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영락교회 배명헌 목사
날짜 : 2009년 5월 10일
성경본문 : 잠언 1장 7-9절
제목 : 아름다운 관과 금사슬의 약속
군복무를 마치신 분들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떠오른 얼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어머니라고 대답을 합니다. 군대에 가면 유격훈련이라는 힘든 훈련이 있습니다. 힘든 훈련의 마지막에는 탑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데 뛰기까지 망설임이 있습니다. 교관들이 부르고 싶은 이름을 외치라고 하면 대부분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내립니다. 저는 4월 24일에 머리를 깎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래서 5월 8일 어머니 날을 군대에서 맞이했습니다. 군대에서 맞이했는데 그날 아침 교관이 훈련하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이 오늘 아침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수는 없지만 너희가 땀과 피를 흘림으로 후방에서 너희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러니 너희들이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자랑스럽게 어머니은혜 노래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지독스러운 조교와 교관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노래를 부른 기억이 납니다. 훈련병인 저희도 펑펑 울면서 불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이 존재할까요. 부르면 부를수록 그리움과 평안함, 따뜻함,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름이 어머니입니다. 성경에는 참 애틋한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출애굽의 영웅이었던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이 어릴 때부터 젖을 먹이면서 하나님의 선민임을 기억케 했던,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식을 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아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교육했던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모세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역시 한나의 기도와 헌신 때문에, 하나뿐인자식을 하나님께 받치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이상이 꺼져가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았던 마리아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목숨과 맞바꾼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 또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의 딸이 귀신 들려서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이방인은 개라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딸을 살리기 위해 '개도 주인의 상에서 부스러기를 받아먹습니다. 그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지극함 때문에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19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19명의 아이를 글을 읽히고 5살부터 성경을 읽게 만드는, 그래서 위대한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목회자로, 선두주자로 키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던 어머니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때 왜 이렇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셨도다.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셨는가. 그 은혜가 하늘같이 한이 없도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나를 낳고 기르신 공로를 잘 모릅니다. 때로는 자식을 키워보니 안다고 하지만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릅니다. 지금은 애기 키우기가 쉽습니다. 송강 정철은 '어버이가 살아있을 때는 은혜를 잊고 살다가 그 은혜를 깨닫고 보니 그 어버이는 계시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다보니 부모의 수고를 이해는 하지만 어찌 그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아버지를 봉양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결혼 한 후에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월급 30만원 받는 전도사가 어떻게 어머니를 모시겠습니까. 그러다 목사가 되어서 사택에서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는데 쓰러지셨습니다. 제가 중 3학년때 어머니는 한 1년을 산다고 하면 많이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 마음 속에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저의 목숨을 하나님께 드려서 주의 종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목사 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어머니의 소원이었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97년에 받았습니다. 안수 받자마자 대전에 내려가겠다고 전화드렸더니 한 두주 있으면 내 생일인데 왜 먼저 오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어머니 생신날 내려갔더니 몸이 굳어서 눈만 뜨고 눈으로만 얘기하십니다. 어머니께 제가 목사가 됐다고 말씀 드리니 눈으로만 안다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좋은 훌륭한 목사가 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집에서 잠을 안 주무셨습니다. 평생을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고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저를 키워주셨는데, 제가 자식된 도리를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 지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웁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부모님께 잘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도리입니다. 부모님의 존재가 얼마나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기 위해 사실은 부모님을 빨리 데려가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잠언에 가장 큰 두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십계명이기도 합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것, 그리고 나머지는 사람에게 대한 것인데 도덕적인 계명입니다. 그런데 두번쨰 도덕적인 계명을 시작하는 첫부분이 효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신앙의 제 1계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도덕의 제 1계명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가슴에 칼을 꼽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에 대한 경외는 근원적으로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혼의 근원이시고 부모님은 육체의 근원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자기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은혜는 보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인간됨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잘 못하는 자는 짐승보다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제하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근본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아무리 화려해도 뿌리에서 분리시키면 죽은 나무입니다. 하나님과 어버이를 우리가 부정해버리면 자기의 존재근원을 부정했기 때문에 그에게 인간존엄을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에 부모를 죽인 폐륜아가 있는데 그들을 얼굴을 드러나지 않게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버이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짐승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의 기본 도리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어버이를 공경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얘기한다면 부끄럽습니다.
