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기독일보는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 주님의 사랑과 고난의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자 워싱턴주 각 교회의 고난주간 새벽예배 설교를 요약 게재 합니다. 이 지역 모든 성도들과 교계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롭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금란교회 이석주 목사
요한복음 13장 21-30 제목: 나가니 밤이더라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집에서 유월절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최대 명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430년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날이 유월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는 이 유월절은 아주 뜻 깊은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유월절 식사가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몇 시간 후면 십자가의 고난이 시작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만찬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의 식사라기보다는 가장 귀한 순간 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임을 당하여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한참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좀 할 말이 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자가 있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 중 한 명이 예수님을 팔아버릴자라고 하니 순간 분위기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모두들 놀라면서도 아무 말도 없는 침묵의 순간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에 베드로가 물었습니다.“주님이 말씀하시는 자가 누구입니까?”예수님은 한동안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결심하신 듯“내가 떡 한 조각을 떼어주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떡 한 조각을 떼어 가룟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자 사단이 곧 그 속에 쑥 들어갔습니다. 가룟 유다는 태연한 모습을 억지로 짓다가 잠시 후에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니 밤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떠나 나가니 밤이었다는 말씀은 어두운 밤도 밤이지만 밤에 대한 영적인 의미가 깊습니다.

전통적으로 밤은 어둠, 죄, 실망, 실패, 죽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밤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고 사탄마귀게 에게 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 9:4에서“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살전 5:5에서는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밤은 예수를 떠나 있는 상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 예수님을 떠나니 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떡 한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씀합니다. 이 떡은 성찬의 떡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떡이 사탄을 불러들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주신 떡이 문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에서 예수님을 팔 자가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열 두 명의 제자 중에 은 30 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 자가 가룟 유다라는 것을 알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유월절 이 자리에서 갑자기 알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정말 즐거워하고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제자가 있습니다. 어떤 제자는 마지못해 따라다니는 제자도 있습니다. 또 어떤 제자는 예수님의 제자 된 생활을 불평하고, 늘 투덜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을 보면서 이 중에서 나를 팔아버릴 제자가 있다는 것을 평소에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 때문에 어려워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아십니다. 신실한 믿음의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고 말씀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보면 일반적인 생활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교회생활을 보면 감사하는지, 불평하는지,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 믿음으로 하는지 마지못해 하는지 압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보면 그 영적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너희 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고 말씀 하였을 때, 이 때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하실 때에는 이미 제자들이 그동안에 생활한 것, 말한 것, 그리고 생각해왔던 것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 사람이 가룟 유다라는 것을 알고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 것이라고 하시며 떡을 떼어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순간 당사자인 가룟 유다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오늘 유다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알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에 대해서 평소 불만을 가졌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을 싫어했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탐탁지 않았고, 예수님의 일행의 경비를 맡은 회계책임자로서 돈에 대해서 욕심이 있었고,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에 마음이 들지 않아왔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떡을 받기 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룟 유다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말씀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사도행전 3장과 7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 할꼬”하고 사도에게 물었습니다.“너희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그날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000명이 되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행7:54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를 간 사람들은 복음 전한 사람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느냐가 여러분의 인생을 밤이 되게도 하고 낮이 되게도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이 어렵고 힘들어 할 때 감사할 것이 없다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적지 않은 불만과 불평을 할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생업에 대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할 일이 많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어려운 상황중에서도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는 감사를 낳는 법이다. 여러분, 불평하지 마세요”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을 나타내야 할까요? 마음에 찔려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자기 자신의 잘못과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을 말하고 지적하고 있는데“여러분,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잘못한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나타내야 할까요? 마음에 찔려 회개하는 반응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때는 신앙생활이 힘듭니다. 내 생활이 신앙생활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 신앙생활에 열심을 못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어렵고 힘들 때 일수록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이 믿음을 지켜나가는 길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가져야 할까요? 십일조를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하는 분들이“여러분,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고 구약성경 말3:7이하에서 말씀합니다”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타납니까?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너희 중에서 나를 팔자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난 어쩔 수 없어, 내 생각대로 할꺼야라는 반응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회개는 커녕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하필이면 이 시간에 저런 소리를 할 이유가 뭐야”하면서 기분 나빠하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하지 않으니까 사탄이 그에게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먼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회개가 없으면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 회개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탄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다 회개하는 심령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하나님의 위로와 새 힘을 받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예수님, 접니다. 제가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의 못난 자아와 잘못된 마음과 생각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너희 중에 나를 팔자가 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회개했어야 했는데 회개하지 않으니까 바로 그 순간에 사탄 마귀가 유다에게 쏙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오느냐 하면 회개할 것을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었는데, 회개의 시간이 있었는데, 회개의 문이 열렸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안에도 들어옵니다. 가룟 유다도 회개하지 않으니까 사탄이 들어오고 사탄이 들어오니까 예수님에게서 나가니 그에게는 밤이 찾아왔습니다.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지 않으면 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마귀가 들어옵니다. 우리에게 마귀가 들어오면 우리의 인생은 밤을 맞게 됩니다.밤은 죽음입니다. 밤은 인생에서 실패입니다. 밤은 신앙의 실패이고, 밤은 인생의 절망이며, 밤은 은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인생의 밤을 맞이하여 목매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시체가 땅에 떨어져 배창자가 튀어나오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이나 따라다녔던 사람이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지 않으니까 그에게는 찬란한 광명,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생명이 아니라 혹독한 인생의 밤을 맞이한 사람으로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26:24에서 “차라리 그런 사람은 낳지나 말았으면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를 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밤과 같아집니다.

