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과 고난의 바람이 불어 닥치면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 고난에 대한 반응은 크다고 크게, 또는 작다고 해서 작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욥처럼 상상키 어려운 고난의 주인공이 되 있다 할지라도 신앙으로 또는 용기와 인내로 위기를 잘 견뎌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찮은 것 같이 적은 일 에 크게 반응하며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 사람의 생각과 태도 그리고 신앙과 인생에 대한 철학에 따라 문제와 고난에 대한 반응을 다르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의 친척 중 아주 재능도 많고 얼굴도 미인이고 머리도 좋아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또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일류 대학을 졸업한, 장래가 아주 유망한 젊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며 또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예쁜 며느리가 독자 가정에서 첫 아들까지 낳아주어 시부모님의 총애는 특별했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와 남편과 아기 - 세 식구가 자살을 한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이요 친구들과 이웃들은 아연 실색을 하고 말았습니다. 자살의 이유는 하찮은 것 이었습니다. 남편의 어미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병 에 걸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비관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수술을 받으면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는 병 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고민거리가 되어 결국은 유서를 써놓고 자살하게 된 것입니다. '그까짓 것'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에는 생명을 버릴 만큼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욥 과 같은 크고 극심한 고난에 시달리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계속 밀어닥치는 불운과 고난 속 에서도 자기를 창조하시고 생사와 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맡기면서 끝까지 시련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깊은 신앙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고난에 대한 대응방법은 구약 때와 신약 때에 큰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사를 주관자의 손에 맡기고 이겨나가게 되고 그 점은 별 다름이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어떠한 시련과 고통도 견디며 생 을 마칠 때 까지 자살 같은 것 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생명을 마감시키시는 그 날까지 살아야 할 사명이 우리 인생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정도가 어떻던, 소망이 보이든 보이지 않던 끝까지 달려가야 할 인생길을 가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자세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것이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 이 누리지 못한 은혜를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물론 욥 도 인생의 생사화복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과 그 이유에 대해 번민하고, 번민을 거듭해도 답 을 찾지 못했던 그는 한층 더 괴로워 견딜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잊고 싶었습니다. 죽음만이 모든 시련과 고민을 떠날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피할 길 을 몰랐습니다. 지혜를 찾아도 지혜의 근원을 알길 이 없었습니다. (28장) 소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심정으로 두렵고 떨리기만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욥 은 하나님을 경외했고 자신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며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뵐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과 그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상금도 아울러 받았습니다.

고난을 참고 견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아주 복된 조건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지 또 이 세상 후에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성경 말씀 속에서 밝히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세력에 묶여 있던 우리를 그 사단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려고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뜻 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묶여있던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영원한 왕국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 사망권세- 즉 우리의 죄과를 그리스도 예수께 담당 시키셨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된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선포를 할 수 가 있는 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도 그분으로 인해 주어졌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해 주시는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은 다만 지나가는 나그네 길 일 뿐입니다. 이 나그네 길 에 예수그리스께서는 항상 우리의 요새가 되어주시고 또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분은 항상 '목자' 처럼 우리를 돌봐주시고 길을 인도해 주시므로 그분께 우리의 모든 근심도 걱정도 맡기고 살 수 가 있습니다. 그분의 영 곧 성령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그분의 통치 속에서 사는 천국백성으로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영원까지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경험되고(롬 8: 28-32) 그 안에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져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 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4:18) 그래서 우리는 '욥' 보다는 훨씬 유리한 신앙 조건 속에 세상을 살아가는 은혜 입은 기독교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