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중국 칭화대 석사학위 논문에 '탈북자'를 '반도자(叛逃者)'로 표현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목숨을 걸고 사지(死地)를 탈출한 국민을 '배반자', '도망자'로 해석될 수 있는 말로 지칭할 정도로 북한 인권에 편향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과연 국무총리직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010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약 10개월간 중국 칭화대에서 법학석사 과정을 이수했다. 야당 소속의 인사청문위원들은 김 후보자가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을 하는 기간에 어떻게 중국에 가서 석사학위 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는지를 놓고 연일 집중포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김 후보자의 칭화대 석사학위 논문 내용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한국과 미국, 중국 등이 각각 어떤 입장인지를 고찰하는 내용인데 논문 제목과 내용 여러 곳에 '탈북자' 대신 '북한에서 도망간 사람'이란 뜻의 '도북자(逃北者)', '배반하고 도망간 사람'이란 뜻의 '반도자(叛逃者)'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 거다.
김 후보자는 논문 제목은 물론 논문 첫머리 중국어본 요약본에서도 16차례나 '도북자'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논문 마지막 '감사의 글'에 "북조선 '반도자'의 법률 지위에 대한 관방의 입장'을 제공했다"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논문을 쓴 사람이 정말 한국의 정치인이 맞는지, 북한의 고위 관리가 쓴 글이 아닌지 헷갈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탈북자'라는 용어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는 표현이다. 그런데 '탈북자'라는 공인된 용어 대신 북한 당국자가 쓸 법한 '도북자'나 '반도자'라는 단어를 학위 논문에 쓴 사람이 국회의원, 여당의 최고위원이자 이재명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지명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탈북자'에게 그런 공격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이라면 북한 주민들이 겪는 혹독한 인권 상황에 아예 무지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겠나.
국민의힘은 지난 21일 원내대변인 논평에서 북한 탈북민을 '배신자'로 표현한 김 후보자에게 정중한 사과를 요구했다. 야당 청문위원들도 "김 후보자가 과연 누구 편인지, 탈북자들이 무엇을 배반했다는 것인지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계도 김 후보자의 탈북민 인식에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24일 발표한 논평에서 '탈북민'이란 용어는 "북한의 생지옥 같은 체제를 벗어나 탈출한 사람들을 지칭한다"며 김 의원이 석사학위 논문에 쓴 '도북자'라는 표현에 대해 북한 또는 북한과 혈맹인 중국 입장이라면 몰라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그런 표현을 써선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언론회는 이어 "세계 최악의 인권 박해국인 북한을 탈출했던지, 혹은 도망했던지 같은 의미다. 문제는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라며 "정치가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 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바로 잡는 것이 정도"라고 했다.
김 후보자가 이 논문을 쓸 당시인 2010년에 우리나라에 입국한 탈북민은 2,402명으로 집계됐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3만4352명에 달한다. 이들은 북한에서 살 때부터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다만 탈북민은 3대 독재 체제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내놓고 북한을 탈출한 아픔과 고통을 안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다른 점이다. 그런 국민을 향해 굳이 '도북자', '반도자'로 불러야만 했을까.
그런데 사실 김 후보자의 과거 학생 운동권 전력을 감안하면 이런 표현은 그리 놀랄 일도, 새로운 사실도 아니라고 본다. 과거 북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주사파' 학생 운동권에선 북한을 진정한 조국으로 추앙하고 탈북자를 '배신자' 또는 '변절자'로 부르는 일이 예사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을 밀입북해 북한에서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임수경 씨의 막말 사건이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 의원 신분의 임수경 씨는 탈북자 출신 대학생에게 "어디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이 굴러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개기는 거야?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라고 폭언을 퍼부어 말썽이 됐다.
또 최근엔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탈북민 출신의 국민의 힘 박충권 의원에게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하다 보니 민주주의 원칙이 안 보이나"고 하는 등 탈북민을 비하하는 투로 발언해 논란을 샀다.
'탈북자'는 '변절자'니까 대한민국에서 숨죽이고 살라는 식의 폭언이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그가 여전히 북한을 추종하는 '주사파' 운동권 의식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현역 의원이 동료의원의 출신 성분을 깔보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잠재된 천박한 우월의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반인륜적 고문과 처형 등 인권 탄압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성경을 소지했다고, 남한 노래를 유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개 총살형에 처하는 극악한 반인륜적 인권 상황을 국회의원 정도의 신분이라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답게 살아 보겠다고 모든 걸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천신만고 끝에 대한민국에 와 고작 '도북자' '반도자' '변절자'라는 소릴 들어야 하겠는가. 이런 용어는 피치 못해 북한을 떠나온 수많은 탈북민은 물론 김씨 3대 세습으로 인권과 경제적 도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가 될 것이다. 일반인도 안 쓰는 이런 혐오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이 국정에서 민의 상처를 보듬기는커녕 도지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