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 판결했다. 지난 1953년 처음 제정된 후 56년간 이어온 이 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순간이었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남성이 해악적 문제를 수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성적 행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억제되어야 한다”며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는 이상, 혼전 성관계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유도행위 또한 처벌해선 아니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여성이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결정한 후 자신의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방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라며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니라는 인식이 커져 가고 있고,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라는 개인적 법익이 한층 더 중요시되는 등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겨나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형사 법률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미미해졌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가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 판결했다. 이제 성문화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의 자율에 맡겨졌다.



“사회 지탱의 힘, 시민의 자율의식에 달렸다”

결국 남녀간 사랑의 문제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자제하고 그것을 당사자 스스로의 결정과 책임에 맡기겠다는 것이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이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한국교회언론회는 “바람직한 윤리의식과 성숙한 사회적 책임으로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를 시민들의 몫으로 전가한 것”이라며 “과연 우리 사회가 자율에 따른 도덕적 기준과 성의식이 성숙한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아울러 사회윤리나 도덕적 수준을 담보해야하는 종교적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고 커졌다”고 평가했다.

가정 관련 사역자들도 판결의 적합성 보다는 판결 후 과제로 남겨진 사회 구성원 각자의 신중한 선택과 책임있는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강선영 원장은 “혼인빙자간음죄라는 죄명이 있고 없고를 떠나 현실에서는 이미 아름다운 성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수많은 죄악이 양산되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법의 유무가 아닌, 성경을 기준으로 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의 자세”라고 말했다.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도 “헌재의 결정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 이제 성을 누리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의식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될 것”이라며 “성매매의 만연, 비윤리적인 사회 풍조, 죄의식의 실종 등의 문제들은 늘어나는 반면 사회 윤리를 강제하던 법 제도는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시민의 자율의식이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자리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 목사는 또 “교회가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성윤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더 커지게 됐다. 유초등부 시기부터 윤리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하고, 청년들에게는 ‘순결서약’운동과 ‘성희롱 예방 워크샵’ 등의 프로그램들이 전문적으로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라며 “장년층들에게도 올바른 성윤리 의식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법의 빈 자리를 성숙한 기독교 문화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구촌가정훈련원 이희범 목사 역시 “결국 혼인빙자간음은 결혼 이전의 성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인만큼 결혼 후 갖는 ‘첫날 밤’의 의미가 되살아날 수만 있다면 혼인빙자간음은 실제로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가 개인의 성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성경이 말하는 성적 순결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마를 변화시킨 기독교, 그 모습이 지금 필요하다

성(性)문제는 점차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발적으로 통제해야 할 개인적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사회참여가 활발해지고 개인간 의사소통의 통로가 다양화 된 사회에서, 법의 강제성을 최소화하고 자율적 책임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은, 어쩌면 시대적 요구이자 필연적 결과일지 모른다. 이번 헌재의 판결을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하는 상징적 신호로 받아드리자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과연 이 사회가 성을 자발적으로 다룰 수 있을만큼의 준비가 돼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성폭행을 비롯한 성범죄는 해가 갈수록 그 횟수가 늘고 수법과 대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명 ‘조두순 사건’만 봐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죄인의 실존이 상상 이상으로 추할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만약 이 사회 스스로가 앞으로도 성을 바로 통제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번 헌재의 판결이 그 동안 강제적으로나마 억제시켰던 인간의 욕망을, 이제 아무 제한 없이 분출되도록 허용한 꼴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가정사역자들의 말처럼, 이번 판결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성윤리에 대한 이 사회의 자질을 여전히 의심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과 사안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과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주체가 교회라는 점에 대해서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칼빈대학교 이억주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기독교는 지난 20세기 동안 인류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정신세계와 바람직한 삶, 높은 윤리 기준을 심어 왔다. 성적으로 타락했던 로마를 변화시킨 것 또한 기독교였다”며 “기독교 신앙과 도덕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유인즉 주님이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믿는 바를 삶으로 증거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이 사회 스스로가 앞으로도 성을 바로 통제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주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은 기독교의 가르침인 사랑과 연결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한국교회가 이번 헌재의 판결에서 그 시대적 사명을 발견하고 보다 진지한 자세로 성윤리를 생각해야 할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율법의 가장 큰 두 법도,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법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이 성(性), 즉 사랑에 대한 주제를 놓친다면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교회는 어떤가. 시민들의 윤리의식을 선도할만큼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보유하고 있는가. 몇몇 기독교 단체의 조사를 보면 교회의 윤리의식, 그 중에서도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 결과는 예배당이 연애당이 돼버렸다는 안타까운 목소리와 외부로 표출되는 교회 내 다양한 갈등들을 통해 어느정도 입증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교회가 교육을 통해 바른 성윤리 의식을 심어주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교육이란 명시된 가르침을 단순히 전달하고 숙지시키는 차원이 아니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 또한 어떤 하나의 구호와 캠페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명심한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져야 한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 하는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보호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그러한 죄를 범치 말라고 여자에게 명하신다. 성경의 모든 기록들에서처럼, 예수님은 직접 행동으로 교육하셨고 사랑으로 한 사람을 변화시키셨다. 하나님을 떠나 간음으로 얼룩져버린 이 시대, 우리는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둔 예수님의 그 마음을 다시금 묵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