두 번째로 사명을 떠나면 인생의 밤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부르셔서 귀한 제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지식이나 출세로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세상의 명예나 자랑거리보다도 더 소중한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사명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배움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서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이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이요, 은혜요,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말았습니다. 제자로서의 사명을 버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이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명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사명을 버리고 나가니까 그에게 찾아온 것은 깊은 밤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장의 사명을 버리고 나가면 그 인생에게 밤이 찾아옵니다. 엄마가 엄마의 사명을 버리면 그 엄마는 깊은 밤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교회에서도 교사는 교사로서의 사명이 있고, 성도는 성도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성가대는 성가대의 사명이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의 사명이 있습니다. 저에는 목사의 사명이 있기에 여러분들이 때로는 듣기 싫어도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석주목사라고 세상과 짝해서 세상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것을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결국 여러분들의 신앙이 세속화 되고, 여러분들의 영이 피폐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전할 사명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 20:24에서는“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사명 때문에 살고, 사명 때문에 고생해도 참고, 사명 때문에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명을 버리고 나가면 그 인생은 밤을 맞이합니다. 가룟 유다가 주님이 주시는 더 큰 사명을 부름 받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버리고 나가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팔아버리는 엉뚱한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 쓸모없어지는 인간으로 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사명을 버리고 나가면 다른 사람에게 그 사명의 자리를 빼앗깁니다.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빼앗기면 그 인생에게는 밤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가룟 유다가 사명을 버리고 나가니까 맛디아를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버리고 나가면 자리를 잃고 맙니다. 자리를 지켜야 축복이지 자리를 잃어버리면 밤이 찾아옵니다. 가룟 유다의 이름은 영원히 욕된 이름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의 사명은 에덴동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명을 떠나 다스려야 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이 사명을 떠나고 나니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밤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사망이 들어 왔습니다. 사명을 떠나면 밤입니다.

한국의 어떤 교회에서 여선교회 회장을 선출할 때였습니다. 여선교회 회원들이 교회 사모님에게 찾아왔습니다. 누가 이번에 여선교회장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모님은 한참 생각하더니 “하나님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보시고 일꾼으로 부르시고 쓰시는 것이 아니므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자”고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선교회원들이 생각하는 것은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그래도 좀 형편이 좋은 황 집사님을 이번에 여선교회장으로 선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 황 집사님은 “나는 시간이 없고, 늘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못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선교회에서는 시간도 내기 어렵고, 모두가 보기에 바쁘고, 여유도 넉넉하지 않은 김집사님을 여선교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김 집사님은 다들 바빠서 못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으니 많이 협력해달라”는 인사말로 회장이 되어 그야말로 열심히 충성하였습니다. 그런데요. 1년이 지난 후 시간 많고, 여유가 제일 있던 황 집사님은 그 말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하던 무역업이 도산되고 빚에 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황 집사님은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그야말로 바쁘고 시간이 없는 집사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김 집사님은 정말 시간 내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충성하였습니다. 조그만 점포하나 내서 우동집을 하였는데 그 우동집이 얼마나 잘되기 시작했는지 아무교회 여선교회장이 하는 우동집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우동집을 크게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자를 부르시고 사명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버리고 나가면 밤이 찾아옵니다. 사명을 거절하면 신앙의 밤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슨 사명을 맡겨 주셨던지 거절하지 마십시오. 가룟 유다처럼 사명을 떠나가지 마십시오 떠나면 영적인 밤이 오고, 인생의 밤이 옵니다. 사명에서 벗어나면 밤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떠나면 밤입니다. 가룟 유다가 나간 것은 예수님을 떠난 것을 말합니다. 가룟 유다자신에게도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변명도 있고, 자기 계획도 있었을 것이고, 할 일이 바빴을 것이고, 자기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주신 사명을 버리고 나니 결국은 주님을 떠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나간 것은 분명히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기를 싫어했습니다. 더 이상 사명자로 살아가기가 싫었습니다. 그간 가졌던 신앙을 한 순간에 다 까막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밤이 찾아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포기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급했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떠났더니 그에게는 죄악의 수렁에 빠지는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더 이상 제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에서 벗어나면 더 이상 사명자가 아닙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구원받지 못 하였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밤은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을 떠나는 생활이 되지 맙시다. 그래야 하나님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고난을 참고 인내하면 주님은 승리하게 하십니다.“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로마서8장 18절에 말씀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수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선택해야 빛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윷놀이가 벌어졌습니다. 결승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팀이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되었습니다. 개만 나면 모두 나게 되었습니다. 완승의 순간이었습니다. 상대방은 아직 3개를 말판에 달지 못 하였으니 일방적인 게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 다 틀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는 윷을 던지나 마나이니까 옆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에게 “네가 마지막으로 던져라”라고 말했습니다. 양팀에서 모두 허락하였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정말이요? 잠간만이요!> 하더니 옆으로 돌아서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주님! 나 보고 하래요.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가능하다고 그러셨잖아요? 이기게 하여 주세요”이런 기도였습니다. 어른들은 하도 기특하여 어린아이가 기도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윷을 던졌습니다. 모가3 번, 윷이 두 번 나와서 윷놀이 판이 끝났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여러분이 겪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찾아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면 밤이 찾아옵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사명을 떠나면 인생의 밤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밤이 찾아옵니다.

고난은 결코 여러분에게 밤이 아닙니다. 고난이라고 신앙에서 떠나고, 고난이라고 믿음에서 떠나고, 고난이라고 사명에서 떠나는 것이 밤이 됩니다. 고난이 주님의 가신 길임을 깨닫고 고난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고난의 때를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에서, 사명에서,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길은 밤이 됩니다.여러분들에게 이 고난 주간에 고난을 이길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