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기독교 순교자들 뒤에는 언제나 제국이 있었다'(The empire behind every Christian martyr)를 9일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필자는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필자의 매일 성경 읽기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신약성경 마태복음부터 시작해 요한계시록까지 쭉 읽고 나면 다시 마태복음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읽는다. 물론 구약도 함께 읽는다.
필자는 NASB 번역의 맥아더 스터디 바이블(MacArthur Study Bible)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맥아더의 주석은 대부분의 스터디 바이블이 침묵하는 어려운 본문들을 피하지 않고 설명한다. 둘째, 필자는 문자적 번역에 가까운 형식 대응(formal equivalence) 번역 철학을 선호하는데, NASB와 ESV 같은 번역본이 그 방식을 비교적 일관되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필자는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을 읽고 있었다. 이 두 장은 오래전부터 필자의 관심을 끌어 온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큰 바벨론"(계 17:5)의 몰락이다. 이 바벨론은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묘사된다.
요한계시록 17장은 요한의 시대뿐 아니라 인류의 타락 이후 계속되어 온 거대한 영적 갈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갈등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이어지는 18장은 바벨론의 상업 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묘사한다. 더 나아가 그것에 의존해 온 세상의 체제 전체의 붕괴를 보여 준다.
이 두 장은 함께 반기독교적 질서 전체의 최종 패배를 선포한다. 그리고 이 환상이 곧바로 요한계시록 19장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다시 읽는 동안 특히 두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는 계시록 17장 6절이다. 거기서 "신비한 바벨론"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어서 18장 24절에는 더욱 섬뜩한 말씀이 나온다: "그 안에서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발견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강렬하다. 성경은 모든 기독교 순교자 뒤에 서 있는 영적 제국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 때문에 극심한 박해를 겪은 모든 사람들 뒤에는 동일한 영적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나이지리아에서 신자들을 죽이는 AK-47 방아쇠를 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인의 생명을 빼앗는 칼과 무기를 움직이는 배후의 힘은 바로 바벨탑에서 시작된 고대의 영적 반역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 이름을 "바벨론"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놀라운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은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선언한다.
모든 반역의 근원
성경에 따르면 바벨론은 단지 미래의 도시나 과거의 제국이 아니다. 바벨론은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는 모든 세력의 영적 배후다.
이 사실은 영적 폭정의 본질, 인류 역사의 흐름, 그리고 복음 중심에 놓여 있는 영적 전쟁에 대해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화적 갈등에도 깊은 의미를 던진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상징이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조직된 인류 문명의 상징이다. 시간과 시대를 넘어 존재하는 초역사적 악의 영적 세력이다.
그 이야기는 바벨탑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인간의 교만은 하나님의 한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세계를 세우려 했다. 이후 그 정신은 하나님보다 정치 권력을 높였던 느부갓네살의 제국에서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바벨론이 열방을 취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마지막 세계 체제를 상징한다.
이 체제의 영적 충성 대상은 사탄이다. 바벨론은 단순히 여러 무신론 국가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의 원형이 되는 세력이다.
어떤 사회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권력을 무기화할 때, 그것은 바벨론이 새로운 얼굴을 쓰고 등장한 것이다. 의로운 사람들이 악인들의 손에 고통을 당할 때마다 바벨론은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침묵당하고, 추방되거나 조롱당할 때마다 바벨론은 그곳에 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성경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순교가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각각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도성과 적대적인 인간의 도성 사이의 거대한 갈등 이야기의 일부다. 바벨론을 성도들의 살해자로 묘사한다는 것은 박해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 뒤에는 영적 설계자가 있다. 이 세력은 국가 권력이 기독교 신앙을 지우려 하는 정권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비난하는 문화 속에서도 번성한다.
예술, 학문, 기술 영역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을 창조주보다 높일 때 그것은 살아 움직인다. 또한 사회적 조롱, 도덕적 가치의 전도, 성경적 윤리를 버리도록 압박하는 문화 속에서도 스며든다. 그리고 결국 기독교 신앙을 "편협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규정하며 폭력으로까지 나아간다.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의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건한 사람들을 향한 박해의 배후에 있는 영적 세력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순교자 뒤에 있는 제국은 언제나 깨어 있으며, 시대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어 나타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모든 박해는 우주적 이야기의 일부이며, 문화적 적대감 역시 영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벨론이 압도적으로 보일 때에도 신실함을 지켜야 하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라"(계 18:4).
요한계시록이 바벨론의 정체를 드러내는 이유는 교회를 두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다. 폭력, 사회적 배제, 혹은 유혹의 형태로 나타나는 박해에는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다. 그리고 그 세력에는 정해진 결말이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부르심은 분명하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그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