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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도 아닌 이방인인 고레스왕이 그 원년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그가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린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 하나님께서 볼 때 준비된 자에게 말씀을 하시고 그를 통해서 주의 일을 하신다.
광야의 삶을 통해서 준비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제사장 엘리가 있었지만 그 옆의 작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성경에는 ‘이스라엘아 들을지어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쉐마’라고 한다. 여기서 듣는 것은 단순히 스쳐 지나듯이 듣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것을 말한다. 주의를 기울여서. 관심을 기울여서. 삼가 조심하면서 준비하며 듣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지식의 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혹은 우리 삶의 길을 내고 인도하는 인도자적인 차원으로 보면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생명이 결부된 말씀이다. 그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때가 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쉐마 CBMC 회원들이 되길 바란다. 그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CBMC 모임이 되길 바란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목회를 하다보면 이런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정말 기대하고 의지했던 것들은 잘 안된다.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주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도 주의 일을 하시고 합력해서 일하게 하신다. 하지만 구별해서 봐야 할 것은 어찌보면 고레스왕은 일회용으로 쓰임받았다. 현재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신앙 생활은 항상 현재적이어야 한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과거에 쓰임받았고 미래에 쓰임받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계속 쓰임받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보라. 그는 쓰임받았지만 나중에 버림받았다. 사도 바울은 삼가 두렵게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 지금 성화의 과정을 가고 있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유다 사람은 다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것도 정복한 원년에. 보통 전쟁에서 이기면, 할 수 있으면 더 챙길려고 하고 할 수 있으면 더 확장할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감동케 하시니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예된 자들, 포로된 자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올라가서 주님의 전을 지으라고.
그러나 우리가 쓰임받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의 의지로, 자기의 열심으로, 자기의 의를 근거로 해서 쓰임받게 될 때는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목적은 다 같은 것 같은데 그 동기가 잘 못 되어 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고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 둘 중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 주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 것.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 6절. 고레스왕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쓰임받는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이렇게 계속 쓰임받는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꼭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만 그것에 의존하지는 않으신다. 이 사람이 못하면 저 사람을 들어서 또 주의 일을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항상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으로 자기 삶을 변혁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주께서 지금 들어 쓰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라고 작은 일을 하든 큰 일을 하든 모든 CBMC회원들이 함께 일어나서 하길 바라고 기쁨과 감사로 그 사역을 감당하길 축원합니다.
선민도 아닌 이방인인 고레스왕이 그 원년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그가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린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 하나님께서 볼 때 준비된 자에게 말씀을 하시고 그를 통해서 주의 일을 하신다.
광야의 삶을 통해서 준비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제사장 엘리가 있었지만 그 옆의 작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성경에는 ‘이스라엘아 들을지어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쉐마’라고 한다. 여기서 듣는 것은 단순히 스쳐 지나듯이 듣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것을 말한다. 주의를 기울여서. 관심을 기울여서. 삼가 조심하면서 준비하며 듣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지식의 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 혹은 우리 삶의 길을 내고 인도하는 인도자적인 차원으로 보면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생명이 결부된 말씀이다. 그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때가 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쉐마 CBMC 회원들이 되길 바란다. 그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CBMC 모임이 되길 바란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목회를 하다보면 이런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정말 기대하고 의지했던 것들은 잘 안된다.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주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을 통해서도 주의 일을 하시고 합력해서 일하게 하신다. 하지만 구별해서 봐야 할 것은 어찌보면 고레스왕은 일회용으로 쓰임받았다. 현재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신앙 생활은 항상 현재적이어야 한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과거에 쓰임받았고 미래에 쓰임받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쓰임받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계속 쓰임받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보라. 그는 쓰임받았지만 나중에 버림받았다. 사도 바울은 삼가 두렵게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 지금 성화의 과정을 가고 있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유다 사람은 다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였다. 그것도 정복한 원년에. 보통 전쟁에서 이기면, 할 수 있으면 더 챙길려고 하고 할 수 있으면 더 확장할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감동케 하시니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예된 자들, 포로된 자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올라가서 주님의 전을 지으라고.
그러나 우리가 쓰임받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의 의지로, 자기의 열심으로, 자기의 의를 근거로 해서 쓰임받게 될 때는 항상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목적은 다 같은 것 같은데 그 동기가 잘 못 되어 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고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 둘 중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 주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 것.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5절, 6절. 고레스왕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쓰임받는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이렇게 계속 쓰임받는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꼭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만 그것에 의존하지는 않으신다. 이 사람이 못하면 저 사람을 들어서 또 주의 일을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항상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으로 자기 삶을 변혁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주께서 지금 들어 쓰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라고 작은 일을 하든 큰 일을 하든 모든 CBMC회원들이 함께 일어나서 하길 바라고 기쁨과 감사로 그 사역을 감당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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