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큰 아이가 운전면허를 땄을 때 92년형 닛산 픽업 트럭을 사 주었습니다. 챠콜 색에 작은 접는 의자가 있는 익스텐디드 캡 픽업입니다. 16살짜리 청소년이 처음 운전하는 차를 가장 기본적인 차로 줘서 차를 속속들이 잘 알게 하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잔뜩 태우고 다니지 못하니까 위험한 행동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친구들이 흔히 모는 좋은 새 차들에 비해서 비록 14년된 차지만 트럭이라는 점이 특별한 캐릭터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큰 아이가 트럭을 몰고 다닐 때 사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기회가 되는 대로 트럭을 먼저 끌고 나갔습니다. 낡은 픽업트럭이 괜히 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집에 차를 하나 줄여야 할 것 같아서 픽업트럭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훨씬 더 유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아주 불편할 상황이 아니면 주로 픽업트럭을 가지고 다닙니다. 멀리 린치버그를 다녀 올 때도 이제는 16년 나이 든 픽업트럭에 바퀴만 새로 끼고 픽업트럭으로 다녀왔습니다.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많이 누립니다.

78년에 74년형 중고 기아 브리사를 구입해서 학교에 끌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19살 대학생 시절, 아무리 씻어도 운전하고 나면 손에 엔진오일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중고차 자가 운전의 향수가 떠오릅니다.

우선 연료비가 가장 적게 듭니다. 한번 나갔다 오면 몇 갤런이 없어지고 쉽게 10달러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작은 4기통 엔진에 가벼운 차체를 가진 픽업트럭은 유류비 부담을 상당히 덜어 줍니다.

트럭을 몰면 뒷창이 바로 머리 뒤에 있어서 마치 작은 오픈카를 탄 것 같습니다. 에어컨디셔너를 켜는 대신에 주로 창문을 조금 내리고 달리는데 바람에 머리가 날리면 오토바이 탄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매뉴얼 5 스피드 픽업트럭을 몰면 길의 작은 굴곡과 작은 돌도 다 느낄 수 있어서 진짜 차를 모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16년 되다 보니까 이 구석 저 구석 망가지고 깨져서 손을 봐야 할 곳이 생기고 손에 기름 묻혀 가면서 고치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때로는 길에 가다가 서기도 합니다. 큰 아이가 몰 때도 꼭 아빠가 몰고 나가면 두 번씩 큰 길에서 서 버려서 도움을 청하고 차를 끌고 오곤 했습니다. 그런 일을 거치면서 차에 더 정이 갑니다. 그래도 카스테레오는 꽤 쓸 만한 것을 넣어서 잔뜩 소리 키워 몰고 다니는 재미도 있습니다.

승용차나 미니밴을 가지고 다니다가 픽업트럭을 몰게 되면 젊잖게 무게 잡는 목사가 아니라 지금 바삐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의 마음가짐이 생깁니다. 거친 아스팔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자세가 생깁니다. 지금은 일할 때라고, 지금 일터로 가는 중이라고, 잠시 후에 도착할 곳은 분주히 일을 해야 하는 곳이라고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즐거움이 하나 남았습니다. 92년형 픽업트럭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엔진출력이 작은 매뉴얼 시프트다 보니까 신호등에서 출발할 때마다 남들보다 늦습니다. 비보호 좌회전을 할 때 멀리까지 차가 비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좌회전을 해서는 안됩니다. 종종 뒤에서 기다리는 차에서 빵빵 거리는 소리가 나도 겸손히 자신의 호스파워를 알고 기다려야 합니다.

시속 60마일을 넘으면 속도계를 보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트럭 전체가 떨리는 느낌이 확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늘 1차선을 멀리하고 오른쪽 차선을 찾게 되어서 상석에 앉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게 됩니다.

출애급기 33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행진을 하기 전에 단장품을 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픽업트럭을 몰고 동네를 돌아 다니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행군과 승리를 기대하면서 내 인생의 단장품을 제해 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닛산 픽업 트럭은 제게 거룩한 행복을 안겨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