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따는 선수들은 이미 오랜 전부터 이 꿈을 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꿈의 실현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절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와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에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 계획을 알려주신 다음에, 인간의 죄를 씻어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도록 지음받은 인간은 주어진 자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할 수도 있고, 믿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사시는 동안,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앞둔 시간에도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눅22:44)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생각해도 다 깨달을 수 없는 것,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며 사는 이유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누차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기어코 안 해도 될 걱정까지 끌어와서 걱정합니다. 이민사회의 삶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사실 외로움도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서 발생하는 정서적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지금까지도 함께 하셨고(에벤에셀 하나님), 지금도 함께 하시며(임마누엘 하나님), 앞으로도 함께 하실 분입니다(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가 무엇일까요? 원자탄 제조를 감독했던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의회에 출두하여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있겠습니까?” “단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입니다.” 젊은 의원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박사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화목제물이 되라고(고후5:18).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사48:22). 모든 싸움과 다툼은 욕심(정욕)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약4:1). 따라서 우리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려 죽음으로써 영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올림픽의 영광처럼) 언젠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 섬기는 종,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