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전 세계는 백신 전쟁을 치렀다. 백신을 개발하거나 확보하는 능력이 국가의 능력으로 평가를 받는 세상이 되었다.
지구촌 전체가 백신을 개발하거나, 개발된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였다. 백신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적인 활동을 활성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이기에, 각국 정부는 최고의 정보 기관까지 동원하여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확보를 둘러싸고 유럽연합과 영국은 극한의 대립을 했다. 영국이 아스트라제네카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하자,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가 영국으로의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유럽연합은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았는데, 인구 비례에 따라 백신을 나누도록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는 동의할수 없다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방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야말로 백신 전쟁이 시작되었고, 향후 몇 년간 백신치료제의 개발과 함께 백신 개발은 국가들마다 최우선 핵심 정책으로 삼아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되었다.
백신 개발의 선두주자인 미국을 비롯해 영국, 중국, 러시아가 개발한 백신은 대락 7종에 이른다. 서방 선진국가가 개발한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등이다. 나머지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 와 시노백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개발한 백신이다.
필자가 목회하는 미국은 화이자, 모더나와 얀센을 승인하여 백신을 맞았지만, 지금은 모더나와 화이자 두종류가 백신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12세 이상의 모든 국민들은 언제든지 백신을 맞을 수 있을 만큼 백신을 확보해 놓았다. 지금은 전 국민 부스터 샷을 준비하고 있고, 의료진을 중심으로 3차 부스터 샷이 시작 되었다.
미국은 백신이 남아 돌지만, 백신 음모론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전 국민 중 접종률이 50%를 겨우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백신 확보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라들은 백신 확보를 위해 총성없는 전쟁을 진행 중이다. 이번 유엔 총회에 참여한 나라들은 저마다 백신 확보를 위해 국가 원수들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백신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러시아나 중국 백신을 도입하려는 나라는 드물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만든 스푸트니크 V와 시노백은 죽은 바이러스 입자를 이용해 인체의 면역계를 바이러스에 노출하여 효과를 얻어내는 불활성 백신의 종류로, 보관과 이동도 한결 수월하며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런데도 이 백신을 구입하려는 나라가 거의 없다.
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구입하기 쉽고, 이동과 보관도 자유로운 스푸트니크 V와 중국의 시노백을 마다하고 비싸고 구매 조건도 까다로운 모더나와 화이자를 구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 백신인 스푸트니크 V는 영국의 의학 저널인 랜싯(The Lancet) 에 임상 결과를 발표하고 국제적인 임상결과를 충족시켰는데도, 이를 구매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러시아 백신은 예방 효과 91%, 중증예방율 95% 이상을 기록하여 그 효과가 확실하게 입증되었는데도 러시아 백신을 꺼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신뢰다.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국가가 전 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국가적으로 공적인 신뢰를 주지 못했기에, 러시아와 중국에서 만들어진 백신을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일에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어떤 면에서 전 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다.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정치·경제·군사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다. 중국은 전 세계의 산업을 책임지고 있다. 중국인의 손을 거친 물건들이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백신과 같이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에 러시아와 중국은 공적 신뢰를 얻지 못했다. 국제적인 공적 신뢰는 단지 경제, 군사력의 우위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공적 신뢰는 지금까지 한 국가가 국제적인 문제 앞에서 보여준 문제 해결 능력과 함께 얼마나 투명하게 일을 진행하였는가에 있다.
투명성의 확보와 공정한 과정, 기회의 균등과 보장이 공적 신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물론 이런 공적 신뢰가 객관적인 수치로 나누어 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전 세계가 보아왔던 그 나라의 공적 시스템을 수십 년 간 경험한 경험치가 쌓여진 결과다.
미국과 영국의 백신을 신뢰하는 것은 그 나라의 공적 사회에 대해 신뢰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러시아와 중국의 백신은 백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결국 그 나라의 공적 신뢰에 대한 문제다.
이런 국가적 공적 신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공통된 교집합을 만들고, 그 교집합을 사회 전체가 수행해 나가면서 하나 하나 쌓아 올려야만 신뢰는 가치를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공적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왔다. 일제 시대 어려움 속에서 한국교회는 신앙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 요구가 무엇인지 원하는 교집합을 함께 만들고 시행해 왔다. 그 신뢰 위에 신앙의 삶을 실천했다.
한국전쟁으로 패허가 된 한국 사회에, 교회는 세상이 요구하는 공적 신뢰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고 교육에 참여하였다. 필요한 의료 시설을 지원하고 의료인들을 양성했다.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이웃들을 돌보며 공적 신회를 쌓아갔다.
하지만 신뢰가 무너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간 기초가 흔들려 위험하던 한국교회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그 신뢰의 기반이 이곳저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100년간 쌓아 올린 신뢰를 잃어버리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뢰의 가치는 기독교 신앙에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좋은 건물, 풍성한 물질, 목회자가 되겠다며 몰려드는 신학생 후보들, 휼륭한 교육을 받은 풍성한 평신도 인적자원과 같은 편리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신앙의 편리함이 주는 황홀함이 우리의 신뢰를 가장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었음을,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진리의 복음을 가지고 있어도 교회가 공적 신뢰를 잃었다면, 누구도 진리의 복음을 소유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진리의 복음을 전 세계에 공급하려면, 교회는 공적 신뢰를 우선 회복해야 한다.
신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신뢰는 신앙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 가치가 가장 과소평가되거나 평가절하된 것이 있다. 바로 공적 신뢰다.
스티브 코비는 <신뢰의 속도>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뢰의 문제를 지적했다.
"신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모든 관계, 소통, 업무, 프로젝트 사업, 그리고 우리가 관여하는 모든 노력을 떠받치는 동시에 그 질에 영향을준다. 또 매 순간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미래의 개인적, 직업적, 삶의 경로와 결과를 바꿔놓는다."(신뢰의 속도, 김영사, 33쪽).
한국교회가 다시 신뢰를 쌓고 회복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다. 신뢰가 회복되고 신뢰를 쌓아갈 때, 어떤 상황에서든 교회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부분을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전달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빠르고 확실할 것이다.
박종순 목사
제자들교회 , <열혈 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