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이어)
그러다가 아직도 자기 말을 표기할 수 없는 언어가 많다는 것과 그들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쉽게 대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부족이 많이 존재한다는 게 온당치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성경번역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개인 차원에서 성경을 연구해 온 경험이 성경번역을 위한 훈련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성경 본문 해석의 틀을 큰 문맥이라는 틀에서 접근하는 법을 배워 내 개인 성경 연구에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나의 성경 연구에 깊이가 느껴지더군요.
이런 훈련의 도움을 받는 성경 연구는 성경번역을 넘어서 소그룹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82년에 성경번역 훈련을 위해 달라스로 간 나와 내 식구는 한 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교회의 구성원 30여 명 중 한 사람만 빼고는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교제를 위한 모임이었지요. 그런 모임에서 학생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출판한 교재로는 성경공부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했던 대로 주말에 성경 연구를 한 것을 토대로 나 나름의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서 사용했지요. 그랬더니,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교재인데도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더니, 20분이면 끝냈던 것을 2시간 가까이 서로 토론하는 일이 벌어지더군요. 이렇게 2년 정도 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식구들을 위해 성경공부 교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계속 성경을 연구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성경번역 교육을 마치고 선교지인 파푸아뉴기니로 가기 전까지 약 2년을 한국에 있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만난 몇몇 그룹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대문 새벽시장과 도깨비시장, 그리고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가시는 목사님이 그동안 양육했던 청년들을 돌봐달라며 나에게 부탁한 그룹을 만났습니다. 또한 서초동 근역에 자리 잡은 몇몇 가정도 소개받았지요. 나는 이 그룹을 각각 따로 만나 성경공부를 인도했습니다. 새벽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오전 10시 쯤이면 가게를 닫고서 나와 함께 성경공부를 했는데, 장소를 찾기가 어려우면, 한두 시간 빌린 근처 여관방에서 십여 명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한 독립교회 담임목사의 독단과 횡포를 견디다 못해 그 교회를 떠난 분들을 만나게 되어 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지요. 인생 연륜으로 볼 때 내가 한참 모자란 형편이었습니다. 장로와 안수집사 직분을 가진 그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계신 장로님과 안수집사님들에 비하여 나이로나 사회 경험으로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고 미숙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보다 한 가지 나은 것이 있다면 그건 성경에 관한 깨달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세상 경험 속에서 나오는 지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지는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알려드릴 테니 여러분은 그 말씀에 순종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시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나의 당돌한 질문에, 여섯 분의 어르신들이 모두 순종하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나는 서른 살이었고, 그분들은 모두 오십 세 이상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에게 함께 성경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성경공부를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다양한 그룹과 인도하면서 나의 배움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성경공공부를 하다가, 선교지로 떠나야 하는 시기가 가까이 오자, “이제는 각자 교회를 찾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러지 말고, 함께 모여서 교회를 시작하자”는 얘기가 오갔습니다. 마침 교회를 섬길 신실한 목회자를 만나게 되어, 그분에게 맡기고 나는 파푸아뉴기니로 떠났지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교회가 소그룹 성경공부를 통해서 시작된 겁니다.
한국을 떠나 파푸아뉴기니에서도 소그룹 성경공부는 나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선교부에서 배정해준 과하티케 부족의 형제들과도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천주교 교인이었던 그들은 무늬만 천주교였지, 속은 토착신앙에 완전히 물들어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이 나를 찾아와서는, “주일 미사를 드릴 때, 자기들이 하는 것은 미사 안내서에 나온 그대로 따라 하는 것뿐이다. 설교 내용도 그대로 읽으면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쳐줄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왔다”며 좋아하더군요. 이들의 말을 듣고서 나는 이 부족으로 우리를 주님께서 이끌어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공용어로 된 성경으로 소그룹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성경공부를 통해, 그들이 주일 미사를 드릴 때 주어진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성경공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께 성경 본문을 가지고 나누면 마치 크게 깨달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하더군요. 그러나, 막상 주일 미사에서 그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때면, 완전히 엉뚱한 얘기를 하는 바람에 당황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요. 하지만 지적하기보다는 계속 격려하면서 성경공부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들도 스스로 설교 본문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스스로 읽다가 결국에는 마리아에 관한 문제로 천주교 지도자들과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천주교회에서 축출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쫒겨 나온 자들이 과하티케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나온 자들이 천주교에 남아있는 자들과 등을 돌리지 않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천주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성경 읽기를 도와 주기도 하고, 뜻을 풀어서 알려주니, 자연스럽게 두 그룹 사이에 있던 경계심이 사라져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와 함께 성경번역에 참여했던 현지 형제들은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매주 성경 말씀을 가지고 씨름을 하던 이 형제들을 통해 하나님은 어둠에 있던 자들을 빛으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루카스라는 형제는 무당이었다가 나와 함께 요한복음 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을 만났고, 나피안이라는 형제는 초등학교 선생이었는데, 나와 함께 로마서 공부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들 모두 성경번역에 헌신했고, 번역된 성경이 완성된 후 그들을 포함한 여섯 명의 일꾼들이 다른 부족의 성경번역을 위해 헌신해 지금까지 사역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주신 성경공부 은사를 활용하셔서 이곳 과하티케 부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도록 하셨습니다. 그곳에서도 나는 교회 개척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성경공부를 통해서 현지 교회가 현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네요.
그리고 달라스에 왔을 때, 나를 찾아온 네 가정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다가, 나눔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성경공부 은사를 활용하셨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목회를 마무리한 후에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성경공부 은사를 활용하여 하나님을 드러내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