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흉터 하나쯤은 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상처가 너무 깊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하고, 타인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마음의 병을 고쳐보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늘 한계에 부딪히곤 합니다. 진정한 영혼의 회복은 내가 무언가를 해내는 성취가 아니라, 아무런 자격 없는 나에게 부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아들일 때 시작됩니다.
이 놀라운 치유의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 있습니다. 연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로드리게스 신부는 박해받는 일본 신도들을 돕기 위해 일본에 잠입하지만, 결국 체포되고 처참한 고문을 받게 됩니다. 배교를 강요당하는 상황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침묵에 절망하는데요. 그러나 신앙을 버려야만 고통받는 신도들을 살릴 수 있겠다는 협박 앞에, 그는 결국 배교의 의지로 성경과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밟고 지나가게 됩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사제가 가장 비참하게 무너진 순간, 그는 자신을 정죄하는 대신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데요.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세상에 왔고, 밟히기 위해 이 그림을 존재하게 했다." 배교라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과 실패의 상처 속에서, 로드리게스 자신의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추한 모습까지도 이미 안고 계셨던 하나님의 압도적인 사랑을 대면합니다. 그 감당할 수 없는 은혜는 신부로서의 자부심이 깨진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망가진 영혼을 이전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치유하고 회복시켰습니다.
우리의 회복도 이와 같습니다. 상처는 감춘다고 나아지지 않고, 완벽해지려 애쓴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연약함과 실패를 정직하게 내어놓을 때,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가 채우기 시작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흘린 눈물보다 깊고, 우리가 지은 죄보다 넓으며, 우리가 입은 상처보다 강합니다. 그 거룩한 은혜의 파도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비난과 정죄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상처 입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이 여러분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의 신비 안에서 온전한 회복을 누리는 복된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