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를 두고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처음으로 한 자리 앉아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WCC를 보는 서로의 신학 및 신앙적 입장이 오갔다. 미래목회포럼(대표 김인환 목사)은 주제를 ‘한국교회, WCC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로 정하고 25일 서울 종로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제12차 정기포럼을 개최했다.

보수적 입장을 대변할 발제자로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와 문병호 교수(총신대, 조직신학)가 나왔고 진보 쪽에서는 WCC 중앙위원으로 지난해 WCC 총무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박성원 교수(영남신학대학교)가 참석했다.

▲미래목회포럼은 제12차 정기포럼 주제를 ‘한국교회, WCC 어떻게 볼 것인가’로 정했다. 이날 많은 수의 목회자 및 평신도들이 포럼장을 찾아 WCC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 김진영 기자

“WCC는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의 유일성 양보했다”

먼저 박명수 교수는 현재의 WCC가 결코 복음주의적이지 않으므로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가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복음주의 교회가 WCC의 자유주의 신학과 용공적인 태도를 비판했는데, 이것을 그대로 두고 무조건 WCC 총회에 참석할 순 없다”고 못박았다.

그가 WCC를 복음주의적이지 않다고 규정한 것은, WCC가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양보했기 때문이다. WCC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면서도 또다른 구원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WCC의 가장 복음적 문서인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컬 확언’(1981)에서조차 다음과 같은 언급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주장할 신학적인 확신을 갖지 못한 것이다.’

박 교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에큐메니컬 운동은 세계의 복음화라는 본래적인 주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정의, 인권, 해방, 대화와 같은 주제는 많이 언급되지만 세계의 복음화에 대한 것은 들어보기 힘들다”며 “이렇게 WCC가 복음전도를 소홀히 하는 이유는 WCC가 구원을 인간해방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억압하는 가난과 독재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WCC는 한국교회의 실질적인 모습을 봐야 한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아젠다들이 얼마나 지역교회에서 외면당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WCC는 다른 집단에 대해선 지극히 개방적이면서도 복음주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야 말로 WCC 연합운동의 모순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WCC 총회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양쪽이 모여 WCC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WCC 총회의 한국 개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예장통합 총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대부분의 통합측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복음주의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지금 통합측은 WCC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복음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니 총회에 참석하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WCC가 복음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통합측은 WCC가 진보주의라는 것을 인정하고, 한국에서의 총회를 통해 WCC의 신학적 노선을 복음주의로 바꾸려는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WCC는 교회의 변증적 의무를 사실상 포기했다”

두 번째 발제자였던 문 교수는 WCC의 교회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WCC는 함께 모이고자 하고 하나가 되고자 하나 한 교회를 이루고자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한 유일한 교회 혹은 초교회로 여겨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제 3의 무엇이 아니라 단지 함께 모일 뿐이라고 한다”며 “그렇다면 왜 ‘가시적 교제’ 자체에서 의의를 찾고자 했던 초기의 입장으로부터 선회해 ‘완전한 가시적 교회’를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문 교수에 따르면 교회는 본질상 비가시적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가시적 교회는 비가시적 교회에 근거해야 하며, 비가시적 교회를 지향하고 추구해야만 참된 것이 된다.

문 교수는 “WCC는 교회의 본질을 호도하고, 교리를 넘어서는 가시적 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편향된 협의회적 교제를 추구한다”며 “WCC는 기본 교리에 대해 말하기는 하나 교리 해석의 상이에 대해서는 방임함으로써 교회의 변증적 의무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WCC는 일의적으로 정의될 수 없는 단체다. 교회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실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교회들 사이에서 교리적으로 충돌하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함께 공감하는 것만 공유하고자 한다”며 “교회의 본질과 속성을 언급하지만 교회를 부정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를 회상하는 모임. 모임을 위한 모임. 성경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수립하고 그만큼만 인용하는, 성경의 진리보다 성경을 통한 실존적 삶의 기술을 더욱 본원적이라고 여기는 비성경적인 모임. 성경의 진리를 교리로써 고백은 하되, 천차만별의 다의성에 노출시키고, 변증법에 뛰어난 해석자를 시대의 사도로 모셔서 보고서 형식으로 교리를 대체하려는 반교리적 모임”이라고 WCC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박명수 교수(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처음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날 복음주의 진영에선 박 교수를 비롯해 문병호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참석했고 진보 쪽에선 박성원 교수(맨 왼쪽)가 참석했다. 맨 오른쪽은 사회자였던 김권수 목사(동신교회) ⓒ 김진영 기자

