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임금님이 암행순시를 나갔다가 다리 밑에서 기거 하는 거지 소년을 보았는데 어쩐지 마음이가고 끌려서 그 소년을 데리고 궁궐에 들어오셔서 만조백관 앞에서 오늘부터 이 아이를 내 아들로 삼는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그는 이제 분명한 왕자가 된 것입니다. 그 순간 거지는 죽었고 왕자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저녁에 잘 시간이 되었는데 왕자가 막 대궐을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어디를 가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본래 거지라서 다리 밑에서 자야 편하다고 대답합니다. 신하들은 아닙니다. 왕자님이 주무실 곳은 대궐 안에 잘 준비가 되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이 왕자가 다시 대궐 밖으로 달려 나갑니다. 시녀들이 쫓아가면서 왕자님 어디 가십니까? 묻자 본래 거지라서 내가 세수 하는 곳은 다리 밑에 있다고 하자 시녀들이 아니에요 왕자님 세수 하실 곳이 대궐 안에 준비 되어 있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이 왕자가 왕자다운 행동이 나타나려면 거지 의식을 가져야 할까요? 아니면 왕자 의식을 가져야 할까요? 네..거지는 죽었고 나는 왕자다. 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당분간은 거지같은 행동이 계속 될지 모릅니다. 워낙 오랫동안 거지같은 삶을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았음에도 죄인 같은 삶은 계속 될지 모릅니다. 그래도 계속 확인해야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용서 하시고 의롭다고 하셨다면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계속 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산자로 그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걸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두 번째는 행동은 저항 하는 것입니다. Recon, Resist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러므로는 앞 절의 결론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연합되었으며, 나의 죄성이 십자가에서 죽었고, 나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할 필요가 없으며 이런 것이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힘! 부활의 능력에 의지하여 과감히 저항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결단하고 쫓아내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서..라는 말은 우리의 입에서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할 수가 있습니다. 이미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능력을 내 것으로 사용 하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의 소리를 물리 칠 수 있습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능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패패의식입니다. 이 땅에서 어차피 성화가 완성 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패배 할 수밖에 없다고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나는 이미 너에게는 상관이 없는 자다, 나는 이제 의의 병기다! 라고 고백하고 거부하면서 나를 하나님이 주장 하시도록 내어 드리면 우리는 승리 할 수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는 3가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옛 성품이고, 마귀이며, 세상의 풍조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 값은 치러졌습니다. 이제는 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세 번째 드리는 것입니다. Recon, Resist, Render
(롬 6:14)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는 자신을 어디에 드리며 살아야 하는가? 본문 12-14절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생명은 사실 공짜로 얻은 생명, 덤으로 얻은 생명입니다. 그렇게 덤으로 생명 얻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자기 맘대로 살지 말고 생명을 다시 주신 자를 기쁘게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사람들 가운데는 죽어도 벌써 죽었을 생명이 간절히 기도하여 다시 살아나기는 났지만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이 혹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자세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는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 삶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시 얻은 그 생을 그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헌신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린다"는 말은 "바친다" "헌신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N.I.V. 성경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Offer the parts of your body! 무슨 말씀입니까? 다시 살게 된 나의 모든 부분을 the parts of all my body를! 주께 다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혀 섭섭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었던 목숨! 이미 죽었던 모든 것! 사실 그것은 이미! 다 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의 시간, 나의 재산, 나의 취미, 나의 건강, 나의 모든 것 그러나 사람들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처럼 어려울 땐. "아이고 하나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이렇게 해놓고 다시 살려 주면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하는 식으로 태도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게 된 자는 이것저것 재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든 부분을 다 주님께 드리되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하면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도 의의 병기로, 물질도 의의 병기로, 취미도 의의 병기로, 재능도 의의 병기로, 모든 것을 의의 병기로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드리라"는 단어는 현재 진행형 시제입니다. 즉 한번 드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드리고" 앞으로도 "드리고" 또 미래에도 계속 "드리게 되는" 계속적이며 지속적이고 또 반복적인 "드림"의 의미를 가진 동사(動詞)라는 것입니다.

최근 출판된 책 가운데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Change Is Everybody‘s Business by Patricia Mclagan) 말하자면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열심히 공부해야지 내일부터 바로 살아야지" 이렇게 항상 결심만 하지 바뀐 것은 하나도 없기에 바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바보요, 남이 보아도 바보입니다. 항상 결심만 하고 실천이 없으니 그렇습니다.

우린 그런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계속 강조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죄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어 졌다는 것입니다. 죄에게 순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주인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여러분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의 온전한 통치를 경험하시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내 손발도, 내 생각도, 날마다 계속 적으로 유혹의 순간에도 다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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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저의 삶이 여기 있습니다. 제 인격이, 존재가 제 감정이, 제 욕망이 여기 있습니다. 주님 저를 지배하십시오..내어 드리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속에 일어나기 시작한 새롭고도 놀라운 승리가 있습니다. 전에는 생소 했던 것이 이제는 날마다 경험되는 승리의 간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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