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부터 비롯된 팬데믹 시대가 불러온 현상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분열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회적 분열의 현상 중에도 이념논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현실이다. 과거에도 보수와 진보계층 사이에 크고 작은 대립이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극단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별히 SNS를 이용한 그럴듯한 음모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가운데 극단적인 사회분열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분쟁의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미국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념과 사상의 논쟁이 자리를 잡는 데에는 신앙인들이 그 중심에 있다는 말이다. 자신이 믿는 이념이 절대화되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신앙으로 둔갑을 하는 것인가? 이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들이 원하는 소문이나 이론을 의심없이 받아드려서 각자의 신념을 더하고 신앙으로 포장해서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념이나 사상을 신앙으로 받아드림으로서 이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 합리화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주장들이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서 당을 짓고 분열을 이룰 때 그들이 속해있는 국가나 공동체가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이 처한 이념분쟁의 현주소
팬데믹 시즌을 맞이하여 표면화되고 있는 이념분쟁은 그 정점을 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많은 때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순응하며 협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를 맹목적으로 반대하고 비판하는 세력이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경우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우호적인 사람들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와 대척점에 있으면서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보다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세력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때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까지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념이나 사상만을 주장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원인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생각이 그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초 뉴스 미디어 '악시오스'에서 시행한 여론조사는 미국의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새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미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감염 확산 책임은 미접종자가 78.6%로 단연 1위를 나타내는 반면에 자신들에게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답한 미접종자는 고작 9.8%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백신 접종자들의 35.7%가 트럼프에게 확산 책임이 있다고 대답한 반면 미접종자들의 21.4%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대답을 했던 것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는데 사람은 누구나 불만이 생기면 비난의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백신을 맞음으로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일에 일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이다. 백신을 맞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만큼 바이러스에 취약해져 있는 사람들이 과연 다른 누구를 탓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백신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이를 기피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지 참으로 난감하다. 특별히 이와 같은 생각들이 들불처럼 번지게 된 데에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한 전임 대통령 트럼프가 이룬 공로는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를 추종하는 음모론에 편승한 세력들이 계속해서 불신을 조장하고 정부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신을 적극 장려하는 정부와 대통령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면 적반하장도 도가 지나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이 하나된 마음으로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하는데 이를 기대할 수 없는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팬데믹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데 있어서 엄청난 장애물로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더 나아가 미국의 장래를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심각한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극단적인 이념을 고집하면서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다면 그 자체로서 국가의 분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이념과 사상을 빌미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별히 Covid19 팬데믹처럼 위중한 상황에서도 정부를 불신하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파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 되면서 갈수록 이념의 양극화를 부채질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극성을 부리면 부릴수록 미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이념분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미국의 이념분쟁에 대한 진단
지난 몇 년 독버섯처럼 만연하고 있는 미국의 이념논쟁이 이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미국이 이념과 사상을 통한 대립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념분쟁은 그간 미국 사회에 있어 왔던 인종차별이나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미국 역사상 노예문제로 가장 치열하게 편싸움을 했던 남북전쟁을 능가하는 일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을 해본다. 이에 미국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념분쟁의 현상을 이념전쟁으로 표현해도 전혀 무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이념전쟁을 생각함에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바로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이념이나 사상을 주장하기 위해서 반대쪽의 사상이나 이념을 철저히 배척하고 Demonize 하기도 한다. 본인들이 신봉하는 주장에 반하는 어떠한 세력도 용납할 줄 모르는 메카시즘적인 사고방식에 물들게 된다는 말이다. 특별히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불리는 상당수의 개신교도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념을 차돌 같은 신앙으로 떠받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념이나 사상 같은 것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처럼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사상을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념에 매몰된 가운데 광기 어린 사교 집단처럼 파쇼적인 주장도 서슴치 않고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 현재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정치인들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의 현대사에 있어서 트럼프라는 사람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 사실이다. 그가 미국사회 전반에 걸쳐서 끼쳤던 다른 측면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보기로 하자. 다만 우리는 Covid19 팬데믹의 위기를 통해서 국가와 국민에게 끼치는 지도자의 역할의 중요성을 절실히 경험할 수 있었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이하는 지도자의 자세에 따라 결과도 현저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가의 위기에 대처하는 왕의 자세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크게 달라졌던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서 충격적인 보도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미조리 주에서 있었던 르뽀형식의 기사였는데 그곳에서 코로나 백신을 맞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백신을 맞은 사실을 주변에 비밀로 하도록 부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남들이 알아볼까봐 가면을 쓰고 맞는 사람도 있었다 한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백신을 맞는 것이 무슨 잘못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죄악시하면서 배척하고 왕따시키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국가도 아닌 미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주장처럼 백신을 맞지 않을 권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을 권리도 있다는 사실은 왜 인정하지 못하느냐 하는 말이다.
테네시의 한 교회에서는 목사가 마스크를 쓰고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질책하는 가운데 백신을 맞지 않도록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일도 있었다 한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적인 일로서 안타깝게도 많은 목회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의 목사들과 신자들이 음모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가짜뉴스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가 하면 강단을 통해서 공공연히 이를 퍼뜨리고 있다는 말이다. 적지 않은 목사들이 자신들의 편견과 고집에 사로잡힌 채 신앙생활에 백해무익한 이념전쟁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사람들의 주장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설득력을 가지며 주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반문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념을 좇을까 신앙을 택할까
교회가 세상에 깊숙이 간여하다 보면 세상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단은 지금도 한도 끝도 없이 세상에 관심을 갖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는데 이념과 사상에 빠져서 갈등하도록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념은 세상조류에 따라서 시시각각 달라질 수 밖에 없기에 이러한 함정으로 믿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인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이 주시는 가르침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짝해서 쫓아다니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자신들의 전통이나 구습에 매몰되어 살아가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닮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교회가 이와 같은 이념논쟁에서 자유하려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이념과 사상에서 자유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8:32에 나오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스크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나 백신을 맞느냐 안맞느냐의 문제 그 무엇도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귀한 것이라면 이러한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만큼 이웃을 위한 의무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이념을 내세우기에 앞서서 상대방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을 주장도 존중해야 함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이 시간 여호수아 장군이 자신의 고별설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었던 말씀을 새겨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신앙이 복잡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참으로 단순한 것이다. 갈수록 우리의 삶이 복잡해지는 것은 그만큼 사단이 우리를 꼬드겨서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세상이 복잡하고 시스템이 어려워지며 수많은 사상과 이념으로 혼미할수록 원칙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이념이나 사상 다 내려놓고 여호수아처럼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원칙의 하나님이기에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을 좇아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녕 따를 것은 세상이 주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영원한 왕이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는 교회가 주님만을 따르는 신앙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들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세상이 던져주는 편가름식의 이념 놀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념전쟁은 신앙을 세속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념전쟁에 매몰되어 피터지게 싸우는 사람일수록 사단의 노리개 역할을 충실히 행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실 마지막 때에는 세상이 교회를 대적하기보다는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을 대적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이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있는 것으로서 교회가 이념을 쫓아다닐 때 이단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까지 세상의 이념과 사상을 끌고 들어와서 믿는 사람들끼리 대적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믿는 사람들은 이념전쟁으로 인한 영적위기가 깊어지기 전에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이 주장하는 이념으로 무장한 패거리들이 모여 있는 교회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