“WCC는 종교간 교리를 섞은 적이 한번도 없다”

마지막 발제자였던 박 교수는 복음주의자들의 반대 입장에 대응해 자신이 중앙위원으로 있는 WCC를 변호했다.

그는 “WCC는 2010년 1월까지 전세계 140개국 349개 개신교회와 정교회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여기에 속한 기독교인 수가 5억 8천만에 달하는 세계적 기독교연합기구”라며 “WCC 총회는 동서방교회가 분열한 이후 부분적이긴 하지만 동서방교회가 모두 참여하고 개신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근대교회의 공의회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는 2013년 한국 총회에 대해서도 “세계개혁교회연맹(WARC)과 루터교세계연맹(LWF)이 함께 참여하는, 세계교회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며 “성직자와 평신도, 여성, 청년 등 7천여 명의 세계교회 인사들이 참여해 이 시대를 향한 기독교의 복음증언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독교의 신앙축제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WCC에 대해 하나 하나 근거를 제시하며 반론을 펼쳤다. 그의 말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요약했다.

▶‘WCC의 신앙고백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은 사실인가?

이는 WCC의 기본입장을 모르는 견해다. WCC 헌장 1조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고, 성부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해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라고 밝히고 있다.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저희가 다 하나되어…세상으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하기 위한 세계교회의 공동 노력이다.

▶‘WCC는 선교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인가?

전혀 사실 무근이다.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선교와 일치를 위해 전세계 교회가 함께 모인 세계선교대회(WMC)가 바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직접적 배경이 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도 WCC 안에서 ‘선교와 전도 일치국’의 활동이 아주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WCC는 용공이다’라는 주장이 타당한가?

시대착오적 말이다. WCC는 ‘교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한 적이 없다. WCC가 냉전시대 때 공산체제 속에 있는 교회와 교제했던 것은,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느냐와 상관없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만약 WCC가 용공이란 주장을 한다면 지금 북한교회와 만나며 교제하고 지원하는 한국교회는 모두 용공이다. 한국교회는 북한교회를 남한교회와 연결해 준 WCC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

WCC를 전체적으로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가 사회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WCC에는 선교와 전도, 기독교교육 이외에 거대한 양대 산맥이 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흐름으로 신앙과 일치를 강조하는 면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Life and Work)의 흐름으로 복음의 사회적 증언을 강조하는 측면이다. 이 두 흐름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번 WCC 총회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WCC의 신앙과 영성, 선교와 봉사 부분에도 이해의 폭을 넓혀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양쪽 날개 모두를 통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WCC의 신학은 자유주의다’라는 것은 올바른 이해인가?

솔직히 WCC의 신학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WCC는 회원교회들의 다양한 신학이 서로 대화하고 조정돼 공통의 신학적 견해를 찾아가는 ‘협의체’(Council)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WCC만의 고유한 신학이 있을 수 없다. WCC에는 자유주의 신학도 존재하지만 엄청나게 보수주의적 신학도 존재한다. WCC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로 비춰진 것은 한국에서 WCC가 주로 인권이나 민주화와 관련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WCC는 다원주의다’라는 말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WCC는 종교간 교리를 섞은 적이 한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적이 분열된 교회가 구조적 일치를 이뤄 세상에 하나의 교회를 표방하는 가시적 일치인데, 현재로선 이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WCC 밖에 있는 로마 가톨릭도 그렇지만 WCC 안에 있는 양대 교회, 즉 정교회와 개신교회도 결코 서로의 교리를 섞을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적 일치를 전혀 거론할 수 없다. 하물며 종교간 교리를 섞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종교간 대화와 협력은 분명히 한다. 종교간 협력과 다원주의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