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는 새로운 30년을 맞아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지향적인 비전을 가진 연합회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 기독교계에 ‘직장선교’라는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인 박흥일 장로(서울 충무교회, 68)가 지난 12월 22일 한직선연 제46차 이사회에서 제7대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과학기술부 재직 때인 1981년 한직선연을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지낸 그는 지난 30여년간 쉬지 않고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직장선교의 정착과 확산에 영향력을 미쳐 왔다.

박 이사장의 임기는 2010년부터 3년간으로, 2011년 한직선연 창립 30주년에 진행될 ‘직장선교 창립30주년 기념사업’ 시기와도 맞물린다. 창립3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최근 한직선연 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한직선연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라고 말하고 “개인적으로도 한직선연을 창립한지 29년이 지나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다시 서게 되니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날 직장선교의 새로운 한 세대를 준비하는 중요한 전환점에서 한직선연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이사장은 1978년 과학기술처신우회를 발족시킨 이래 1981년 한직선연, 1988년 직장선교대학, 1991년 미국 워싱턴직장선교연합회, 1993년 세계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이하 세직선), 1998년 한국기독공직자선교연합회, 직장선교목회자협의회 등 수많은 직장선교단체 및 연합회 창립을 주도했다. 또 2000년 직장선교의 3대 목표(직장선교의 활성화를 통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직장인의 복음생활화를 통한 기독교사회문화 창조, 평신도초교파연합운동을 통한 교회일치)와 4대 특성(평신도직장인 중심, 평일6일 중심, 직장사회 중심, 성경기도전도 중심), 5대 기본방향(성경복음주의, 초교파평신도주의, 비정치주의, 노사화합주의, 교회사회협력주의)을 제시하며 직장선교의 이론을 정리하고 서울신학대학원, 호서대학교 등에서 직장선교에 대해 강의해 왔다. 한직선연에서는 1997년부터 작년까지 이사로 활동했다.

-29년 전 창립한 한직선연 이사장으로 만장일치 추대된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1981년 한직선연 초대회장을 역임한 이후 지금까지 뒤에서 연합회 사역에 참여해 왔습니다. 초대회장이라 이사장직에 관심이 없었는데 만장일치로 추대해 주어 한 세대를 마무리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직선연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때마다 ‘직장선교와 세계선교의 큰 꿈과 비전을 이루게 해달라’고 간구해 왔습니다. 연합회의 책임을 맡든 안 맡든 직장선교는 죽을 때까지 제가 감당해야 할 평생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대학생 때부터 직장선교의 꿈과 비전을 갖고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1960년대 역사적인 변혁의 시대를 살면서 정치, 사회를 복음화하는 꿈과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특히 1960년 4.19, 1961년 5.16군사혁명을 보며 절망과 암흑, 도탄에 빠져 방황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과 국가를 구하려면 오직 한 길,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길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다가 ‘먼저 정치, 사회를 그리스도화시켜야 한다’는 비전을 얻게 됐습니다. 이 때가 대학교 3학년 때입니다. 국가 행정을 맡는 공무원이 정치, 사회의 중심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마친 뒤 공무원에 투신했습니다.”

-한직선연을 창립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30대에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청년회전국연합회 회장, 한국기독교전국청년연합회협의회(KYCF) 회장 등을 맡아 청년운동을 하고 이후 ‘엑스플로 74대회’ 청년분과위원 총무, ’77 민족복음화대성회’ 청년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폭넓은 인맥을 맺고 경험을 쌓았습니다. 직장선교는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해 과학기술처신우회를 조직하고 종교교회에서 목요직장인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연합회 결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년 종교교회에서 직장인부활절연합예배를 처음 드렸고 1981년 직장인부활절연합예배가 끝난 직후 ‘서울지역직장선교협의회 창립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입니다. 창립준비위원장인 제가 방향을 제시하고 청년운동 시절 여의도순복음총회 청년 대표였던 친구(당시 현대크리스천모임 활동)가 실무를 맡아 관청, 기업, 단체 등에 연락해 신우회 현황을 파악하여 그 해 12월 12일 39개 단체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한직선연이 발족되었습니다. 저는 초대회장, 그 친구는 총무로 추대되었지요.”

