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 후 알자지라 방송에서 중동에 와있는 한국 사람들은 선교사라는 식의 방송을 했고 중동 여러 지역에서도 이런 류의 방송과 신문에 보도가 있었다. 최근 예멘에서 일어난 사건은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드디어 염려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이곳 중동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사역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전과 다른 상황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9.11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반미를 모토로 공개적인 결집을 시도하였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군사 작전에도 거침없이 자신들의 세를 확장시켜 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중동 지역에서 건설과 기업 활동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을 통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싫어하는 미국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사실 한국 정부는 엄연한 국제 현실 속에 미국의 정책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지만 말이다.

공식적인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 예멘 사건이 이러한 연유 등으로 인해 한국인을 표적으로 한 공격이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도적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이 사건은 중동지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이미 큰 이슈가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한국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중동 지역에서의 한국 사람들도 전보다 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이번 사건을 통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여러 조치들을 취할 수 있고 나름대로 안전대책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예멘은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관광객 방문이 제한될 것이며 관광객 역시 이 곳으로 되도록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을 이루어야 할 우리들은 입장이 다르다. 땅끝까지 주의 말씀을 가지고 가야 할 우리들에게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은 크다고 본다. 복음을 위해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선교 현지를 버려둘 수 없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가야 할 선교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 선교 사역에서 중동 지역은 사역자들이 오랫동안 수고하고 애를 쓰며 선교지를 지켜왔음에도 지역적, 종교적, 선교의 효과 면 등에서 관심밖에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곳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동 지역에 대한 선교적인 관심이 늘어가는 것은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현재 중동 지역은 전 세계 이슬람의 본거지로 인식되고 있다. 서구적인 관점에서 십자군과 그 이후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동은 왠지 거부감이 드는 지역으로 인식되었고 특히 중동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인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서구인들과 함께 우리들도 이중적인 잣대로 이곳을 바라보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우리 주님께서 태어나신 지역이고 사역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초대 교회가 시작된 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이후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비잔틴제국이었으며 교회가 융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의 타락으로 교회는 세상 권력과 함께 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갔다. 교회는 일반 서민들과 괴리가 되어버린 부유한 교회로 전환되면서 고립되기 시작했고 결국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된 신흥종교인 이슬람의 거센 물결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짧은 기간 동안 기독교 문화권이었던 비잔틴제국의 대부분이 이슬람화 되어버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은 당시 교회가 일반 백성들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사람들의 마음이 교회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데에는 여러 강압적인 이유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이슬람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는 근거들도 있다.

이미 이곳은 구약시대 세계를 호령했던 여러 대제국들이 일어난 무대가 되었던 곳이고 나름대로 자신들이 뿌리깊은 지역의 사람이라는 의식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자존심이 강한 곳이다. 전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후세인이 스스로 느부갓네살이 되기 원했던 사실들은 현재의 서구의 힘 앞에 자신들의 힘을 겨룰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꿈꾸며 역사 앞에 다시 서기 원하는 마음들이 남아 있다는 반증이 된다.

이는 정치적인 이유뿐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무슬림의 입장에서는 한 때 중동 전 지역과 북부아프리카, 스페인을 넘어 유럽까지 넘보았고 중앙아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등 멀리 아시아까지 세를 확산시키며 나름대로 대제국을 형성했던 과거의 화려했던 이슬람 대제국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종교로 다시 한번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지역은 자신들이 새로이 도약해야 하는 땅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땅은 우리가 대결해야 할 땅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할 땅이다.

변화하는 중동

중동이 변하고 있다. 현재 중동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이상과 자본주의 물결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슬람 샤리아법이 지배하는 신정 이슬람 국가를 꿈꾸는 근본주의자들과 자본주의의 맛을 보고 느끼며 자라난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인터넷과 여러 방송매체들을 통해 쉽게 서구문화를 접하면서 명목상의 무슬림이 되고 있다. 신구 계층 간의 간격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이슬람 사회에서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 되고 있고 내부적인 갈등 또한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종교 이데올로기를 통해 더욱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슬람 사회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한다. 이들은 더욱 극단 적인 방법들을 동원하며 중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나타내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과 여러 곳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활동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늘어나고 있고 한 지역을 넘어 서로 간에 협력을 강화함으로 세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동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들 근본주의자들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금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 대응을 하고 있기에 공개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서구의 강력한 힘 앞에 무기력 하게 보이는 정부와 자신들의 종교에 비해 타락한 문화로 여겨지는 서구의 퇴폐문화, 서구문화를 기독교와 동일하게 여기는 반기독교 정서, 과거 십자군에 대한 감정, 그리고 반미 등을 하나로 묶어 정부와 각을 세우며 이슬람 사회에 강력하게 파고들고 있고 세를 확산시키고 있다.

