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의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브리짓 가브리엘(Brigitte Gabriel)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큰 식당을 경영하는 그녀의 부모는 외동 딸이 자라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았기에 딸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이라고 매일 고백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폭탄이 날아와서 천장이 무너져 버렸다. 부모는 하늘이 보이는 침실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딸을 부둥켜 안고 지하실로 허둥지둥 내려갔다. 지하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아놓았다.

그런데 다시 폭탄이 날아와 모래주머니 더미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지하실로 내려가는 유일한 통로가 덮어버렸다.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었고 밖에 구조 신청을 보낼 길도 없었다. 그 가족은 물과 식량이 떨어지자 오줌을 받아 마시면서 연명했는데 딸이 죽어가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 때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이란다.(Because they hate)”

이것은 레바논이 이슬람화되면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웃의 무슬림들은 다만 그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목숨을 건진 브리짓 가브리엘은 결혼을 생각하며 교제하던 애인까지 무슬림들에 의해 살해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그 후에 이스라엘 방송국의 월드뉴스의 앵커가 되어 얼굴이 알려졌고 무슬림들에 살해 위협을 받던 중 미국행을 결심한다.

미국에 와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출판했는데 그 제목이 ‘그들이 미워하기 때문이란다(Because They Hate)’였다. 이 책은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왜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워할까? 이슬람 학자들이나 그들의 홍보용 자료를 읽은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기에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1097년)부터 근 200년 간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공개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7세기(624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알라와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라는 것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가르침이고 그들의 경전인 코란의 명령이다.(코란5:33)

물론 무함마드가 메카에 있을 때는 세력이 미약했기에 계시를 받았다면서 평화를 이야기했다. 그 중 유명한 구절이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지니라(코란2:256)’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나중에 무함마드가 메디나의 최고통치자가 되고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을 갖춘 뒤 취소되었다. ‘thequran.com’이라는 사이트에서 코란2장256절을 찾아보면 4개의 영문 번역본들을 볼 수 있는데 ‘이 구절(코란2:256)은 코란9장5절(이교도들은 발견 되는대로 죽여라)에 의해서 취소된 구절’이라고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코란의 평화적인 구절들이 이슬람의 만수크(Mansukh) 교리에 의해서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양심적인 무슬림 학자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 혹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지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코란의 온건한 구절들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위의 구절들을 인용하며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설득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코란이 증오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든지 편견 없이 코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 믿는 이(무슬림)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있는 불신자들과 싸우라’(코란9:123)
‘비록 너희가 싫어할지라도 싸움은 너희에게 과하여진 의무니라. 너희는 유익한 것을 싫어하는 것도 있으며 해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너희는 모르지만 알라는 잘 아시느니라’(코란2:216)
‘오 믿는 자(무슬림)들이여. 너희가 경전의 백성(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을 따른다면 그들은 너희를 불신자로 만들 것이다’(코란3:100)

‘믿는 자들이여 불신자들을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해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그들은 단지 너희가 파괴되기를 바랄 뿐이라. 그들의 입들에서 증오가 발산되며 그들의 마음은 더욱 사악하도다. 알라께서는 너희에게 그 말씀을 설명했나니 지혜가 있다면 알게 될 것이다’(코란3:118)
‘너희는 그들을 사랑하느뇨. 그러나 너희가 그들의 모든 성서를 믿는데도 그들은 너희를 사랑하지 않도다. 그들이 너희를 만날 때면 우리는 믿는다고 말하나 홀로 있을 때 그들은 너희에게 그들의 손가락을 깨물며 분노하니 그들에게 말해주라. 분통이 터져 죽어라.(Die in your rage.) 알라께서는 너희 흉중의 생각을 모두 아시느니라’(코란3:119)

이러한 이슬람의 경전을 통해 선포되는 절대신 알라(Allah)의 명령들은 코란을 읽는 온건한 무슬림들의 마음 속에 서서히 분노의 불길이 솟구치게 만들 수 있다. 영국의 경우 무슬림들 중 ‘이슬람 확산을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을 급진주의자라고 한다면 나는 급진주의자다’고 응답한 사람이 2001년 15%에서 2006년에는 40%로 증가했다.(2006.2.19 YouGov 여론조사) 미국의 19~29세의 무슬림 청년들의 25%가 ‘이슬람을 수호하기 위한 자살폭탄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PEW 2007 여론조사) 이런 내용이 뉴스 시간에 방송되었을 때 미국이 발칵 뒤집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모든 인간은 인종, 종교, 성별, 정치적 상황, 빈부귀천 등에 관계 없이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인류보편적 가치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가치는 이와 다르다는 것이 요즈음 전 세계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무슬림들의 테러 사건들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평화를 사랑하며 극소수의 무슬림 광신자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억울하게 오해 받고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온건한 무슬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일부 광신적 무슬림들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극소수의 광신적 무슬림들의 폭력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가. 한 명의 테러범이 수천 명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 중에서도 자신들의 경전의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여 테러범이 될 수도 있다. 부유한 은행가 가문에서 태어나 영국 최고 대학의 유학생으로 공부했지만 코란에 심취하여 최근 278명이 탄 성탄절 미국행 비행기에서 테러를 감행한 압둘 무탈라브(2009.12.25 디트로이트)나 미국 육군 고급장교로 진급하기까지 군 생활을 잘 하다가 이슬람 가르침에 헌신된 뒤 동료 미군 장교와 사병들에게 총격을 가해 13명을 죽이고 42명을 부상당하게 한 니달 말리크 하싼 소령(2009.11.5 텍사스) 등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사건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충성되고 헌신된 무슬림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믿고 있는 알라(Allah)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다른 동료와 이웃을 미워하고(코란5:14) 싸우고(코란9:111) 죽이라(코란9:5)고 명령하지만 천지를 지으신 참 하나님은 ‘너희를 죽이려고 박해하는 원수들일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마5:44)고 명하신다. 이 차이를 모르고 이슬람의 알라(Allah)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신이라고 속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때 궁극적으로 더 많은 무슬림들이 참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