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Photo : 기독일보) 솔트하우스선교회 대표 박광철 목사

5. 영적 리더의 인격

1) 사랑과 긍휼

무엇보다도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성품이 잔인하거나 몰인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는 틀림없이 악한 독재자나 폭군이 된다. 북한의 김정은도 실제적인 리더가 확실하지만 그는 자기의 이익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 악행을 서슴지 않고 또 잔인한 일을 많이 행한다. 물론 그는 영적 리더가 아니지만 결코 좋은 리더는 아니다. 백성이 굶어 죽어 가는데 자신의 개인적인 안정과 정권 유지를 위해서 불의한 일을 행하고 학살을 자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을 위해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영적 리더에게 합당치 못하다. 그런 면에서 일 중심의 리더보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영적 리더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도 나치의 히틀러처럼 자기 민족을 위해서 타민족을 말살하려는 것은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 많으셨고 눈물이 많은 분이다. 너무 차가운 성품의 소유자가 리더가 되면 혹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어도 남들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 특히 비난과 비판보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힐링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인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실수에 대하여 참아줄 수 있어야 한다. 요즘에 사회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즉 "내가 하면 멋있는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수치스런 불륜"이라는 웃지 못할 말이다. 이것은 자기의 허물을 변명하면서 남의 허물을 들춰내는 악행일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에 죄 용서 받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믿음과 지혜 위에 인내를 더해야 믿음이 뿌리를 내린다. 오래 참지 못하는 리더는 결국 일을 망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너뜨린다. 정치인들 중에 고생스럽게 그 자리에 올랐지만 생각 없이 내 뱉은 한 두 마디의 말 때문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말에 흠이 없어야 온전하다 (약 3:2).

곤경이 오거나 장애물이 닥칠 때에 참고 기다리고 극복하라. 많은 것들이 오래 참음을 통해서 새로운 길이 발견되거나 해결된다. 특히 다른 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선생은 학생들에 대해서 오래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받고 실패의 경험으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처음부터 온전한 사람은 없다.

예를 들어서 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는 수 없이 많이 넘어진 경험을 통해서 바로 서고 바로 가는 법을 배우며, 수영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물에 발을 담그기도 두려워하지만 차츰 몸을 담그게 되고 몇 차례 물의 공포를 느끼며 허우적거리는 것을 통해서 수영을 배우는 것과 같다. 그것을 참아 주는 것이 리더의 일이다. 그리고 인내는 어느 정도 참다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참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3) 용기

전도에 있어서는 지혜와 더불어 용기가 필요하다. 복음을 말하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고 말하기를 주저하다가는 좋은 기회들을 놓친다. "왜 전도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나 스스로 겁을 먹는 것이며 실제로 부딪쳐 보면 그렇지 않다. 경험적으로 봐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교회에 대한 생각이 많지만 아무도 선뜻 그에게 다가가서 친절하게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머뭇거리는 것이다. 사울과 원수들에게 쫓기던 다윗이 어떻게 그런 위기에 대면했는가?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 18:29). 적군과 높은 담은 모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주를 의지함으로 용기와 담력을 얻고 직면하는 것이다.

환난과 어려움이 올 때에 낙담하지 말고 담대하게 극복해야 한다. 전도자의 삶은 결코 안일하고 쉬운 길이 아니다. 무릇 주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많은 고난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딤후 3:12). 편하고 쉬운 인생을 원하면 지도자가 되기보다 평범한 성도의 삶을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군대에서도 큰 책임을지지 않고 시키는 것만 하려면 졸병으로 지대면 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며 다른 병사들을 통솔하는 장교가 되면 그에 따른 특권과 함께 의무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사역의 현실을 인정하고 담대하게 직면하고 헤쳐 나가야 한다. 지도자의 힘겨운 수고와 인내와 용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진다면 그보다 큰 보람과 기쁨이 더 있겠는가!

위기를 다루는 용기도 필요하다. 윈스턴 처칠이 전쟁 중에 한 연설 가운데 우리가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군인이 용기를 잃으면 사기를 잃게 되고 그것은 곧 전쟁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수 없이 많은 위기를 당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때마다 주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붙잡았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전도자와 영적 지도자를 향한 공격은 더 심해질 것이다. 각 나라에서 교회를 향한 박해와 제한이 법제화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크게 축소되고 있다. 시카고의 어느 학교의 경우에는 아동이 학교에 성경책을 가져와 읽는 것을 놓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고, 영국에서는 한 기독교 학교의 교목이 소위 "성소수자"라고 하는 LGBTQ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말을 했다가 직위 해제 당했다. 동성애자의 결혼 케이크 제작을 거절한 사람이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대로 중국에서는 예배당을 폐쇄하거나 불을 지르고 또 예배당 위에 세운 십자가를 끌어 내리는 일들이 흔한 일이 되었다. 설교 중에 있는 목사를 현장에서 잡아가는 뉴스도 나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실내 예배가 금지 당해서 야외에서 예배하다가 몇몇 교인이 경찰에 체포되는 동영상이 떴다. 언론과 종교의 자유를 비롯하여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이슬람교와 같은 타종교의 공격과 압박도 심하기 때문에 이 시대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가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