알카에다가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당(이미 한 단체를 넘어 레바논 정부의 공식 정당으로 자신들의 장관을 세웠고 남부 지역은 헤즈볼라가 장악한 상태), 자살공격의 원조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고 아라파트의 파타당에 대적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지원을 했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 속에 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식적인 정부를 구성하고 지난번 가자에서 이스라엘과 대결을 함), 이집트의 형제단(현 친미정권인 무바라크 정부에 대항해 대정부 활동을 강화하고 있음) 등과 그 외의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그룹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숫자적으로는 소수이지만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세를 이미 확보하였고 자신들의 종교,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연대로 터를 닦아가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삶을 우선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고 있다.

이슬람 사회는 움마 공동체로부터 시작했고 지금도 집단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보다는 공동체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우선이다. 때문에 겉으로는 노골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반대를 할 수 없는 분위기이지만 실제 이들 세력에 동조하는 세력은 아직 소수이다. 그럼에도 소수인 근본주의자들은 아랍 사람들의 종교와 민족주의를 자극하면서 젊은이들 속에 파고 들어가고 있고 다시 한 번 반미와 반서구, 반기독교 정서를 이용해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으며 아랍 사람들의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각 지역의 근본주의자들이 전 아랍권의 연대를 통해 갈수록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정치화 되고 있고 이에 대한 서구사회의 대응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정책은 스스로도 인정을 하듯이 실패하였고 그 영향은 중동전체에 미치고 있다. 한 때 강력한 이슬람 제국을 이루었던 이슬람권은 오스만 제국의 쇠락과 함께 19세기 들어 서구 열강들에 의해 과거의 모습은 역사 속에 사라졌고 현재도 서구의 강력한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슬람은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과 자원을 무기로 일어나고 있다. 이 지역은 주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이루어야 하는 주님의 제자인 우리에게 이 시대 주어진 막중한 책임이자 사명이라 본다.

중동 선교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서구교회의 영향으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십자군적인 사고’로 이 땅과 이 지역 사람들을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지난번 전 미국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라크전을 십자군 전쟁처럼 여겼던 사고방식 속에서 읽을 수 있다. 기독교를 서구 문화와 동일시 여겨 자민족중심적인 사고와 자문화중심 사고를 가졌던 일부 서구적인 선교 의식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이 땅에 대한 많은 오해와 생각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이곳 중동 선교에 큰 걸림돌로 작용을 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 보았듯이 이곳은 복음이 시작된 곳이며 기독교 문화가 꽃을 피웠던 기독교 지역이었다. 저주와 외면하는 곳이 아닌 복음으로 다시 회복 되어야 할 곳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들과 동일한 존재라는 극히 기본적인 사고에서 이들에 대한 시선과 관념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십자군적인 사고와 문화우월주의에 빠져 이들을 경시하고 도와야 할 존재로만 여긴다면 중동에서 복음이 확산되는 데 어려움이 가중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예멘 사건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재조명을 해보며 중동 이슬람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현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현장 선교 전략을 재정립하고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의 몫을 재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프간 사태 이후 한국교회뿐 아니라 선교적 차원에서도 많은 어려움들이 발생하였고 이는 단순한 한국교회의 일을 넘어 한국인 전체의 문제로 발전된 듯 하다.

