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를 하던 시절 가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권위적이셨던 아버지를 향한 반항심 때문에 무작정 짐을 싸서 나왔던 것입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이유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남겼던 것 같습니다. "제 힘으로 대학에 들어간 후 들어오겠습니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집에서 나오자 마자 서울 어딘 가에서 일을 하며 밤에는 학원에 나가 공부도 하고 있었어야 할 텐데, 두 달이 되도록 그런 아르바이트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방을 구하느라 가지고 있던 돈은 다 떨어지고, 이제는 당장 뭘 먹어야 할 지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곰팡이가 핀 김치를 물에 씻어 먹었습니다. 쌀이 좀 남아 있어서 밥은 지어 먹을 수 있었는데, 반찬을 구할 돈이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곰팡이가 핀 김치를 물에 씻어서 밥에 얹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으며 눈물이 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방산시장'에 있던 순대국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는 한 달에 10만원...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손님들의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배달도 가야하는 중노동이었습니다. 아무리 80년대 중반이라 해도 임금 착취였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거기서 일을 했던 이유는, 비교적 한가한 오후에 3시간 정도 학원에 갈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첫 월급을 타는 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것 저것 제하고 학원비도 내야 해서 좋은 것은 사드릴 수 없었지만, 저 때문에 맘 고생하시는 어머님께 밥 한끼라도 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울면을 시켜놓고 우셨습니다. 괜한 고생 말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도 예전 같지 않으니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입으로 한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일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가출 6개월이 지나면서, 열악한 환경 탓에 몸에 이상이 왔고, 일하면서 건달과 시비가 붙어서 연락을 받고 오신 부모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어머니는 제게 저녁을 차려 주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한창 식욕이 왕성하던 시절, 순대국집 아주머니는 제게 그 흔한 순대국 한 그릇도 말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손님이 남기고 간 순대를 몇 점 집어먹어도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찬 바람이 부는 초 겨울 밤 보일러가 켜진 따뜻한 제 방에서 어머니의 밥상을 받으니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성경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눅 15장 탕자의 이야기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버지가 저를 부르셨습니다. '이젠 죽었구나'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집을 나간 놈은 또 나간다더라. 나는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물이 났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기다리셨던 것처럼,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기다려주어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참아주어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를 기다리셨던 예수께서 우리에게 서로 기다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약하다고 버리지 말고, 악하다고 쳐내지 말고 서로 참아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기다려주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