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저자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정확한 저자를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 다락방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구세주라고 전도하며 주를 위해 충성했습니다. 헌신의 마음으로 120여명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베드로는 성령을 받아 설교해 3천명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동족인 유대인과 로마당국으로 부터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어려운 박해 속에도 복음을 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이룹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기에 어려운 박해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때까지 다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때와 인간의 때가 다릅니다. 초대교우 성도들은 박해가 오니 배교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믿음을 버리거나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고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모세보다 뛰어나시며 율법위에 서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배교를 하면서 ‘왜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나? 우리에게는 천사가 있다’는 천사 숭배자도 있었고 모세가 우리의 중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끝까지 믿음의 도리를 지키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을 향해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형제, 자매들 입니다. 우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주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의 모임은 거룩한 모임입니다. 우리를 가르켜 성도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성도가 됩니까? 하늘의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을 대신해 썼습니다. 우리가 갈 곳이 하늘나라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킹덤 오브 갓입니다.
하늘나라라고 하니 죽었다가 저 하늘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직장과 나라에 주인이 하나님이 되시면 이곳 역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됩니다.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일을 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기시고 깨끗케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만났고 경험한 사람 가운데서도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의사로 알아 병 고침만을 받기 원했습니다. 오병이어를 경험하고 먹을 것만을 생각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왕이 되면 우리가 관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부분만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분입니다. 우리의 중보자 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오늘 집사회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집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을 잡은 사람입니다. 디아코노스라는 말인데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서양식탁에 손님이 앉아있을 때 시중드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하나? 예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 시간과 능력, 남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 줄 것인가? 이런 일을 하다가 욕을 먹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높여드리는 일이라면 주 앞에 충성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주 앞에 충성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으로 충성했나?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충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성했습니다. 아들과 사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충성되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어 주셨습니다.
권면하기는 너희는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광야의 길을 걸을 때 나의 행한 행사를 보았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0년 광야에서 시시 때대로 인도하신 역사를 백성들이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플 때 매일 새벽 만나가 내렸습니다. 너무나 뜨거운 길을 걸을 때 구름기둥으로 시원한 그림자로 인도하시고 사막의 추위가 올 때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하시고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났고 적군을 물리치고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광야 길 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광야 40년의 생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 캄캄할 때는 친히 인도하시고, 아플 때는 병에서 놓임 받게 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시 때때로 원망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팍해졌고 1세대는 하나님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아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고 피차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천성을 향하여 광야를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 입니다. 주의 일을 하며 마음이 강팍해질 때가 있습니다. 권면하라가 서로 교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재는 같이 커피 마시는 것이 교재가 아닙니다. 예배 마치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펠로우십은 서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며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권면해 주는 것입니다. 광야의 길을 걸을 때 마음이 강팍해 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위기를 당하다 보니 마음이 강팍해져서 다른 사람의 아픔도 외면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가? 믿음의 식구들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주를 섬기며, 상대방을 위로하고, 함께 봉사하고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의 일에 참예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앞에 헌신하겠다고 각오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받은 감격이 있습니다.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40년 광야의 생활 그 많은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했습니다.
강팍이라는 말은 바로 왕에게 쓰여 졌던 말입니다. 바로가 마음이 강팍해졌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처음 각오한 것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생각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의 각오로는 끝까지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책임져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굶주리고 마음이 아파 괴로우실 때와 시험당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얻음을 따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를 외쳤습니다. 눈을 뜨고자 담대하게 주님 앞에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바디메오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1년에 한 번씩 나아가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지성소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을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때를 따라 얻는 은혜를 얻기 위해 나아갑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적극적이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담대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홍해 앞에 모세가 섰을 때도 담대히 두 손을 드니 홍해가 열렸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담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으로 기도해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교회에 가면 건물이 아름답고 교인이 친절한 것을 자랑한 다면 그것은 세상 사교 클럽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하게 부름 받았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졌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그랬다면 우리 대 제사장이신 주의 도움을 간구하고, 우리 주님의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동족인 유대인과 로마당국으로 부터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도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어려운 박해 속에도 복음을 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이룹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기에 어려운 박해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때까지 다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때와 인간의 때가 다릅니다. 초대교우 성도들은 박해가 오니 배교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믿음을 버리거나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고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깊이 묵상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모세보다 뛰어나시며 율법위에 서신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배교를 하면서 ‘왜 굳이 예수를 믿어야 하나? 우리에게는 천사가 있다’는 천사 숭배자도 있었고 모세가 우리의 중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끝까지 믿음의 도리를 지키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을 향해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형제, 자매들 입니다. 우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주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의 모임은 거룩한 모임입니다. 우리를 가르켜 성도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성도가 됩니까? 하늘의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을 대신해 썼습니다. 우리가 갈 곳이 하늘나라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킹덤 오브 갓입니다.