이라크와 아프간 선교의 문은 정부에 의해 이미 닫혀 버렸다. 우리가 아무리 그곳에서 선교하려고 해도 정부 차원에서 방문을 금지했기에 물리적으로 선교를 할 방도가 막혀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앞으로 중동에서 아프간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사태가 또 한 번 일어난다면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지가 정부에 의해 문이 닫힐 수도 있다. 자국민 보호라는 정부의 입장은 교회가 감당하고자 한 선교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으로도 정권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우선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정부를 상대로 교회의 입장만을 강조할 수 없음은 이미 경험했다.

대책

이곳은 최근 들어서 선교지로 관심이 집중된 곳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이곳은 복음의 시발점이 되었던 곳이며 선교의 출발점이었고, 교회가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다. 이슬람화 되어버린 땅임에도 이미 이곳에는 전통적인 교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존재하고 있고 오래 전부터 선교가 시도 되어진 곳이다. 그리고 이미 각국의 많은 선교단체들이 들어 와 있고 나름대로 활발하게 수고하고 있는 선교에 전혀 불모지가 아니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이곳 선교가 늦게 시작했을 뿐이지 이미 이곳은 선교에 관한 처녀지가 아닌 것이다. 다만 선교적인 관점에서 이곳 선교를 위해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음은 모두가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선교의 주자로서, 세계 선교사 파송 2위라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중동 선교에 임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중동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이슬람권 선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 땅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은 온 인류 모두에게 임한 동일한 은혜이다. 무슬림들 역시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할 존재이고 구원의 소식을 들어야 할 존재이지 배척하고, 상대하지 못 할 존재로 여기는 것은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각 현장에 맞는 선교정책을 세워야 한다 먼저 중동의 각 국가들을 각 나라별, 지역별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은 크게 나누면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눌 수 있다. 그 외 여러 종파들이 있지만 크게 두 파로 나누어져 있는데 시아파가 강성으로 분류가 되어있다. 각 나라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슬람의 문화와 각국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무슬림들은 자기 종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선교는 지양되어야 한다. 일부 단기봉사팀들이 이슬람 문화에 대한 사전 교육이 없이 열정만을 앞세워 선교지에 와서 현지인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아무 예고 없이 현지인 가정을 방문하여 곤란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이는 장기적인 선교를 어렵게 하는 일들이다. 또 이로 인해 이미 여러 곳에서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선교사’라는 인식을 현지인들에게 심어 주었다. 만약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한 단체의 문제를 넘어 한국교회 차원에서 심각한 일들이 선교현장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아프간 사태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에 지혜롭게 해야 할 선교지이다.

이슬람권 선교는 인내와 함께 비전을 가지고 차분하게 이루어 나가야 한다 선교현장에서 결과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이슬람권 선교에 최선을 다하는 사역자들이 중동에 많이 있다. 이들의 헌신과 수고로 조금씩 이 지역 선교의 문들이 열려가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당장 어떤 결과를 바라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현지를 알아가는 준비들을 해야 한다. 우선 선교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전체적으로 중동 선교의 틀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이곳 선교는 이 시대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고로 인해 중동 지역은 기피해야 할 선교지가 아닌, 오히려 더욱 신중하고 지혜롭게 다가가야 하는 선교지임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직도 중동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열심히 일해 잘 사는 나라로 인식되어 있고 한국의 많은 물건들이 호평을 받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전에 비해 구호차원의 지원을 많이 하여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도 한국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더 많은 투자들이 있어야 하며 민간 외교 부분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선교적인 면에서 이곳 형편에 맞는 여러 사역들을 개발해야 한다 이 지역에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선교사역은 무슬림과 소수 기독교인으로 나누어 전략을 세우고 무슬림 중에도 강성 무슬림과 온순한 무슬림으로 나누고 기독교인들 중에도 명목상의 기독교인과 구원에 확신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역 대상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회 사역이 되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 지역별로 현지인의 필요를 채우는 문화, 교육, 의료 사역 등을 시행하고 현지교회와의 협력 강화해야 한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중동 선교의 로드맵을 만들어 하나씩 이루어 나갈 때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어려움들을 극복해 낼 수 있고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마지막 땅끝인 중동에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리라 확신한다.

모두들 한국교회가 어려운 상황이라 말한다. 이 어려운 때 진정 한국교회가 어떻게 주님의 지상 명령을 잘 감당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하고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어서 선교를 통한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이 한반도를 새롭게 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