요즘에 보면 부모자식간에 돈 때문에 원수사이가 있고 부모를 죽이는 일이 참 많습니다. 잠언 23장 25절에 보면 네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즐겁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에는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부모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비수를 꼽는 일을 수없이 보게 됩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을 부에게 순종하라. 물론 부모님의 말씀이 100% 다 맞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똑똑합니다. 하지만 질서의 문제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앞서야 합니다. 질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상태, 환경을 떠나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명령은 제외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보면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왜 오늘날 이렇게 계명을 지키지 않을까요. 더 똑똑하고 돈이 많아서 그렇겠습니까. 딤후 3장 2절에 보면, 말세에 되어질 일들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뽐내며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말세의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자꾸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려면 보이는 부모님에게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단이 말세가 되면 성도의 마음을 그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돈이 최고다, 너가 최고다, 교만해라. 하나님을 왜 잘 섬기니, 쉬어가면서 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니 부모도 섬기지 않습니다. 성경을 앞에 놓고 부모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때야 합니까. 말세의 현상을 쫓아가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입니다. 너가 좀 배우면 좋겠는데 하면 어떻겠니 하는 부탁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부모님이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잔소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부모가 노파심에 잔소리할 수 있지만 성경은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한줌의 오차도 없이 하나의 오류도 없이 우리가 몇천년 전부터 아니 앞으로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순종하라.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편에서 그래 명령이니까 하자. 어쩔수 없이 하자, 하나님이 무서워서 해야지. 그런데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명령조로 강력하게 말씀하시냐면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복받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복을 받겠다는데 그것으로, 한번 해보면 어떻겠니. 그러시겠습니까. 인생의 복 받는 일,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광야에서 너희의 행복을 위해서, 너희에게 계명을 주는 이유는 너희를 괴롭히고 내 말대로 살도록, 내가 존귀와 영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행복을 위해서다.
부모임을 공경하고 순종하고 효성스럽게 하는 일은 우리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우리 목의 금사슬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부모님을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합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그 복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땅에서 잘되고라는 말을 멋지게 표현한 말이 네 목의 금사슬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매력적이라는 뜻입니다. 호의적인 감정을 사람들에게 유발시켜서 매력을 느끼는 성품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옷이 변변치 못해도 매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그 말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효를 다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명예와 신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수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다면 이미 복받은 사람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자기대가 아니어도 그 후대에 복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있습니다. 여러분을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부모님, 입을 것 입지 못하고 자야 할 시간에 자지 못하고 좋은 것 있으면 자식을 챙겨주시는 어머니, 아버지. 이제 늙어 세상을 하직할 순간만 기다리는 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이 효성스럽게 한다 할지라도 부모님이 지옥에 간다면 소용없습니다. 어떤 분은 그렇습니다.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리기 싫어서 전도 못한다고 합니다. 부담을 주어서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가장 좋은 효도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천국 시민되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관을 쓰고 여러분의 목에는 금목걸이와 세상이 줄 수 없는 명예를 회복하는 어버이 주일,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날짜 : 2009년 5월 10일
성경본문 : 잠언 1장 7-9절
제목 : 아름다운 관과 금사슬의 약속
군복무를 마치신 분들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떠오른 얼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어머니라고 대답을 합니다. 군대에 가면 유격훈련이라는 힘든 훈련이 있습니다. 힘든 훈련의 마지막에는 탑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데 뛰기까지 망설임이 있습니다. 교관들이 부르고 싶은 이름을 외치라고 하면 대부분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내립니다. 저는 4월 24일에 머리를 깎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래서 5월 8일 어머니 날을 군대에서 맞이했습니다. 군대에서 맞이했는데 그날 아침 교관이 훈련하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희들이 오늘 아침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수는 없지만 너희가 땀과 피를 흘림으로 후방에서 너희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러니 너희들이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자랑스럽게 어머니은혜 노래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지독스러운 조교와 교관도 눈물을 펑펑 쏟으며 노래를 부른 기억이 납니다. 훈련병인 저희도 펑펑 울면서 불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머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이 존재할까요. 부르면 부를수록 그리움과 평안함, 따뜻함,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름이 어머니입니다. 성경에는 참 애틋한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출애굽의 영웅이었던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이 어릴 때부터 젖을 먹이면서 하나님의 선민임을 기억케 했던,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식을 버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아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교육했던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모세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 역시 한나의 기도와 헌신 때문에, 하나뿐인자식을 하나님께 받치는 헌신으로 하나님의 이상이 꺼져가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낳았던 마리아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목숨과 맞바꾼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모습을 보아야 했던 어머니의 눈물, 또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의 딸이 귀신 들려서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이방인은 개라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딸을 살리기 위해 '개도 주인의 상에서 부스러기를 받아먹습니다. 그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지극함 때문에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19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19명의 아이를 글을 읽히고 5살부터 성경을 읽게 만드는, 그래서 위대한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목회자로, 선두주자로 키웠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던 어머니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때 왜 이렇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가 나를 기르셨도다.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셨는가. 그 은혜가 하늘같이 한이 없도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나를 낳고 기르신 공로를 잘 모릅니다. 때로는 자식을 키워보니 안다고 하지만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릅니다. 지금은 애기 키우기가 쉽습니다. 송강 정철은 '어버이가 살아있을 때는 은혜를 잊고 살다가 그 은혜를 깨닫고 보니 그 어버이는 계시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자식을 낳고 기르다보니 부모의 수고를 이해는 하지만 어찌 그것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아버지를 봉양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결혼 한 후에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월급 30만원 받는 전도사가 어떻게 어머니를 모시겠습니까. 