이 으레 예배당이나 성당에서 집례 되기 때문이다. 불교도들이나 기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 불당이나 모스크(회교도 회당)에서 결혼식을 하기 때문에 결혼식장이 필요 없다. 특정 종교가 없는 사람은 가정법원의 결혼 전담 판사 앞에서 부부 선서를 하면 부부로 인정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결혼 주례를 할 수 있지만, 기독교 전통 국가에서는 성직자 즉 목사나 신부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 평신도들이 결혼 날짜를 잡을 때, 사순절을 고려하지 않고 이 기간에 잡는 것은 교회의 전통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개신교에서도 로마 가톨릭교회나 희랍정교회와 같이 사순절에 결혼하는 일을 삼가야겠다. 목사들은 이런 사실을 숙지하고 교회에 미리 광고하여, 사순절에 결혼식을 갖지 않도록 계도해 나가야 한다.

경건, 절제, 참회

사순절은 경건과 참회 그리고, 절제의 시기이다. 이 기간에는 그러므로 평소에 즐기던 일을 삼가고, 그 횟수를 줄여야 한다.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자신과 가족, 교회와 민족, 나아가 인류의 죄악을 참회하는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평소 골프를 즐기던 사람은 이 기간 동안 골프를 삼가고, 등산이나, 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그것을 삼가고, 평소 즐기던 음식도 이 기간 동안은 절제하는 것이 옳다. 여자들도 짙은 화장을 하지 않으며, 화려한 옷이나, 금은보석으로 치장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사순절은 경건, 절제, 금욕의 기간이라는 점을 유념하며 지내는 것이 경건한 신자의 모습이다.

과거 사순절이 무엇인지, 이 기간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옳은지 몰랐던 이들은 이제 사순절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은 고난주간이다. 이 기간에는 더욱 절제와 금욕에 힘써야 한다. 필자와 가족들은 오래 전부터 성금요일 하루를 금식하면서 주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고초를 당하신 일을 묵상하며 지낸다.

필자가 오래 봉직한 장로회신학대학교(서울 광나루)는 성금요일 점심만은 교직원과 학생 식당 문을 닫고 온 학교가 한 끼 금식하면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상적인 건강한 사람이면 마음만 먹으면, 일 년에 하루쯤 금식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신 것을 믿는다면 하루쯤 금식하면서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수도사, 수녀들, 그리고 경건한 신앙인들이 사순절 40일 동안 금식하고 있다. 누구나 결단만 하면 하루쯤 금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금년부터 한번 시행해 볼 것을 권한다. 사순절은 “경건, 절제, 금욕” 이 세 단어와 함께 지내는 기간임을 명심하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1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