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절망스런 최악의 일은 죽는 일일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유대인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문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 한 사람만을 살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가슴이 터질만큼, 미쳐버릴만큼 기쁜 소식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점 점 늙어가고 죽어가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 죽음과 허무에서 부활시켜 영원토록 살게 하신다니 이 사실보다 인류에게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으로 사셨을까요?

이 부활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사셨습니다. 제자들은 무엇을 위해 제자훈련을 받고, 성령을 받았을까요? 부활의 권능을 증거하기 위해서 살았고, 또 순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요? 한재성목사님이 쓴 [땅 끝에 남은 자]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강원도 춘천 지방회 연합철야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여주 앞을 지나는데, 아내가 잠들어 있는 여주 남한강 공원묘지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주란 이름만 들어도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합니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아내의 묘소를 찾았습니다.

아내의 육신은 추운 겨울동안 홀로 그곳에 누워 있었습니다. “여보, 나 왔어. 자기 한 사람도 못 지켜준 이 못난 남편, 여기 왔어. 내 말 들리니? 나 요즘 당신때문에 좀 바쁘게 돌아다니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당신이 순교하는 바람에 교회에서 날 불러주네. 사랑해, 여보.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갈테니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

묘소 옆 대리석에도, 땅바닥에도 돌멩이로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썼습니다. 혼자 엉엉 울다가 춘천으로 다시 향하던 길에 너무나 마음이 퍽퍽하여 친구 목사에게 전화했습니다. “친구야,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지? 내가 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래도 봄은 오는지, 차창 밖으로 햇살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문득 봄이 올 것 같지 않던 차가운 겨울도 지나가는 것을 보면 내 마음에도 언젠가는 따뜻한 봄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 없이는 하루도 못살 거라고 말했던 내가 지금은 그 못살 것 같은 하루하루를 먹기 싫은 밥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듯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도 부활하고 나도 부활할 그 날이 머지않은 날에 오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찬란한 부활의 그날을 소망해야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소망가운데 즐겁게 삽시다!


아침마다 감사하며,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