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커피에 중독이 되어있다. 직장인들은 커피 없이는 일이 안되고, 커피 없이는 대화가 안된다. 커피 없으면 휴식도 없단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젊은이들은 아예 커피통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커피는 각성제인 것은 맞지만, 커피에 대한 예찬론도 많다. 그래서 서울에는 한 집 건너 한 곳에 카페가 있다.
그런데 나는 커피를 먹지 않는다. 커피를 못 먹는 것이 아니고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50년 전의 추억 때문이다. 50년 전에 한국에는 커피가 생산되지 않았다. 다방이라고 해도 겨우 미군 부대의 씨레이션(전투식량) 박스에서 흘러나온 것을 구입에서 손님들에게 맛을 보였다. 그 시절 신문에 난 사건이지만, 어느 다방 주인이 커피원료가 떨어지자 궁여지책으로 엽연초에 쓰이는 담배를 물에 삶아서 설탕을 적절히 써서 커피라고 팔다가 덜미를 잡혀 고발된 우스게 사건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1970년대 초에 커피 맛도 모르던 시절에 겁 없이 화란 유학길에 올랐다. 그 나라도 커피에 찌든 나라였다. 눈만 뜨면 커피와 더불어 사는 나라였다. 그 나라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서 음료로서는 불합격이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화란 돈 1길더(미화 50센트)만 주면, 커피 열 잔을 먹을 수 있는 티켓을 주고, 영국 차는 그 절반 값으로 열 잔을 마실 수 있었다.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주는데로 마시고, 강의실과 도서관 길목에 카페가 있으니, 하루 평균 마시는 커피는 10잔에서 15잔을 마셔댔다. 참 무지의 소치였다. 나는 커피 맛을 안 것도 아니고, 그냥 초대하는 데로 마셨고, 누구의 도움도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커피 병에 걸리고 말았다. 여러 날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심장이 과도하게 빨리 뛰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일어나고,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오전 10시에 커피 한 잔 먹고, 오후에는 티를 마시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커피 가게를 지나만 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지금은 커피를 못 마시는 것이 아니고 안마신다. 물론 커피를 누가 대접하면 적절히 마시지만, 내 스스로 커피를 사서 마시지 않는 것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에 미국 서부의 아름다운 도시 씨에틀(Seattle)에 있는 어시장통 코너에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제자와 함께 거기서 커피 한 잔을 맛 보았다. 스타벅스 커피숍은 전 세계 없는 곳이 없고, 한국에는 건너뛰기 좋을 만큼 모든 건물의 코너에는 스타벅스 커피숍이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은 이름도 잘 모르고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수많은 카페가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또 요즘 청년들은 집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보다는 스타벅스 같은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컴퓨터 작업을 해야 잘 된단다.
그런데 이런 수많은 카페에서 사람들이 접촉해도, 코로나19와는 관계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가령 어느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다면 어찌되는가? 일단 그 지점에 방역 수칙이 잘 되었는지 점검하고, 1주 또는 2주 폐쇄하고, 철저히 소독하고, 다시 재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서울 종로 스타벅스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고,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의 스타벅스 지점이 문을 닫는 일은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정부는 말도 안되는 <교회발>, <광화문 교회발>을 들먹이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들먹이고, 교회예배를 금지하고, 비대면으로 예배를 하라고 명령까지 하고, 위반시에는 벌금을 물리고 법적으로 조치한단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가령 어느 교회가 방역수칙을 소홀히 해서 확진자가 나오면, 그 교회만 2주간 폐쇄하고, 벌금 물릴 일이 있으면 벌금을 물리면 되고, 99.9%의 교회들은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키며, 전과 같이 대면예배하는 것이 맞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조차 없애기 위해, 당국의 독기를 품은 과잉 대처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정부가 교회를 볼 때, 그들의 정책에 교회가 정부에 껄끄러운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교회를 길들이고, 목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고도의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음악 콘서는 5,000명까지 되고 교회 예배는 폐쇄라니...
스타벅스 한 곳에 확진 자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스타벅스 카페가 문 닫는 일은 없다. 그런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찌 교회와 예배가 제한되고 폐쇄되고 있는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칼럼] 스타벅스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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