하늘나라라고 하니 죽었다가 저 하늘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나라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직장과 나라에 주인이 하나님이 되시면 이곳 역시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됩니다.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일을 한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기시고 깨끗케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만났고 경험한 사람 가운데서도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의사로 알아 병 고침만을 받기 원했습니다. 오병이어를 경험하고 먹을 것만을 생각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왕이 되면 우리가 관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부분만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분입니다. 우리의 중보자 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오늘 집사회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집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일을 잡은 사람입니다. 디아코노스라는 말인데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서양식탁에 손님이 앉아있을 때 시중드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집사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하나? 예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 시간과 능력, 남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 줄 것인가? 이런 일을 하다가 욕을 먹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높여드리는 일이라면 주 앞에 충성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주 앞에 충성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으로 충성했나?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충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 충성했습니다. 아들과 사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충성되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어 주셨습니다.
권면하기는 너희는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광야의 길을 걸을 때 나의 행한 행사를 보았느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0년 광야에서 시시 때대로 인도하신 역사를 백성들이 보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플 때 매일 새벽 만나가 내렸습니다. 너무나 뜨거운 길을 걸을 때 구름기둥으로 시원한 그림자로 인도하시고 사막의 추위가 올 때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하시고 목이 마를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났고 적군을 물리치고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광야 길 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광야 40년의 생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 캄캄할 때는 친히 인도하시고, 아플 때는 병에서 놓임 받게 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시 때때로 원망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팍해졌고 1세대는 하나님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아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고 피차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천성을 향하여 광야를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 입니다. 주의 일을 하며 마음이 강팍해질 때가 있습니다. 권면하라가 서로 교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재는 같이 커피 마시는 것이 교재가 아닙니다. 예배 마치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펠로우십은 서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며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권면해 주는 것입니다. 광야의 길을 걸을 때 마음이 강팍해 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렵고 경제적으로 위기를 당하다 보니 마음이 강팍해져서 다른 사람의 아픔도 외면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가? 믿음의 식구들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주를 섬기며, 상대방을 위로하고, 함께 봉사하고 그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의 일에 참예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앞에 헌신하겠다고 각오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잡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받은 감격이 있습니다. 가나안까지 가는 동안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40년 광야의 생활 그 많은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했습니다.
강팍이라는 말은 바로 왕에게 쓰여 졌던 말입니다. 바로가 마음이 강팍해졌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처음 각오한 것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생각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의 각오로는 끝까지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대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책임져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굶주리고 마음이 아파 괴로우실 때와 시험당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얻음을 따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를 외쳤습니다. 눈을 뜨고자 담대하게 주님 앞에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바디메오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1년에 한 번씩 나아가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지성소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을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때를 따라 얻는 은혜를 얻기 위해 나아갑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적극적이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담대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홍해 앞에 모세가 섰을 때도 담대히 두 손을 드니 홍해가 열렸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담대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으로 기도해 때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교회에 가면 건물이 아름답고 교인이 친절한 것을 자랑한 다면 그것은 세상 사교 클럽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하게 부름 받았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졌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그랬다면 우리 대 제사장이신 주의 도움을 간구하고, 우리 주님의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