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 Mark H. Creech
Rev. Mark H. Creech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욕설이 일상이 된 시대, ‘F-word’는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When vulgarity becomes ordinary: What the F-word says about us) 9월 8일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F-word’를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 단어는 이제 거의 어디에서나 들린다. TV와 영화, 음악과 팟캐스트, 소셜미디어, 스포츠 경기, 직장과 식당은 물론 평범한 일상 대화에서도 너무나 쉽게 등장한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 앞에서 입에 담는 것 자체를 꺼렸을 이들이 이제는 별다른 거리낌 없이, 때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단어를 내뱉는다.

그 단어는 바로 ‘f@#k’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단어는 영어에서 가장 노골적이고 저속한 표현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한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사용 자체가 금기시되던 이 단어가 오늘날에는 일상적인 대화의 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이 단어 자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정확한 기원에는 논란이 있지만, 어원학자들은 대체로 성관계나 번식과 관련된 게르만계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흔히 떠도는 “Fornication Under Consent of the King”, 즉 ‘왕의 허가 아래 이루어지는 간음’이라는 문구의 약자에서 생겨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이 단어는 사회적으로 강한 금기의 대상이었다. 점잖은 작가와 출판인, 방송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사용을 피했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은 자신의 유명한 영어사전에 이 단어를 싣지 않았고, 오랫동안 주요 영어사전에서도 사실상 배제돼 있었다.

바로 이런 금기가 이 단어에 강력한 수사적 힘을 부여했다.

강한 욕설은 듣는 사람을 순간적으로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같은 표현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던 말이 점차 익숙해지고, 결국 그 말이 지녔던 충격마저 사라진다. F-word가 바로 그런 변화를 겪었다.

충격적인 욕설에서 일상적인 추임새로

한때 주로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던 이 단어는 이제 사실상 ‘만능 단어’가 됐다. 사람들은 화가 날 때도, 기쁠 때도, 놀랐을 때도, 두려울 때도 사용한다. 감탄과 혐오, 흥분과 좌절을 표현할 때도 쓰고, 동사와 명사, 모욕적인 표현과 감탄사, 강조어로까지 자유롭게 활용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의 문장의 마침표나 쉼표처럼 사용될 정도다.

그렇다면 F-word의 역사는 단순히 하나의 성적인 표현이 욕설로 변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한때 상스럽다고 여겨졌던 언어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어가 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리고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한 사회가 더 이상 상스러운 언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될 때, 그 문화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은 종종 이 문제에 대해 “성경 어디에 이 특정 영어 단어를 쓰지 말라고 되어 있느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그런 접근은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성경은 금지된 단어들의 목록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어떤 성격의 말을 해야 하며, 우리의 언어가 어떤 사람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반복해서 다룬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엡 4:29).

또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엡 5:4)라고 권면하고, 골로새 교인들에게는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버리라고 명한다(골 3:8).

성경의 관심은 단순히 특정 단어를 금지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입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가 ‘하지 않는 말’이 증언이 될 때

TV 프로그램 ‘덕 다이너스티(Duck Dynasty)’로 유명했던 덕 커맨더(Duck Commander) 설립자 고(故) 필 로버트슨(Phil Robertson)은 촬영팀의 한 오디오 담당자와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직원은 촬영 기간 내내 마이크를 통해 로버트슨 가족의 대화를 오랫동안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로버트슨에게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가족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는 것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왜 그런지 궁금해했고, 그 질문은 로버트슨이 자신의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로버트슨에 따르면 이 대화는 결국 그 사람이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이야기는 생각해볼 만하다. 욕설이 너무 흔한 문화 속에서는 오히려 욕설을 하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띌 수 있다. 기독교인이 무엇을 말하느냐뿐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도 때로는 하나의 증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욕설을 사용하지 않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

결국 언어는 마음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물론 누군가 무심코 거친 말을 한 번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반대로 욕설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욕설은 하지 않으면서 거짓말하고 험담하며, 비방하고 자랑하며, 말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상처 입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언어 습관은 우리 마음의 상태에 대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다.

말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드러낸다

입에서 거칠고 저속한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면, 단순히 그 단어를 조금 더 점잖은 표현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 먼저 자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 쉽게 분노하는가. 왜 타인을 모욕해야 마음이 풀리는가. 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가장 거친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왜 평범한 대화에서도 상스러운 표현 없이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느끼는가?

F-word가 오늘날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이런 질문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본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이제는 분노와 경멸, 조롱, 흥분, 좌절, 놀라움은 물론 단순한 강조까지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인간의 성과 관련된 가장 노골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가 거의 모든 감정을 묘사하는 만능어로 변해버린 셈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언어적 해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반대로 본다. 풍부한 언어를 가진 사람은 외설적인 표현 없이도 분노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천박함 없이 열정을 표현할 수 있고,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강하게 반대할 수 있으며, 상스러움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재미있는 말을 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욕설이 거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떠맡았다면 그것은 언어가 풍부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가 가난해진 것에 가깝다.

상스러움이 평범해질 때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이런 언어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상스러운 표현이 특별히 충격적이지 않고, 별다른 의미도 없이 습관처럼 반복되는 단계에 이르면 문제는 단순한 언어학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문화와 마음의 문제다. 예수님은 입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며 살아가는지를 어느 정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분노와 조롱, 성적인 외설과 저속한 표현을 소비한다면 그것들이 어느 순간 우리의 언어 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질문은 단순히 “이 단어를 말해도 되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내 말은 다른 사람을 세우고 있는가, 무너뜨리고 있는가, 내가 입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은혜와 진실, 절제와 사랑을 느끼는가, 아니면 분노와 경멸, 조롱과 천박함을 느끼는가?"

필요한 것은 단순한 언어 순화가 아니다

만약 거친 욕설이 자신의 일상적인 언어가 되어버렸다면, 욕을 할 때마다 저금통에 동전을 넣는 식의 행동 교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습관을 고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어떤 말을 자주 사용하는지 의식하고, 자신이 소비하는 미디어와 대화를 돌아보며, 더 좋은 언어를 선택하도록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더 깊은 곳을 바라본다. 문제는 입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밖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단순히 상스러운 단어 몇 개를 입에서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자체가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분노와 교만, 경멸과 음란함을 다루시며, 그 결과 우리의 언어 역시 변화되도록 내어드리는 일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단순히 “욕하지 말라”고 말하는 종교가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말이 달라지기 전에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변화를 ‘거듭남’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