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리처드 랜드 박사의 기고글인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So, what does a Christian marriage look like?)를 최근 게재했다.
랜드 박사는 2013년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남부 복음주의 신학교(Southern Evangelical Seminary)의 총장으로 재직했으며 2011년부터 CP의 편집장 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지난주 필자는 'Doug Wilson의 결혼관은 신성모독이다'라는 칼럼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 25절에서 명한 말씀 - "그리스도인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 - 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 후 많은 독자들이 이 포괄적인 사도적 명령의 의미를 더 자세히 다뤄 달라는 요청을 보내왔다. 하나님은 결혼 제도를 매우 거룩하고 특별한 것으로 여기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과 선택된 백성(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결혼을 비유로 사용하셨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죽으셨다.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생명까지도 희생할 각오로 섬겨야 한다.
바울은 또한 "남편은 자기 자신처럼 아내를 사랑하라"(에베소서 5:33)고 가르친다. 그는 이때 '사랑'을 설명하며 '아가페(agap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가페는 도덕적으로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랑"이다.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랑이다.
예수께서도 우리가 여전히 죄인으로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 (로마서 5:10)
아가페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다(갈라디아서 5:22). 타락한 인간에게는 이러한 사랑이 본성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성령이 내주하시는 새 생명을 얻은 자만이, 그리스도인 남편에게 명령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4-13절에서 아가페 사랑의 의미를 신적 영감으로 풀어놓았다.
아가페 사랑은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분노하거나 교만하지 않는다. 그 정의에 비추어 볼 때, 아가페 사랑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으니 내 말에 복종해야 해." "조용히 해, 하나님이 나에게 통제권을 주셨으니까." 아가페로 움직이는 남편은 인내심이 있고, 언제나 아내의 '좋음'을 구한다.
그리고 아가페 사랑은 '영원하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전 13:8). 즉, 아가페로 사랑하는 남편은 결코 아내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를 깊이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녀를 알아가고, 그녀의 개별적인 필요를 세심히 채워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중 일부를 내려놓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골프나 사냥, 낚시를 덜 하는 일이다.) 또한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처가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거나, 인테리어 전시회에 동행하는 일 같은 것이다.)
필자 역시 결혼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한다"는 말씀을 실천하려 애써왔다. 그중 하나는 운전 속도를 낮추는 일이다. 아내가 빠른 속도로 달릴 때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내가 함께 있을 때면 고속도로의 오른쪽 차선을 따라 천천히 달린다. 시간이 더 걸리고 다른 차들이 추월해도, 아내가 편안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내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다만 "빠르게 달리면 너무 불안해"라고 말할 뿐이다. 필자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며 함께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짜증을 내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종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할 때가 있다.
필자의 아내는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필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축구나 야구 경기를 함께 본다. 부부는 정직하되 친절하게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다. 그것은 결혼의 친밀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축복이다. 예를 들어, 오래전 필자와 아내가 백화점에 갔을 때, 필자는 마음에 드는 스포츠 재킷을 발견했다. 판매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말했다. "가격도 안 물어보고 사겠다고 하다니 믿기지 않아요."
필자는 대답했다. "나는 어릴 적 늘 '얼마야?' '살 수 있을까?'를 물어야 했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었죠. 당신이나 아이들이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얼마야?'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아도 되게 하려고 말이에요." 그러자 아내는 미소 지으며 "그렇다면 알겠어요, 사랑해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 다른 성향 속에서 균형을 이루어간다.
하나님은 종종 서로 반대 성향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조화를 이루게 하신다. 필자는 물건을 모으는 성향이고, 아내는 정리정돈을 좋아한다. 이로 인해 종종 '토론'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또한 함께 자라가는 과정이다. 또한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부부가 함께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놀랍고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깊게 만들어 준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혼을 주신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구원의 은혜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결혼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결혼한 지 54년이 되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 남성과 여성에게 결혼을 기꺼이 권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결혼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복된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