-이후에도 직장선교의 발전을 위해 국내외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서울지역직장선교협의회를 1982년 ‘기독교직장선교협의회’, 1984년 ‘전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로 확대 개편하고 각 지역별, 직능별 연합회를 조직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직장선교’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때인데 연합회가 생긴 뒤 직장선교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직장사역도 ‘선교’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1997년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로 인가 받은 뒤 지금의 40개 지역연합회, 45개 직능연합회, 8천여 개 직장선교회가 협력하는 큰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세직선은 대전 엑스포93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한직선연과 대전기독교연합회가 ‘엑스포93 세계선교대회’를 공동 개최하면서 창립됐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해외 직장선교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제가 과학기술부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1990년 워싱턴 유니버시티에 1년 간 유학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기간 동안 워싱턴 주미대사관직장선교회, 워싱턴직장선교연합회, 해군연구원신우회, 한인타운 직장선교회 등을 세우고 워싱턴 충무교회도 개척했지요.

1995년, 1996년 워싱턴 주미대사관 과학참사관으로 파견됐을 때는 뉴욕직장선교연합회, 매릴랜드직장선교연합회를 세우고 당시 2천4백여 개 태권도 도장 사범들을 모아 미주무예직장선교연합회를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1996년 7월 워싱턴에서 제1회 세계직장선교대회가 열리면서 미주직장선교연합회가 설립됐고, 지금은 15개국에 직장선교연합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직장선교단체 및 연합회를 조직하고 회칙과 정관 초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행정대학원 시절 조직, 인사, 운영, 기획 등을 배우고 공무원 생활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창립 당시 한직선연이 창립회원으로 참여하고 세직선은 창립하자마자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정회원으로 가입되는 등 지나고 보니 모두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직장선교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황에서 직장선교라는 분야를 개척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지 않았습니까.

“모든 것이 개척이니 당연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개척에 따라오는 것이 ‘외로움, 괴로움, 어려움’의 3고(苦)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개척자나 선구자가 공통적으로 당하는 것이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말씀처럼 무엇이든 시작할 때 5~10년은 내다보고 비전을 실체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장 앞을 내다보지 못하니 이들을 설득하고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초창기 직장선교를 할 때는 다른 사람도 아닌 기독교인들이 거부반응을 보여 힘들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극성스럽게 직장에서까지 예배드릴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니 비기독교인들의 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시간이나 장소의 제약도 많았습니다. 기독 직장인들이 모임을 갖는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또 한직선연 부회장 이하 임원 및 회원들은 많은 경우 자신이 맡은 일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번 창립30주년 기념사업 계획에도 한직선연 임원을 역임한 사람들과 직장선교대학을 수료한 1천5백여 명을 위해 ‘직장선교동호회’, ‘직장선교동문회’ 등을 만들 계획입니다.”

-직장선교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무엇입니까.

“직장선교에 대한 의식개혁입니다. 아직도 많은 교역자들이 교인들에게 교회에서 봉사하라고만 하고 교회 밖에 나가서 봉사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모이는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한다면 직장선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직장과 지역사회에 나가서 더 선교하고 봉사하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임무인데도 자꾸 개교회주의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평신도들도 주일 하루만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면 된다는 의식을 개혁해야 합니다. 기독 직장인은 ‘우리의 선교지는 직장이고 사회’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건물 중심의 교회만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 열린 교회, 현장 교회, 생활 중심의 교회로서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도록 의식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직장선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계획입니까.

“우선 한기총과 주요 교단에 직장선교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직장선교후원회도 결성하도록 할 것입니다. 예장통합, 예장고신에는 이미 직장선교 전담부서와 후원회가 조직되어 있고 기감은 서울연회를 중심으로 직장선교 전담부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직장선교주일을 제정해 교회에서 직장선교 설교를 전하면서 교인들의 인식을 개선할 수도 있습니다.

한직선연은 창립30주년 기념사업으로 직장선교대상을 만들어 모범직장선교사를 선발하고 형편이 어려운 직장인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 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직선연의 내실화를 위해 지역별 성경공부모임 및 전도모임도 활성화하고 독지가들과 힘을 모아 ‘재단법인 직장선교사회문화원(가칭)’도 설립할 것입니다.

한직선연 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테스크포스팀(TFT)도 이미 구성했습니다. 총괄본부, 교육훈련본부, 선교비전본부, 네트워크본부, 재정본부 등 5개 본부에 여성청년본부를 추가로 만들어 여성직장인, 청년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직장선교를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대외관계 활성화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해외에 한직선연 지사를 세우고 세직선과 협력해 해외 직장선교를 더욱 활성화시키려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 지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박흥일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사대 및 행정대학원, 영국런던대학교 정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하버드대학교 케네디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34년의 공직생활에서 과학기술부 국장, 차관보 등을 역임했으며 사모 김재영 권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