그러다 목사가 되어서 사택에서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는데 쓰러지셨습니다. 제가 중 3학년때 어머니는 한 1년을 산다고 하면 많이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 마음 속에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저의 목숨을 하나님께 드려서 주의 종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목사 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 어머니의 소원이었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97년에 받았습니다. 안수 받자마자 대전에 내려가겠다고 전화드렸더니 한 두주 있으면 내 생일인데 왜 먼저 오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어머니 생신날 내려갔더니 몸이 굳어서 눈만 뜨고 눈으로만 얘기하십니다. 어머니께 제가 목사가 됐다고 말씀 드리니 눈으로만 안다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좋은 훌륭한 목사가 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집에서 잠을 안 주무셨습니다. 평생을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고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저를 키워주셨는데, 제가 자식된 도리를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면 지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웁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들은 부모님께 잘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도리입니다. 부모님의 존재가 얼마나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알기 위해 사실은 부모님을 빨리 데려가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잠언에 가장 큰 두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십계명이기도 합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것, 그리고 나머지는 사람에게 대한 것인데 도덕적인 계명입니다. 그런데 두번쨰 도덕적인 계명을 시작하는 첫부분이 효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신앙의 제 1계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도덕의 제 1계명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가슴에 칼을 꼽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에 대한 경외는 근원적으로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영혼의 근원이시고 부모님은 육체의 근원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자기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과 부모님의 은혜는 보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인간됨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잘 못하는 자는 짐승보다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제하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근본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아무리 화려해도 뿌리에서 분리시키면 죽은 나무입니다. 하나님과 어버이를 우리가 부정해버리면 자기의 존재근원을 부정했기 때문에 그에게 인간존엄을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에 부모를 죽인 폐륜아가 있는데 그들을 얼굴을 드러나지 않게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버이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짐승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의 기본 도리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어버이를 공경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얘기한다면 부끄럽습니다.
요즘에 보면 부모자식간에 돈 때문에 원수사이가 있고 부모를 죽이는 일이 참 많습니다. 잠언 23장 25절에 보면 네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즐겁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에는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부모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비수를 꼽는 일을 수없이 보게 됩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을 부에게 순종하라. 물론 부모님의 말씀이 100% 다 맞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자녀들이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똑똑합니다. 하지만 질서의 문제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앞서야 합니다. 질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상태, 환경을 떠나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명령은 제외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보면 자녀들은 마땅히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왜 오늘날 이렇게 계명을 지키지 않을까요. 더 똑똑하고 돈이 많아서 그렇겠습니까. 딤후 3장 2절에 보면, 말세에 되어질 일들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뽐내며 순종하지 않으며 감사할 줄 모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말세의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자꾸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려면 보이는 부모님에게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단이 말세가 되면 성도의 마음을 그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돈이 최고다, 너가 최고다, 교만해라. 하나님을 왜 잘 섬기니, 쉬어가면서 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니 부모도 섬기지 않습니다. 성경을 앞에 놓고 부모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때야 합니까. 말세의 현상을 쫓아가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펴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입니다. 너가 좀 배우면 좋겠는데 하면 어떻겠니 하는 부탁이 아닙니다.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부모님이 이야기하면 잔소리로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잔소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부모가 노파심에 잔소리할 수 있지만 성경은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한줌의 오차도 없이 하나의 오류도 없이 우리가 몇천년 전부터 아니 앞으로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순종하라.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편에서 그래 명령이니까 하자. 어쩔수 없이 하자, 하나님이 무서워서 해야지. 그런데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명령조로 강력하게 말씀하시냐면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복받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자식이 복을 받겠다는데 그것으로, 한번 해보면 어떻겠니. 그러시겠습니까. 인생의 복 받는 일,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광야에서 너희의 행복을 위해서, 너희에게 계명을 주는 이유는 너희를 괴롭히고 내 말대로 살도록, 내가 존귀와 영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행복을 위해서다.
부모임을 공경하고 순종하고 효성스럽게 하는 일은 우리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우리 목의 금사슬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부모님을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합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그 복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땅에서 잘되고라는 말을 멋지게 표현한 말이 네 목의 금사슬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매력적이라는 뜻입니다. 호의적인 감정을 사람들에게 유발시켜서 매력을 느끼는 성품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옷이 변변치 못해도 매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그 말입니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효를 다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명예와 신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수 있다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다면 이미 복받은 사람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자기대가 아니어도 그 후대에 복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있습니다. 여러분을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부모님, 입을 것 입지 못하고 자야 할 시간에 자지 못하고 좋은 것 있으면 자식을 챙겨주시는 어머니, 아버지. 이제 늙어 세상을 하직할 순간만 기다리는 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이 효성스럽게 한다 할지라도 부모님이 지옥에 간다면 소용없습니다. 어떤 분은 그렇습니다.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리기 싫어서 전도 못한다고 합니다. 부담을 주어서도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가장 좋은 효도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천국 시민되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관을 쓰고 여러분의 목에는 금목걸이와 세상이 줄 수 없는 명예를 회복하는 어버이 주일,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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